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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용]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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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비역2 작성일12-11-26 23:33 조회3,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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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대통령과 국가경영-이승만에서 김대중까지", 서울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년, p.311~317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교수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지냈고 대통령 정무비서관과 공보비서관으로 9년여에 걸쳐 3명의 대통령을 직접 보좌했다. 휴버트 험프리 공공정책연구소 교환교수와 랜드 (RAND)연구소 아시아. 태평양연구센터 자문위우너 등을 역임했다. 1997년 이래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포스코 펠로우십(POSCO Fellowship)을 관리하는 동시에 대통령 리더십, 남북한관계, 한미관계 등을 연구해 왔다.
주요저서로는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 정치사회화와 정치교육』, 현대공산주의 분석』(공저), Korea and the Asia-Pacific Region(공편), A Changing Korea in Regional and Global Contexts(공편) 등이 있고 Leadership for Nation Building : Korean Presidents from Syngman Rhee to Kim Dae Jung이 현재 미국에서 출판중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10월 유신 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기술했으나, 전반적으로는 자료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기술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가 지만원 박사님의 "10월 유신" 동영상을 시청해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왜 10월 유신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됐는지를 이해했다면,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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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한국역사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고 부정부패를 근절하며 국민의 자존심을 되찾고 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약속하며 정권을 장학했다. 그는 집권 18년 동안 이같이 막연했던 혁명구호의 대부분을 놀라울 정도로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교사와 군인과 애국자, 그리고 혁명가적 요소를 겸비했던 박정희는 비록 ‘위로부터의 혁명’이기는 하지만 한국에 전대미문의 놀라운 사회적 ․ 경제적 혁명을 이룩했다. 그는 일본, 독일과 같은 강력한 현대식 공업 국가를 건설하고자 국민 모두를 일깨웠으며 이탈자에게는 날카로운 회초리를 휘둘렀으며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고 매진하여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박정희는 투철한 민족주의자로서 부강한 나라에 살고 싶다는 국민의 열망을 자신의 국가적 목표로 바꾸었다. 그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이 백일몽(白日夢)으로만 여겨지던 시대에 조국근대화라는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 모두가 꿈과 희망을 가지고 동참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이같은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중앙집권적이며 능률적인 정부를 만들었다. 그는 경제발전이 장차 민주주의 발전의 확고한 초석이 되리라 확신하고 민주주의에 일시적 후퇴가 있더라도 경제제일주의를 밀고 나갔다. 그는 한 가지에서 성공하는 것이 두 가지 모두에서 실패하는 것보다 낫다고 믿었다.

국가건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는 국가건설에 있어서 지도자의 역할은 물로 국가목표를 실현시키는 수단으로써 근대적인 제도와 행정조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군대식 조직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능률적인 정부를 만든, 한국 현대행정조직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그는 근대국가는 몇 사람의 우수한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능률적인 행정조직과 잘 훈련된 공무원들에 의해 이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판단이 아니라 정부조직에 의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실천했다. 그는 부패무능한 행정조직과 관료 제도를 혁신하여 정책집행이 대통령이나 집권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료들의 전문성에 이뤄지도록 했다. 박정희가 이처럼 현대적 행정조직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1980년대 이후에도 국가발전이 지속될 수 있었다.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자라난 박정희는 가난한 국민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그가 경제개발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이 땅에서 만성적인 가난을 몰아내자는 데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지도력 아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낙후된 나라로부터 가장 역동적인 신흥공업국의 하나로 탈바꿈했다. 그의 집권 18년 동안 한국의 1인당 소득은 10배 증가했다. 1961년 당시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아프리카의 가나, 세네갈, 리비아, 잠비아 그리고 중남미의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페루보다 낮았다. 18년 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이들 아프리카 4개국보다 3배 이상 높아졌고 라틴아메리카 4개국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이웃나라 대만을 제외하고는 이처럼 빠른 경제성장을 한 예는 역사상 찾아보기 어렵다.

