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팁 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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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생 작성일11-11-12 23:11 조회1,517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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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려는건 아닙니다.^^
평소 제 블로그 방문객이 평균 20명 정도 였는데 말이죠
댓글전쟁에 나갈때마다
댓글달고서는 아랫쪽에 제 블로그 주소를 복사해 넣었더니
많을땐 300명 정도...
헌데 이거 일시적이라 생각했었는데요
댓글전쟁 3일쉬고
오늘 블로그 확인해보니
119명 방금 한명더 추가해서 120명 방문했습니다.
1212관련 내용을보고 단골(?)이 된듯합니다.
댓글달고서는
회원님들의 블로그 주소복사
어떻습니까?
제가또 뒷북치는거겠죠..ㅠㅠ
평소보다 5배 늘었다면
한달후 얼마나 더 늘어날지 기대됩니다.
댓글목록
청곡님의 댓글
청곡 작성일신생님 감사 합니다. 5.18의 핵심부분을 계속 이렇게 발굴하여 홍보하는 것은 역사 바로잡기의 초석이 됩니다. 감사 드립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육군총장 '정 승화' 대장은 같은 육사# 5기생 '채 명신' 중장님과 대조.비교할 때, 너무나도 기회주의적이고도 무능하며, 당당치도 않았던 사람! ,,. 저런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면 명명백백히 청와대 경호실장 '차 지철'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認知코 말했었음이 확연! ,,.
1961.5.16 발발 시; '정 승화'는 준장으로 後方 제2군사령부 작전참모였고, '채 명신'장군님도 역시 그 약 2년전에 준장으로 前方 제1군사령부 작전참모를 마치고 당시로는 후방 제2군사령부 휘하이던 원주 시내 단구동의 제38사단장을 하시다가, 다시 前方 제1군으로 전속되면서 제5군단의 제5사단장을 하시다가 5.16을 맞이하여 혁명 제1일차 새벽에 사단을 출동시켜 東大門등 서울 동부.북부를 차단, 반혁명군 제ⅰ군단 및 제ⅵ군단의 출동을 사전 저지하므로써, 혁명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하셨었죠. ,,.
그리고, 제2군사령관 시절인 1974.8월 경, '유신 헌법'을 반대하여 '박'통과 사이가 벌어져,,.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와서 도리켜 보면, 현재와 같이 되어진 꼬락서니들을 보노라면, 그때 '채 명신'장군님께서는 계속 지지를 해줌으로써, 뒷받침을 하셨었어야한다고 생각되는 건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만,,. 여불비례.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