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자가 늘어나는 봉하마을 부엉이 "자살"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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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12-05-08 07:45 조회5,7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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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경호원 1명과 함께 봉하마을 뒷산을 등산하던 도중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부엉이바위에서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2010년 11월에는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50대 남자가 떨어져 숨졌다. 바위 아래에서 김씨(53, 서울)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봉하마을 방문객들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김씨가 자필로 쓴 것으로 보이는 노트 한 장의 유서도 발견됐다.
그 망자의 유서내용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노사모를 사랑한다. 노 전 대통령의 뒤를 따르겠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시신은 기증해 달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부엉이 바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뒤부터 타인들의 바위 접근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출입금지 안내판과 함께 나무로 설치한 차단펜스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도 지난 4월 14일 오전 7시50분께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이모(73·여)씨가 바위 아래로 떨어져 그 자리서 숨졌다고 한다. 언론에 따르면 “노 대통령 묘역 옆 봉하초소에서 근무하는 장모(21) 상경은 초소에서 근무를 하던 중 한 등산객이 할머니가 부엉이 바위 위에 앉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위 쪽을 쳐다보는 순간 이미 떨어지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숨진 이 할머니의 소지품을 확인한 후 가족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봉화마을에 오게 된 경위 및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고 한다.
사람마다 죽는 사연도 다양하기만 한데 때로는 어이없는 죽음들이 참으로 많아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해를 이어 발생하는 부엉이 바위의 자살사건은 이상한 전례를 남긴 전 대통령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자살을 막으려면 노 전 대통령 바위묘소를 바위가 아닌 흙 봉분으로 바꾸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는 “고인돌 시대 이래로 한국에는 바위 봉분이 하나 있다. 그곳을 참배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내팽개치듯이 발광적으로 자살하거나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곳의 추종하는 상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며 그 묘소가 바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거나 추종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자살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묘소가 바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위묘소를 흙 봉분으로 바꾸지 않는 한 노무현 추종자들 가운데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계속 잇따를 것이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의 고향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한 사건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왜 그는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자살해야 했으며 특히 가장 참혹한 자살형태인 바위에서 뛰어내려 바위 바닥에 떨어져 두개골이 함몰되는 그러한 ‘절벽투신’'을 했어야 했을까?
대통령이 투신한 것도 문제려니와 그 투신한 부엉이바위를 추모하여 묘소까지 바위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국민들을 부엉이 바위 위로 끌어올려 투신하게 조장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참배객들이 바위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서는 순간 바위 위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것과 같은 의식을 가지게 된다. 부엉이바위가 보이는 곳에 바위묘소로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는 흙 봉분으로 바꾸어야 노무현 묘소 참배객들의 자살자들이 줄어들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가 그의 자살한 곳에 가까이 만든 것도 잘못이다. 더 잘못된 것은 그 묘소가 부엉이바위를 연상케 하는 바위로 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주장이겠지만, 그의 주장은 바위 형태로 만들어진 묘가 참배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위에 절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런 민족적 정서에 있어서 그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닌 듯하다.
사람들의 죽음과 바위는 많은 연관 관계가 있는 듯해 보이면서도 결국은 그 비중이 미신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과거의 종교들은 그 사당이나 신당, 사찰, 암자 등을 절벽 위에 세운 경향이 있었다. 유교사회도 예외일 수 없었는데, 절벽 명승지에 정자를 세우는 것이 그렇다. 기본적으로 절벽 위에 세우는 정자는 절벽 아래 계곡을 내려다보는 파노라마의 명승을 관망하여 내려다보는 것이 기본이다. 기독교의 경우도 중세 수도원들이 절벽에 세워졌고 지금도 상당수 남아 있으며, 미국의 경우 세도나 국립공원의 성당은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단애절벽은 명승지가 된다. 정자는 단애절벽 위 또는 물가에 세운다. 물도 그 물밑으로 깊다는 전제하에서다. 이러한 절벽 낭떠러지가 의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 신선도가적인 사상에서는 좀 더 다른 측면이 존재하고 있었다. 절벽 아래, 특히 굽이치며 소용돌이치는 깊은 소를 내려다보는 데는 그곳에 용이 살아 있다든지 아니면 신선이 그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든지 하는 것이, 공중을 날아 오르내리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 정자가 가지는 의미에 내재되어 있었다. 특히 절벽에 폭포가 쏟아지면 금강산 구룡폭포 위 상팔담을 내려다보는 정자처럼 용은 날아오르고 신선은 내려다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절벽은 폭포가 떨어질 때 더욱 장관을 이룬다. 그것은 절벽 아래의 소에서 용이 폭포를 타고 절벽 위로 올라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금강산 구룡폭포나 설악산 비룡폭포라는 말 자체가 보여주듯이 용이 날아오른다는 것이다.”고 한다.
이로보건데 바위절벽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은 미신에서 기인한 것들이 대단히 많다.
그런가 하면 성경에도 바위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된 바위의 내용들이 등장한다.
사사기 7:25에는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이 미디안인의 고관 중 오렙을 오렙 바위에서 죽이는 내용이 등장한다. 『또 그들이 미디안인들의 두 고관 오렙과 스엡을 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즙틀에서 죽였으며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요단 건너편에 있는 기드온에게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져갔더라』(판 7:25).
그런가하면 기드온 사후 그의 아들이 정권 찬탈을 위해서 엄청난 학살이 자행하였는데 기드온 즉 여룹바알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허영심 많고 경박한 자들을 은으로 사서 그의 형제들, 즉 배다른 형제들 칠십 명을 바위 위에서 죽게 했다. 『그가 오프라에 있는 그의 아비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인 그의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더라. 그러나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남았으니 이는 그가 숨었기 때문이라』(판 9:5).
유다왕 아마샤 역시도 세일자손 일만 명을 바위 위에서 내던져 죽게 하였다. 『살아남은 다른 일만은 유다 자손이 사로잡아 바위 위로 끌고 가서 바위 위에서 그들을 내던지니 그들 모두가 산산조각이 났더라』(대하 25:12). 이처럼 바위는 사람들의 죽음과 매우 관련이 깊다.
유명한 사람이 자살을 하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따라서 자살하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의 경우가 참으로 많은데, 그것은 주로 패배의식으로 억눌린 사람들 또는 억눌려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피해의식이 발전해 자살행위로 나타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했다고 해서 대단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쁜 선례만 남겨서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애국과 관련되지 않은 사적인 자살은 오히려 오점만 남길 뿐이다. 의를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는 투쟁의 길에서 목숨을 바친 경우가 아니라면, 자살로 마감한 사람을 따라 그 죽음을 흉내 낼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회 현상에 몸을 실어 “동반자살”을 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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