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국민각자의 꿈실현', '국민행복' 슬로건은 '신기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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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피터 작성일12-07-25 12:23 조회3,4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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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국민각자의 꿈 실현’, ‘국민행복’ 슬로건은 ‘신기루’다
김피터 박사
박근혜 대선후보는, 그의 켐페인 슬로건으로 ‘내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내세웠다. 출마선언에서, ‘국민 한분 한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무지개빛’같은 꿈을 피력했다.
그의 캠프에서는 단연 ‘국민의 꿈 실현’, ‘국민행복’이 키워드가 되고 있다. 캠프 이름까지도 ‘국민행복캠프’이다. 캠프의 조윤선 대변인은 ‘국민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국민행복 캠프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 국민소득 2만달러, 5천만의 인구, 세계경제 10위권의 ‘풍요를 이미 맛본’ ‘자유 시장경제체제의 민주국가’, 그리고 남북이 첨예하게 대처하고 있는, 현 대한민국 현실에서의 대통령이, 과연 국민 각개인 모두의 꿈을 실현시켜주고, 그래서 모든 국민을 다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정치를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한마디로 ‘현실’을 무시한, 일종의 ‘사탕발림’의 소리이거나 ‘신기루’이다.
물론 지금 지구촌은, 지난 4월, UN이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표한 이래, G.N.P.(국민 총 소득)보다,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총행복 지수) 가 단연 화두(話頭)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행복’을 입에 올리고 있다. 참 좋은 얘기처럼 들린다.
‘국민행복 총량’(Gross National Happiness)’이라는 말을 처음 시작한 통치자는 저 히말라야 고원지대의 부탄국 왕 지그메 싱예 왕추크였다. 그는 1972년 17살의 나이로 왕이된후, 34년 재위하면서, 어떤 외적 경제성장보다 ‘국민행복’을 국가의 최고 목표로 삼은 통치자였다. 그리하여 2010년, 영국의 ‘유럽신경제 재단’(NEF)의 각 국가별 행복지수 발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부탄의 국민 100명중 96명이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탄의 국민소득은 년 1,200딸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다. 국민소득 2만딸러의 한국은 143개국 중 68위였다. 국민소득 4만7천딸러의 미국이나, 3만8천딸러의 일본도 국민 행복지수에서는 많이 처저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과거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되는 가난한 나라였었는데 30년만에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어가는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국민행복지수는 퍽 낮다. 지난 4월 ‘UN 행복회의’를 주재했던 부탄국 총리 지그메 틴레이는 ‘한국인들의 ‘불행감’ 원인으로 ‘너무빠른 변화’를 꼽았다. 물론 그런 진단을 할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의 ‘국민성격’이 문제다. 즉 ‘시기심’이 강하고, 당파심이 강한 것이 원인일수 있다. ‘4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고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다른 파 사람들이 잘되는 꼴도 볼수 없는것이다. 또 극성스럽고, 남과 비교를 잘하고, 경쟁심이 유난히 강한 것도 문제다. 남이 하면 나도 다 해야 한다. 남이 스키장가면 나도 해야하고, 남이 골프치면 나도 해야 하고, 남이하는것 내가 못하면 ‘불행감’ 느낀다.
출세한 사람들, 돈많은 사람들은 온갖 호화판 생활을 하는데 나는 못하고 있으니, 그걸 보면서 ‘행복감’ 느낄수가 없는것이다.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잘살게 되어도 이런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불행감을 갖게되고, 그래서 자살률 1위(인구 10만명당 28.4)를 기록하고 있는것이다.
미국에서도, 주유소에서, 종업원이 개스를 넣어주던 때가 있었다. 단골 주유소집에서 일하는 백인 청년과 친하게 되었다. 키도 크고 외모도 잘생긴 친구다. 어느날 내가 그에게 충고하는 말을 했다 “너는 젊은 사람인데 공부를 해서 좋은 잡(job)을 갖지 왜 개스 주유나 하며 평생 살려고 하느냐? 너는 현재의 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그는 서슴없이 ‘손님 차에 기름 넣어주는 서비스 잡(job)이 뭐 나쁘냐’고 오히려 반문하며, 자기는 지금 ‘걸프렌드’도 있고, 아주 행복하다고 한다.
그에게는 무슨 시기심, 경쟁심, 박탈감같은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 한국인들이 ‘행복감’을 느끼고 살려면 먼저 ‘국민성격’ 개조, 의식구조 변화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임기 5년의 대통령이 할수 있는 일이 아닐것이다.
