[정보] 자주통일의 기치따라 - 조봉암 관련 북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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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비역2 작성일09-12-30 20:47 조회3,6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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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분께서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unibook.unikorea.go.kr 에서 "조봉암"으로 검색하신 자료를 보내오셔서 올려드립니다.
조봉암이 북한과 전혀 관련이 없다면 책에 그 이름과 일대기를 실을 필요가 전혀 없을텐데, 왜 책에 조봉암의 일대기가 실렸을까요? 궁금하군요.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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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윤성식, 자주통일의 기치따라, 평양: 평양출판사, 2004. p. 34~35
[인물자료]
조봉암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서 1899년 출생. 조봉암선생은 어린 시절 을사치욕과 경술국치의 민족적수난기를 겪으며 우국의 심장을 키웠다. 그는 조선독립의 뜻을 안고 모스크바동방로력자대학을 다니며 선진사상을 연구했고 모스크바와 상해에서 공산주의운동도 하면서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그는 조국 광복후 인천에서 당, 정권기관, 로조를 조직하는 사업에 참가하였으며 공산당 인천지구책, 민전의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1948년 ≪5.10망국단선≫때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리승만≪정권≫의 초대 ≪농림부 장관≫과 1950년 5월에 재차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부의장≫을 했다.
그는 리승만의 ≪북벌론≫에 대항하여 1952년 ≪대통령선거≫때 평화통일을 강령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으며 1955년 12월 22일 ≪진보당≫을 결성하고 반제, 반파쑈, 평화통일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투쟁 강령을 내놓고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하였다. ≪진보당≫은 ≪반공국시≫와 ≪북진무력통일≫을 배격하고 착취 없는 경제정책과 평화통일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창당후 불과 1년 만에 ≪자유당≫, ≪민주당≫과 함께 3대정당의 하나로 장성하였다.
1956년에 실시된 ≪대통령선거≫때만 해도 미제와 그 주구배들의 폭압과 사기협잡속에서도 ≪진보당≫ 당수 조봉암은 리승만이 얻은 득표수보다 약간 적은 수인 200만표 이상의 찬성표를 받았다.
≪진보당≫의 평화통일구호가 공화국의 평화통일구호와 같다고 하여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은 1958년 1월 12일 조봉암과 수많은 ≪진보당≫ 간부당원들을 체포투옥하고 당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1959년 7월 31일 오전 11시 서대문형무소 교수대에서 ≪친북간첩≫죄로 그는 처형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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