박정희 정부는 3차에 걸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제1차 5개년 계획(1962-1966)기간 중 한국경제는 평균 8.3% 성장했으며 제2차 5개년 계획(1967-1971)기간 중 11%, 제3차 5개년 계획(1972-1976) 기간 중 9.6% 각각 성장했다. 박정희와 같은 비전과 추진력과 집념을 가진 지도자가 없었다면 과연 한국이 그 같은 놀라운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5 ․ 16혁명이 일어났던 해인 1961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고작 82달러였으나 1979년에는 1,546달러가 되었고 국민총생산도 1961년의 20억 달러에서 1979년 630억 달러, 그리고 수출은 같은 기간 중 4,100만 달러에서 150억 달러로 늘어났다(그림 4-3). 한국이 1인당 실질소득을 두 배로 늘리는데 11년(1966-1976)이 걸렸지만 일본은 34년 (1885-1919), 미국은 47년 (1839-1886), 영국은 58년(1780-1838)이나 걸렸다.1)
1) Economist, October 16, 1993.

박정희는 특히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해 한국의 산업구조를 선진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튼튼한 자립경제의 기반을 구축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지만 한국의 산업구조는 가발, 의류, 신발산업 등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개편되어 그 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확고한 터전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1970년대 말에 이르러 한국은 이미 제3세계 국가 중에서 선진국시장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당시 한국이 가지고 있던 세계 최고수준의 제철 공장, 조선소, 자동차 공장 그리고 첨단전자제품 생산시설은 한국이 산업구조개편에 성공했음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세계 중요 공업국가 중의 하나로 떠올랐던 것이다.

박정희의 업적 가운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한국국민의 자신감을 되찾은 것일 것이다. 한국국민은 오랫동안 식민통치와 외세의 영향으로 ‘엽전은 별 수 없다’는 패배주의와 사대주의에 젖어왔다. 그는 국민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으며 특히 경제발전이야말로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 달성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 목표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는 일하는 정부, 국가발전을 주도하는 정부를 만듦으로써 정부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국민정서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박정희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이어서 폐쇄적인 주체사상을 고수한 북한의 김일성과는 대조적이었다. 이승만은 반공과 반일이라는 부정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여 외부의 위햅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박정희는 경제발전을 최우선적 국가목표로 삼고 대외관계를 경제발전과 국가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활용했다.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강행한 것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획득하려는데 있었다. 월남참전도 주한미군이 월남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막대한 경제적 ․ 군사적 이익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제1차 석유위기 이후 중동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한 것도 경제적 이익을 중시한 데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업적중 의의가 매우 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북경쟁에서 북한을 능가하여 북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의 중요한 산업시설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물려받은 김일성은 공산독재하의 총동원제체를 바탕으로 남한보다 월등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북한은 대남 공세에 있어서 적극적이었던 반면 남한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남북 간의 발전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공산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경제력에서 북한을 압도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바탕 위에서 한국정부는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수 있게 되었다. 1)
1) Fuji Kamiya, "The Korean Peninsula after Park Chung Hee," Asian Survey, 20:7 (July 1980), pp.745-746.

