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광주시민이 5. 18 진실규명을 요구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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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전원 작성일09-11-24 00:39 조회6,2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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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발생한 광주사태때 무려 152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사망자 대부분이 무고한 광주시민이었다.
그런데 광주시민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민주화운동’이라고 알고 있었던 5. 18사태가 최근 발간된 35명의 탈북자들의 증언 책자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 18”에 의하면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전기획과 남한 김대중과의 공모 하에 인민군특수부대까지 내려 보내 순진한 광주시민의 평화적인 시위를 폭동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남한정권 전복을 목적으로 한 내란폭동음모사건이었단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자유총연맹 군산시지회(회장 김청환)와 군산시내 13개 안보단체 협의회에서 5. 18에의 북한특수군 개입사실을 직접 확인키 위해 동 탈북자 증언책자 발행인인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회장 일행을 초청하였는바 지난 금요일인 11월 20일 오후 2시 군산 청년회의소(JC)회관에서 400여명의 군산시민들이 강연장은 물론 복도까지 꽉 메운 가운데 ‘5. 18 사기극 증언’ 강연회가 일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5. 18사태 최대의 희생자가 된 광주시민들이 5. 18의 진상 규명과 광주시민 모두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특히나 아래의 의문사항만은 확실히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1. 과연 순진한 광주시민들이 1980년 5월 21일 단지 4시간 만에 광주 인근 17개 시군에 걸쳐 산재된 38개 무기고를 족집게같이 습격하여 총기와 TNT와 뇌관과 도화선 등을 일거에 탈취할 수 있었겠는가?
2. 과연 대한민국의 군인들(계엄군)이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뿌리고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인을 나체로 만들어 유방을 도려내고 대검으로 국부를 찌르는 만행을 저지르고 이를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을까?
3. 광주사태시의 총상사망자 총 116명 가운데 계엄군은 사용치도 않았던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자가 전체의 70%인 80명에 달했으며 그것도 거의 다가 뒤에서 쏜 카빈총에 맞아 사망하였는바, 과연 광주시민들로 이루어진 시민군들이 동향의 시민들을 이같이 등 뒤에서 쏴 죽일 수가 있겠는가?
이제 공은 광주시민들에 돌아갔다. ‘5. 18 광주사태’에 대한 갖가지 의혹과 탈북자들의 증언이 계속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으며 인근 군산시민들이 먼저 진상규명을 위해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광주시민에게도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지 않은가?
현 단계에서 광주시민들의 선택은 하기의 둘 중에 하나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 같다. 즉, 누가 뭐라고 해도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굳게 닫고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서 계속해서 ‘광주공화국’의 틀 안에서 영영 안주 할 것인가?
아니면 자랑스러운 자유대한민국의 국민 겸 5. 18사태 최대의 희생시민으로서 과감히 ‘5. 18의 진실 재 규명’을 정부에 요구함과 동시에 남북한 5. 18관련 범법자들을 엄단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할 것인가?
광주시민들의 현명한 판단과 걸 맞는 행동을 기대한다.
비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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