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여호와의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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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12-06-04 04:09 조회3,357회 댓글9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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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역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다소 긴 길입니다. 정독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심으로 앞으로 태어날 한 “아들”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약 6백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다. 이 예언의 말씀은 정확하게 이루어져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 그리고 수많은 증거들을 통해서 자신이 인자이신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특히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배우는 쉽고도 중요한 단어이다. 이 단어의 뜻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잘 알고 있듯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것을 미리 예언하신 것이다. 성경에는 태어나기도 전에 먼저 이름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부여받은 그 이름으로 불렸고, 그 이름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점에 있어서 여화와의 증인들은 구약의 인물 중에 예후는 “그는 여호와이다”를 의미하고, 엘리야는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다”를 의미하며, 엘리아다는 “하나님이 오셨다”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들이 하나님임을 암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라고 했거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리 그 이름들이 주어져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름들은 그냥 사람들이 지어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서 예언된 그대로 태어나 그 이름을 받으시고 “임마누엘”(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즉 이름 그대로 인간들과 함께하시다가 그분의 목적을 다 이루시고 이 땅을 떠나셨다.
이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기적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지금도 역시 대부분 믿지 않고 있다. 지구가 도는데도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가 그 큰 소리를 들을 수 없듯이 너무나도 엄청난 기적이라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사실을 믿고 진리로 붙들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신세계역본>에도 요한복음 20:28 말씀은 들어있다. “도마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하니,”(요 20:28)
이 구절은 우리에게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진 도마가 직접적으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구절의 의미를 단지 도마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라고 간단히 처리하고 넘어간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바로잡아 주시지 않으시고, “도마야, 네가 나를 보았으므로 믿는구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요20:29) 라고 하셨는가?
이 구절과 관련해서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또 다른 주장은 요한복음 20:31의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여러분이 믿게 하고,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이름에 의하여 여러분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아들일 뿐임을 증거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셀과 러더포드로 말미암은 이 “파수대” 일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죄인이 구원을 얻으려면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고 하신 말씀에 의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뿐만 아니라 그분이 죄인들의 구주, 즉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포함된다.
예수님이 창조된 신이 되었건 아들이 되었건 간에 피조물인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다람쥐처럼 빠르게 피해 다니는 그들은 어느새 이사야 9:6을 들고 나와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능하신 하나님”, 즉 “하나의 신” 그는 “신성”으로 묘사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음이니 정부가 그의 어깨 위에 있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경이로운 분이라, 상담자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원하신 아버지라, 화평의 통치자라 불리리라.”(사 9:6)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요한복음 1:18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를 펴 보이며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을 “유일하게 태어난 신”으로 변개시킨 자신들의 교과서(신세계역본)를 보여 주지만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속지 않는다.
그들과 논쟁을 할 때는 한 가지 논점이 끝나자마자 여행사 가이드들이 써먹는 방법처럼 그 다음 코스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입술 역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앵무새가 배우지 않은 말은 할 수 없듯이 그들도 배우지 못한 성경 구절 앞에서는 답변을 피한 채 그들이 늘 그러하듯이 다른 성경 구절로 도망간다.
그들이 안내한 다음 코스는 요한복음 5:18 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를 더욱 죽이려고 하니, 이는 그가 안식일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라.”(요5:18)
이 구절의 하반 절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라.” 는 말씀은 당사자인 예수님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만 말씀하셨는데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자신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며 가볍게 처리하고 19절을 언급하지 않은 채 빠져나가려 한다. 그러나 요한복음 5:19절은 그들의 덜미를 잡고야 만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본 것은 할 수 있나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무엇이나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유대인들이 분명히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생각한 그 사실을 인정하시고, 그리스도이신 자신이 어떤 점에서 동등한가를 19절을 통해서 증거하고 계신다.
즉 주님은 아버지와 한 분이심을 밝히신 것이다.
