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화체제 전환후 [연방제통일]의 가능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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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old85 작성일11-11-13 08:15 조회1,359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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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님의 댓글
한가람 작성일
"해방되기 전에는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기독교가 번성했던 곳이고...."
왜정시대에 평양에 기독교가 번성했었나요???... 문헌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혹시... 역사서 곳곳에 평양이 장안(長安... 지금 서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20세기 초 기독교가 번성했던 곳은 장안이 아닐까요???
gold85님의 댓글
gold85 작성일자료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얼마든지 나옵니다. 1900년대 평양신학교 졸업한 김익두 목사, 그리고 길선주 목사, 이용도 목사 등 유명한 분들이 모두 평양 출신들이지요. 일제탄압의 고통과 슬픔에 항거하는 부흥회, 민족운동, 말세신앙 등의 신비주의가 강했다고 봅니다.
흰둥이님의 댓글
흰둥이 작성일
김일성 - 문선명총재의 회담이 한국인에게 주는 의미는 김일성에 면전에서 '주체사상으로 통일은 안된다.'와 '6.25는 북침으로 왜곡하지 말라' '남한의 고정간첩 5만명을 나에게 넘겨라, 재교육 시키겠다'로 집약될것입니다. 이 발언으로 한때 신변에 위협과 공갈 협박을 받는 상황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문선명 총재의 북한 합영법을 국제 수준으로 고치고 여타 제의를 받아들이면 금강산 개발을 통한 수익금으로 북한 사회간접자본 구축에(도로, 항만시설)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는바, 김일성은 이부분에서 문선명 총재의 진정성을 알게 되었고 금강산 개발권을 문선명 총재에게 주었습니다. 문선명 총재는 세계적인 조경산업 전문가들을 싱카폴에 모이게 해서 북한 금강산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있던차에 김대중 정권과 한국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야합하여 금강산 개발권을 정주영에게 주면 금강산에 관광객이 1명도 가지 않느다 하더라도 1년에 무조건 50만명 간것으로 인정하여 거기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김정일에게 문선명 총재로 부터 금강산 개발권을 환수해 줄것을 끈질기게 섭외하였으며, 이에 달라가 급한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가 문선명 총재에 수락한 금강산 개발권을 정주영에게 넘겨주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문선명 총재는 대노하였으며 북한 김정일은 그 무마조로 북한에 평화자동차 공장건립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문선명 총재의 대북지원은 정부와 여타 시민단체에서 보내는 대북지원과 성격이 다릅니다. 첫째는 대북지원 물품은 직접 통일그룹이 지정하는 지역에 반드시 주민들의 솥단지에 직접 배분한다는 조건으로 지원합니다. 그 동안 북한 정권이 끈질기게 문총재에게 지원 요청을 했는바, 북한에 있는 통일그룹 조직원들의 직접 배부 요구조건에 북한 정권이 호응하지않아 통일그룹에서 대북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급할 대로 다급한 북한 정권이 이 요구를 받아들여 밀가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주로 문선명 총재가 태어난 평북 정주시의 고아원, 유치원 등이 될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