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광주 인민봉기 지도총책은 김중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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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반도 작성일13-05-16 19:48 조회5,2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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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인민봉기 지도총책은 김중린이었다!!
1980년 5.18 광주인민봉기 지도총책은 김중린
특수부대 교란공작 현장지도책은 문제심
<<김중린은 누구인가>> 30년 대남공작 경력의 자타공인 최고 베테랑
1924년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인 1936년 김성숙(金星淑)이 결성한 조선민족해방동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8·15광복 이후인 1948년 조선노동당 평안북도위원회 부장이 되었다. 1959년 2월 북한적십자회 상무위원 자격으로 재일교포북송에 주도적으로 활동하였으며, 1961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1969년 조선노동당 비서국 비서(남한 담당)에 임명되었으나 1975년 10월 사업 실패에 대한 문책을 받고 물러나 1976년 9월 비교적 한직인 남조선문제연구소 소장에 임명되었다가 1979년 11월 다시 등용되어 조선노동당 비서국 비서(남한 당당) 및 통일전선부장, 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위원이 되었다.
1982년 4월 당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나, 1986년 2월 비서국 비서에서 해임되어 같은 해 8월 조선중앙통신사 사장으로 밀려났다. 1988년 11월 비서국 근로단체 담당 비서, 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자격심사위원회 위원장에 각각 임명되었다.
북한의 김중린 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2010.4.28일 사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당 중앙위 비서인 김중린이 심근경색으로 28일 8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고 밝혔다.
1923년 평안북도 벽동군(현재 자강도 우시군)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 대남담당 당 비서에 임명돼 1972년 5월 평양에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비밀협상을 갖기도 했다. 1978년에는 당 통일전선부장을 겸했고 1988년 대남담당 비서를 거쳐 1990년 이후 근로단체담당 당 비서를 맡아왔다. 북한은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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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5.18 광주인민봉기를 계기로 전면남침을 결행하려고 했고 인민군도 만반의 준비태세를 완비했다고 보고했다.
통일전선부장 대남담당 지도총책인 김중린이 일주일 정도의 시간여유를 달라. 부산, 대구, 대전 등 주요도시로 무장봉기를 확산시킬 자신있다. 그때가 전면남침의 결정적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하여 무장봉기 확산공작을 재가받았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효율적인 전국으로의 봉기확산저지와 광주봉기 진압으로 김일성의 무력남침기회는 사라졌다.
김중린은 책임을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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