요한복음 10:30을 보면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 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동등하다고 하시거나 비슷하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 외에도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딛 2:13) 라고 하셨고,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딤전 3:16)라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성경 해석 방법대로 생각하면 사도 바울이 그렇게 생각하고 기록했을 뿐이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편리한 성경 해석 방법을 개발해 냈다.
하나님께서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보내기 위해서 예비하신 지옥도 없애 버리는 능력자들이 이러한 방법을 찾아내서 성경을 왜곡시키는 것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일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역시 그 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 증거는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들도 여러 가지 기적을 행했으나 그들이 하나님이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우스꽝스러운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참으로 독특하다.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선지자가 하나님이라는 구절이 없음은 물론이요, 그렇게 주장한 정통 기독교인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신 예수님 외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 이상의 기적을 행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오백 명도 넘는 사람에게 보이시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흉내라도 내 본 선지자나 종교 창시자도 없었다.
그들은 또 주님의 부활을 영적인 것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그분의 육체를 처분하는 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시기 위해서 육체는 무덤에 남겨 두시지 않고, 그 몸을 쌌던 세마포는 거기에 남겨 두었다.” 라고 주장하며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고전 15:50)는 성경 말씀은 인용한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반만 맞는 말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자신의 몸에 대해서 살과 뼈는 언급하셨으나 피는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는 구약에서 천사들이 육화해서 나타날 때처럼 자신을 육화해서 제자들에게만 보여 주셨다고 성경에도 없는 것을 주장한다.
그 근거로 잠긴 문을 통과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점을 미루어 보아 육체를 입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예수께서는 독특한 분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의 사역을 하셨다고 하며,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 오백 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보여 졌다.” 고 말함으로써 일관성도 없이 이랬다저랬다 한다.
그분의 창조 사역을 인정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겨우 잠겨 진 문을 통과하는 일에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 육체가 아닌 영이 부활했다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그들의 전용 성서인 <신세계역본> 베드로 전서 3:18에는 “… 그분이 육으로는 죽음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아 여러분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라고 번역함으로서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라는 부분을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아” 라고 변개시켰다.
이점은 개역성경도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라고 옳게 번역함으로 그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그들은 상대방이 질문해 올 것을 대비하여 또다시 앵무새들에게 입력시킬 말들을 준비해 두었다. 그들의 보따리를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당신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라고 질문하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당신은 분명히 예수를 믿는 분이시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이렇게 방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나 보죠?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순히 선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서의 가르치는 점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께서 친히 그분과 자기 아버지와의 관계에 관하여 말씀하신 사실과 모순되는 단체들의 가르침을 믿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통치권을 그분에게 허락하신 분은 다름 아닌 그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교묘히 본질을 피해 가면서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들이 예수님의 어떤 면을 믿는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예수님이 아들로서 육신으로 태어나시기 전에 그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었다는 그 사실을 믿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파수대의 보따리에는 또 다른 질문에 대비한 답변서가 들어 있다.
“당신들은 예수를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이는가?” 라고 질문하면, 사도행전 4:12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또한 거기에는 중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제가 예수를 믿는다면, 단지 편리할 때만 믿는다고 할 수 없겠지요.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될 책임에 관하여 그분이 교훈하신 점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결론적인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지 못하고 그들의 행위를 강조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10:22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인데 이 구절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님의 공중재림 때 휴거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가 대환란을 통과할 때 자신들에게 해당되는 구절이다.
그때라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겠다면 정확하게 붙잡을 수 있는 말씀이긴 하다. 그러나 더 쉬운 길을 버리고 왜 그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 보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무척 원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원한다고만 해서 자동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워치타워 라는 거대한 탑을 섬기고 있지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받는다.
이 사실을 단지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힘들게 대환란을 거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은 특별히 믿음이 좋은 것처럼 행세하면서도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사람들이 세워 놓은 전통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하시다가 떠나가신 그분은 바로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셨다.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건하게 하는 것이 좋고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니, 음식을 따라 처신한 자들은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3:9).