그런데 여러 ‘행복지수’를 조사하는 기관들의 발표에서, 특기할것은 경제적으로 국민소득이 높고 잘사는 대국들보다, 오히려 반대로 가난하고 작은 국가들의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온다고 하는 것이다.
행복지수의 상위를 차지하는 국가들은, 물론 유럽의 복지국가들, 즉 덴마크, 핀란드, 스위스 등도 있지만, 그러나, 부탄을 비롯하여 바누아투(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컬럼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쿠바등도 포함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행복’이란, 외부적, 객관적인, 물질적 부나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각 개인의 주관적 ‘느낌’의 결과이다.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주장하는 ‘쓰지 신이치’(행복의 경제학 저자)는 ‘일본은 풍요라는 덫에 걸려 행복을 팔아 불행을 산 결과를 낳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들도 이미 ‘풍요’라는 덫에 걸려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무분별하게 발달되어, 개인의 삶과 시간은 경제에 예속되었고, 무한 경쟁사회 체제에서,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국민들은 상대적인 빈곤감,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옛날 개인들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걸어 다니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 그래도 그것이 그렇게 불행한 삶이라고 느끼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내게 ‘자가용’차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 차 운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 내가 내 차를 운전하고 다니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교통지옥 때문에 더 짜증이 날뿐이다. 작은 싸구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더 크고 멋진 럭셔리 차가 옆을 지날때는 그런 멋진 차의 소유자가 될수 없음을 한탄하며, 자기가 불행한 처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좀 멋있는 큰 차를 소유했다고 하자. 그러면 행복할까? 아니다. 외제 벤츠차나 캐딜락을 보면 또 ‘박탈감’을 느낀다. 그래서 화가 나서 고급 외제차를 몰래 긁거나 흠집을 내기도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학생은 입시 경쟁지옥, 젊은이는 취직 경쟁 지옥, 장년층은 남과 비교하며 더 올라가겠다고 싸우고, 여성들은 남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려고 성형수술을 밥먹듯하고…. , 이런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가 되어 있다. ‘사회주의’사회나, 종교국가나, ‘공산주의’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통치자가 이런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 사는 각 개인의 꿈이 하나하나 이루어저 행복해 하는 사회를 만들수 있다는 말인가?
누구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꿈인 고등학생들의 꿈을, 누구나 일류 대기업에 취직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꿈을, 누구나 아름다워지기를 원하는 여성들의 꿈을, 덴마크나 핀랜드 같이 적은 시간 일하고 많이 놀고도, 많은 혜택 받기를 원하는 근로자들의 꿈을, 성공하여 돈많이 벌기를 원하는 사업가들의 꿈을, 좀더 좋은집, 좀더 멋진 차를 소유하기를 원하는 소시민들의 소박한 꿈을, 어떻게 5년 임기의 대통령이, 그런 국민 각개인의 꿈을 모두 성취시키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허’한 슬로건을 내놓을수 있는것인가?
대한민국을 ‘국민행복지수’ 1위인 저 히말라야 산속의 가난한 부탄 같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 나라에서는 일체 ‘상업광고’를 못하게 한다고 한다. 좋은 음식, 값비싼 멋진 옷, 고급차, 멋있는집, 등을 광고로 내보내면 그것을 보는 국민들이, 자기의 처지와 비교하게 되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빈곤감’ 박탈감을 느끼게 되어 행복지수가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가 다음과 같은,(직역은 아니지만) 비슷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부탄이나 쿠바 같은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행복지수가 낮은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이 행복하게 살려고 그런 나라로 이민가겠는가?’
또 하나, 좀 비약적인 말을 하겠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중에는 좌익, 종북주의자들이 많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10% 이상이라고 본다. 그들의 ‘꿈’은 무엇일까? 그들도 국민인데 그러면 박근혜는 그들의 꿈도 이루어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가?
지금 대선 후보로 출마한 정치인들, 여야를 막론하고, 표현은 달라도 다 박근혜의 ‘국민 모두의 행복’ 표어와 비슷한 ‘사탕발림’식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란것도 결국 그런것 아닌가? 보편적 복지국가인 덴마크나 핀랜드나 스웨덴처럼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쪽 국민들처럼, 수입의 거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소리는 왜 안 하는가? 행복한 국민이 되려면 먼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행복 나눔’에 동참하는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왜 외치지는 않는가?
국민들에게, ‘무상급식’처럼, 무조건 ‘퍼주기’만 하겠다는 망국적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지도자보다,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바로 J.F. 케네디가 말한것처럼,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할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 라고 결단있게 말할수 있는 용기있는 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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