그러나 정치에 있어서는 박정희 스스로가 약속했던 건전한 정치질서를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현대국가를 건설함에 있어서 경제적 ․ 사회적 근대화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며 안정되고 민주적인 정치질서를 발전시키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박정희는 1960년대를 통해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려 했지만 유신체제를 선언하면서 정치는 오히려 크게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그는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1930년대 일본식 동원 체제를 선택한 결과 유신이라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유신체제는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갖가지 해독과 부작용을 초래했던 것이다. 유신체제와 박정희 장기집권에 대한 민주세력의 저항은 격렬했고 이에 대해 정부는 철퇴를 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탄압받거나 희생을 강요받았으며 이로 인해 국내외에서 독재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신정부 7년 동안 긴급조치로 정권을 유지했으며 집권세력의 내분으로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국근대화에 집착한 나머지 박정희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에 빠져 장기집권을 도모했던 이승만의 잘못된 전철을 되풀이하고 말았다. 그가 3선 임기를 마치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더라면 국민들로부터 더욱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로 길이 기억되었을 것이며, 그의 명성은 한국역사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발전도 앞당겼을 것이 틀림없다. 유신체제와 장기집권 등 정치적 퇴보는 박정희 정권의 부정적 유산임이 분명하다. 물론 민주주의를 좀 더 잘하려 했다면 경제발전에서는 그 같은 기적을 이룩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공과(功過)는 있기 마련이지만 박정희의 공로는 과오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대다수 한국국민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언제나 커다란 논란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박정희는 약소국이며 저개발국가의 지도자였지만 한국의 미래에 대해 웅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현실로 바꾸었다. 그가 역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의지로 한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그에게 있어서 정치는 단순히 가능성의 예술이 아니라 ‘의지의 예술’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신념은 나라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비전과 의지대로 역사를 창출하고자 했다. 그는 그가 성공했든 또는 실패했든 그것은 당대의 평가가 아니라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다. 정치나 역사에 있어서 진정한 평가는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는 “하루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었는가는 저녁이 되어야 안다”고 말했다.

유신통치 등으로 박정희를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그의 후임자들과 비교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새로워지고 그리하여 한국역사사아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1993년 초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가 90%를 오르내릴 때 박정희는 망각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들의 리더십이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면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놀랄 만큼 좋아졌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비교평가에서 박정희는 다른 대통령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압도적인 차이로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8년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50년간 이룩한 10대 업적 중에서 새마을운동(1위), 경부고속도로 건설(3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작(7위), 5․16혁명 이후의 행정개력(9위)이 각각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그가 남긴 발자취가 얼마나 큰 가를 짐작할 수 있다.2)
2) 조선일보, 1998년 7월 15일.


박정희는 유엔이 지정한 개발연대인 1960년대를 넘어 1970년대를 통해 다른 어떤 개발도상국보다 성공적으로 한국의 근대화를 이룩했다. 뢰콴유(李光耀)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20년 만에 선진국으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박정희보다 10년이나 늦게 시작했다. 1970년대 말 중국의 개방개혁을 주도한 덩샤오핑(鄧小平)은 박정희의 경제개발정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등 다른 아시아 지도자들도 박정희의 경제발전전략을 면밀히 연구하여 도입하고자 했다. 최근에는 베트남에서도 한국의 발전모델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정희를 파멸시키려 했지만 결국 그와 그 아들 김정일은 박정희의 성공적 경제개발을 인정하고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박정희는 2차 대전 후 제3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의 한 사람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닉슨도 강력한 리더십 하에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를 증진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진 나라로서 한국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3) 그런 점에서 타임지가 박정희를 20세기 아시아의 위대한 인물의 한사람으로 선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4)
3) Richard M. Nixon, 1999: Victory without War (New York: Simon, 1988), p. 269.
4)
Time, August 30, 1999.

박정희는 현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뛰어난 국가건설 지도자(nation builder)이다. 20세기 국가건설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터키의 아타투르크, 이집트의 나세르, 소련의 레닌 등 어느 누구도 박정희만큼 확실히 번영하는 나라를 건설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으며 그의 근대화 전력은 많은 개발도상국의 모델이 되었다. 세계에 많은 권위주의 정권이 있었지만 한국만큼 발전한 나라는 없다. 한국이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계속되는 남북대결하에서 그러한 기적을 이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는 왜소한 체구를 가졌지만 한국역사의 진정한 거인(巨人)이다. 그의 리더십으로 한국은 새로운 운명과 해후하게 된 것이다. 박정희 스스로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아직도 그에 대해서 무조건 칭찬하거나 무조건 비판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외국인들은 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서구적인 잣대, 민주주의의 잣대로 벼면 그는 분명 권위주의적인 지도자였고 판단착오와 과오도 있었지만, 국가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는 위대한 지도자였음이 틀림없다. 아마도 박정희는 오랫동안 한국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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