댓글목록
일조풍월님의 댓글
일조풍월 작성일
바울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휴게실에 올려주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이곳은 종교사이트가 아닌것 같은데요.
일조풍월님의 댓글
일조풍월 작성일
http://blog.daum.net/63vision/223
제 불로그 입니다
바울님의 고견을 듣고 싶네요
바울님의 댓글
바울 작성일
일조풍월님.
안녕하십니까?
의견을 올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스템클럽은 나라를 사랑하시는 분들의 생각들을 공유하는 곳이고,
또 다른 종교를 가지신 여러분들이 들어 오시는 곳인데 특정 종교의 글을
올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 역시도 이곳에 저의 글을 올리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직감적으로 이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일조풍월님께서 결정적인 조언을 주셨네요.
계시판이건 휴계실이건 사실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제 생각입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저의 글은 여기서 접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대신에 많은 분들이 좋은 글들과 많은 정보들을 올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더 좋은 장이 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역시 이곳에 자주 들어와 더 좋고, 유용한 정보들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이나마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 드립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오.
바울 올림.
일조풍월님의 댓글
일조풍월 작성일
선의로 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울님의 댓글
바울 작성일
감사하기는요.
당장에 방을 빼라고 하시지 않고
옆방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는냐고 안내까지 해 주셨으니
그 아량이 더 감사 합니다.
개안님의 댓글
개안 작성일
안녕하십니까, 바울님. 절필하신다는 소식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저는 특정 종교를 믿는 자도 아니며, 오히려 불가지론자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글들이 시스템클럽의 취지에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란 한 나라의 정신문화의 근본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한 사회의 도덕성 형성에 직간접적으로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올바른 부흥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것이요,
역으로 각종 사이비종교의 폐악은 국가의 흥망에 깊은 영향이 있을것 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사이비 종파에 대한 글을 통해 많이 배우고 깨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글들이 21세기 사이비 종교인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종북주의에 대한 비판과 다를게 뭐 있겠습니까.
용기있게 써주시는 글들을 매번 정독하며 보고 있습니다.
혹여, 이곳에 글쓰기를 멈추신다면 다른 사이트라도 글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울님의 댓글
바울 작성일
개안님. 감사합니다.
개안님의 말씀처럼 용기를 가지고 글을 쓴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처럼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시대에
곧이 곧대로 글을 쓰면 모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비평적인 글들을 쓰면서 용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저에게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남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거나
미운 오래시끼와 같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굳이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미움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진리가 오히려 저로 인해서 모욕을 당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에....
개안님.
저의 블로그 주소입니다.
클릭해 보십시오.
http://blog.naver.com/jkp572000/158281549
일조풍월님의 댓글
일조풍월 작성일
저는 종교가 없지만,
바울님 같은 분을 보면 교회를 다니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전도를 아주 잘하시는군요.
영안은 없지만, 아름다운 인격을 느끼는 가슴은 있습니다
바울님에게 죄송스러워지는군요
진주를 짓 밟아 버린 돼지가 된것 같습니다
바울님은 늘 주변 분들에게 아름다운 감화를 주시는 분 같습니다
저도 바울님 불로그 들려보고 싶습니다.
바울님의 댓글
바울 작성일
일조풍월님.
제가 몹시 쑥스럽습니다.
죄송할 일 전혀 아닙니다.
많은 회원님들의 생각을 대변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눈치빠르게(?) 접었던 것 뿐입니니다.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영안"이라는 단어와 돼지와 진주의 비유를 아시는 것 보니 성경도 알고 계시는군요.
그래서 반갑습니다.
이 사이트에 올리신 일조풍월님의 글들을 잘 읽었습니다.
일조풍월님의 인상이 담대한 군사로서 부족함이 없어보입니다.
제 블로그 이름이 담대한 주의군사 입니다.
사실 저는 "군사"라기 보다는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닭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셔서 둘러 보십시요. 언제라도 환영 합니다.
그럼 일조풍월님. 건강하시고 좋은 글 자주 올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