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직접 경험한 상쾌, 통쾌, 아슬아슬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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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12-03-21 01:43 조회3,7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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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에 의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강력한 베드로의 설교(행 4:8-12)를 들은 관원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파 그리고 그의 친족들이 행 4:18절에서 그들을 불러서 명령하기를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명령을 한다.
뿐만 아니라. 행 5:28절과 40절에서도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도록 몇 번씩이나 겁을 주고 위협을 했건만 그들의 말에는 권위가 없으므로 그들에 대해 사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경청하는 것이 하나님께 경청하는 것 보다 옳은 일인지 판단하라.”고 (행 4:19)핀잔을 주었으며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도다.”(행 5:29)라고 거침없는 반박으로 대항했다.
그러자 격분한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자(사두개파를 포함)가 사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넣는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겪은 사도들의 반응은 그분의 이름을 위해 모욕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짐을 기뻐했다고 행 5:41절은 말씀 하고 있다.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도리이며 기본자세이다.
필자는 고국에 있을 때 거리설교를 통해 마음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치던 지난날들이 무척 그립다. 아니 마음껏 외치지 못하더라도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빵을 물에 던지는 심정으로 북녘 땅에서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그 열정의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큰 특권이었던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 요원으로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만 해도 북한의 핵개발 중단을 전재로 원자력 발전소를 건립하던 중이었다. 2002년 10월에 KEDO 소속의 VIP요원들과 함께 강원도 “양양 공항”에서 북한에서 보낸 특별 전세기를 타고 출발했다.
북한의 “선덕 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안전하게 마치고 여러 대의 버스를 나누어 타고 함흥을 지나 신포 까지 무려 4시간 동안이나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창밖으로 펼쳐진 낯익은 광경(필자의 초등학교시절 60년대 시골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숙소에 도착했다. 그때 당시 필자의 가방에는 성경책 여러 권과 그밖에 많은 기독교 관련 책과 자료들을 넣을 수 있는 만큼 넣어서 아무 제재 없이 북한에 입국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권 중에 특권이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본부에 있는 남측 사람들에게는 마음껏 복음을 얘기하고 전할 수 있었으나 북측 사람들에게는 원래 복음 전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전할 수 없었다.
혹시 기회가 있어서 전하더라도 그들이 배타적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무지몽매하다고 핀잔을 주는 그들에게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무척이나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지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 들기 전 북측 사람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누워서 곰곰이 생각하다 어느 선교사가 들려준 간증이 생각났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어느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다 중국 공안당국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르고 나와서 영국의 BBC 방송국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진행자가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이 방송을 통해서 영국 전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고 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드디어 그 선교사와 대담을 하게 되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을 먹고 방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그 진행자는 선교사를 간단하게 소개한 뒤에 “선교사님, 어떻게 하다가 체포 되셨나요?”라고 질문을 하자 선교사는 “그곳(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진행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도적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 되셨다고요? 그렇다면 복음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고 그 선교사 역시 재빨리 의도를 알아차리고 방송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의 죄에 대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속죄에 대한 보혈의 능력과 재림에 대해서 단숨에 설명을 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 그 생방송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복음을 정확하게 듣게 된 것이다. 영국에서는 다음날 일간 신문에 그 사실이 톱기사로 실리게 되었고, 늘 세상인심이 그렇듯이 그 사실에 대해서 찬반양론이 엇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간증을 떠올리면서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 생각났다. 지상파 방송으로는 곤란하지만 전화선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원래 KEDO 요원들은 북한에 있지만 주어진 영내에서는 모든 면에 있어서 자유롭고 전화도 남측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우리나라에 주둔하는 미군 기지를 연상하면 될 듯) 그러나 그 통화 내용은 북측에서나 남측(국정원)에서 공히 도청(감청)하고 녹취도 한다는 사실을 북한에 들어와서 KEDO 측으로부터 소양 교육을 받을 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음날을 기약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한국에 계시는 목사님께 전화로 감청 자들에게 복음 전할 계획을 영어로 설명 드렸다. 감청 자들이 듣고 있는 상황에서 쑥스러워서 한국말로 하기가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의도를 재빨리 알아차리신 목사님께 BBC 방송 진행자가 했던 방식으로 복음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다.
“제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그런데 이곳 KEDO현장에는 ”교회“라는 곳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고 그곳에서 예배도 드린다고 하는데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목사님께서 설명 좀 해 주시겠습니까?”
“예, 설명 드리지요. 인간은 모두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구원자가 필요하며...그 구원자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오셔서...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을 대신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신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만한 다른 어떠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지금 마음속으로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나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접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 된 마음으로 믿고 나를 따라서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주님을 영접하시게 됩니다. 자, 마음의 준비가 되셨으면 따라서 하십시오. 단 진심으로 믿고 해야 합니다. 자, 시작 합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죽어서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가야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내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할 하신 사실과 저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제 개인의 구주로 모셔 드립니다. 제안에 들어오셔서 저의 구세주가 되어 주십시오. 저를 구원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렇게 기도한 후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 이제 저도 구원받았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제 형제님은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갓 태어난 아기와 같습니다. 갓 태어나서 호적에 올려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 할일은 갓난이아기가 젖을 먹고 자라가듯이 성경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점점 더 성장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행해야할 일들을 행하면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이라고 오해 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기도하시고 말씀도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믿음생활 잘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마음에 자유 함이 있고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네, 목사님 감사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렇게 해서 첫 단추가 멋지게 끼워졌고 그 후로 이틀 간격으로 전화통화로 목사님과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복음을 전했다기보다는 우리가 감청 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복음을 설명했다고 하는 편이 더 낳은 표현일 것 같다.) 물론 의도된 사역이었지만, 항상 같은 목사님과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다른 여러 목사님들과도 번 갈아가며 귀국할 때까지 20회에 걸쳐서 그 일을 반복했다.
처음 시도 할 때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20분) 나중에 갈수록 숙달이 되어서 그때 통화한 기록을 보니 6분-7분이면 거뜬히 마칠 수 있었다. 우리가 복음을 전화로 설명하고 듣는 순간 북측에서나 남측에서의 사람들의 반응이 몹시도 궁금했다.
북측에서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면 참 재미있다. 전화를 감청하고 녹취하는 담당자는 이틀이 멀다하고 들어야하는 그 복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혹시 듣기를 원했다면 생명의 말씀을 듣는 귀한 시간으로 삼았을 터이나 듣기 싫어도 들어야만 하는 그 상황이었다면 지겨웠을 것이다. 그리고 녹취된 그 테이프를 또 들어야 하는 상급자도 있었을 텐데 과연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지...아마도 육두문자를 쓰면서 분개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복음을 전화로 나누고 있을 때 필자는 때로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서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자고 나면 바라다 보이는 “호남리”라는 마을에는 그 추운 날씨에도 땔감이 없어서 집에 연기 나는 집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렸을 적 가난을 경험하고 자란 경험을 되새기며 가슴이 아파 그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그 순간 전화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던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이나 녹취록을 듣고 있던 고위층들은 펄펄 뛰면서 화를 냈을 것이다. 우리사이에는 의도된 통화 내용이지만 표면적으로 말하자면 KEDO요원이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인데, 법적으로 시비 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에 전화를 끓을 수도 없고 참느라고 꾀나 힘이 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정해 놓은 법의 한계다.)
그런데 필자가 귀국하기 하루 전에야 안 사실이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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