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전한 단순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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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12-02-28 08:14 조회3,6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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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전한 복음편지
저는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들이 개설한 카페에 접속하게 되면서 어릴 적 친구들 몇 명이 손자들과 한참 행복하게 지내야할 나이에 벌써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카페의 의도에 부합하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염치불구하고 필자가 경험한 친구의 죽음을 통해서 모두가 다 자연인이라는 전제 하에 가장 기초적인 복음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읽고 숙고하는 가운데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회원님들 중에 저의 글이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관심이 있으신 분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넓은 아량으로 저를 이해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그리운 친구들에게
올해 들어 우리의 한 친구가 우리의 어릴 적 친구의 사망소식을 전함으로 우리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지고야 말았네. 나도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할 말이 많던 중 할 수 없이 이 카페를 통해 이런 글을 쓰게 되었네. 내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들! 편견을 갖지 말고 부족한 친구의 얘기를 한 번 들어보고 숙고해보게. 내 기억으로는 90년대 초반 한 친구로부터 옛 친구 ㅇㅇㅇ의 소식을 듣게 되었네. 그 때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있었는데, ㅇㅇㅇ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그 친구에게 달려갔네. 그 때 ㅇㅇㅇ이는 타지에서 살다가 시골 고향 집에 머무르면서 병을 치료받고 있었는데, 그 친구 병은 뇌에 이상이 생겨 고생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네. 그때 그 친구는 나름대로 외로이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어릴 적 친구가 찾아와 준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고무되어 반가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던 그 모습이 지금 눈에 선하네. 그와 잠시 같이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그가 통증을 잊도록 하기 위해서 지난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애써서 떠올리며 그 순간이나마 행복해 했었네. 물론 같은 학교 한 반이었지만 동네가 달라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면 얼마나 많이 떠오르겠는가마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위해서 과장되게 웃기기도 하고, 같이 웃어주었네. 그 순간 그가 나와 같이 호응하며 희망을 불태우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좋아서....
그 친구는 나의 달라진 인생행로에 관한 얘기를 듣고 반기며 자기도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고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좋아하더군.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해서 우리 둘이는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다네. 우리 둘은 옆방에 있는 여동생이 우리의 희망가를 엿듣고 오빠가 안타까워 몰래 흐느끼며 울고 있는 가운데 눈물로 ㅇㅇㅇ이를 치료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네. 제발 내 친구를 빨리 데려가지 마시고 내 친구를 살려 달라고 나와 그 친구가 믿고 있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관장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네. 당시 ㅇㅇㅇ이의 얼굴은 까칠하고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고 그의 속사람인 그의 영과 혼은 무척이나 맑고 깨끗해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위로를 받는 시간이기도 했다네.
그는 고향 초등학교 뒤에 위치한 조그마한 교회에 출석했던 것으로 알고 있네. 나는 그와의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와 나의 길을 가던 중 그 친구 ㅇㅇㅇ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게 되었네. 그 때 나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당시 봤던 그 친구는 몹시도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네. 사람들이 오죽하면 “안락사”라는 말을 만들어 냈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심정을 그 친구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이네.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친구 한 명이 또 먼저 떠나게 되었네. 내가 알고 있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명단에는 벌써 여섯 명이나 그 이름이 올라 있네. 나는 그때 ㅇㅇㅇ이 친구에게 진지한 주제, 즉 “복음”을 전하게 되었네. 사람은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으나 죽을 때는 순서가 없음을 말해 주었고, 누구라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듯이 죽어서 가는 곳도 각자가 다르다는 것을 전했었네.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전했다네.
“친구! 사람은 언젠가는 한번 죽는다는 것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명제’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죽은 후에는 그 사람의 영혼이 어딘가로 가야 하는 것도 분명하네. 그래서 사람들이 좋은 곳에 가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던가? 나는 성경을 통해서 사람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배웠네.
즉 사람은 보이는 ‘몸’과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 안에 존재하는 ‘혼’과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기관인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배웠네. 사람의 몸은 몸속에 거하는 혼의 도구일 뿐인데 그 혼이 그 사람의 실체이고 소위 말하는 그 사람의 자아라네. 그 혼이 몸 안에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희로애락을 느끼는데 그 혼이 바로 그 사람 자체라는 것이네. 그래서 몸은 혼을 통해서 사용되는 도구일 뿐 혼보다 더 귀할 수는 없다는 것이네. 물론 ‘영과 혼’은 비물질적인 존재기에 보이지도 않고 그렇기에 또한 영원히 없어지지도 않는 기관이라네. 한 사람의 영과 혼이 몸 안에서 빠져나가면 그 몸은 죽은 채 며칠 후 썩어버리지만 그 사람의 영과 혼은 비물질계이기에 없어지지도 않고 어디론가 가야만 하네. 그래서 우리의 몸과 달리 영혼은 영원히 어떤 곳에서 보내야 하는데, 성경은 그곳을 지옥과 천국으로 나누고 있는데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네.
간단히 말해서 ㅇㅇㅇ이 자네나 나나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서 좋은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ㅇㅇㅇ이 자네가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네. 자네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거기에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으면 되네. 그 믿음의 실체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네. 그 믿음이란 내가 치러야 할 죄값(크든 작든)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대신 치러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라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진심으로 믿겠다고 고백하고 영접(받아들임)할 때 그의 믿음이 인정되어 구원해 주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네. 이제 ㅇㅇㅇ이 자네가 내가 비록 부족한 친구지만 자네보다 먼저 이 진리를 알고 자네에게 자세하게 전했는데 이 친구의 권면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자네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겠는가?”라고 그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는 반색을 하면서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믿겠네.”라고 하면서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진지한 기도를 같이 다음과 같이 했다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모르고 제 멋대로 살았습니다. 지난날의 저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를 원합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 개인의 구주로 믿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 구세주이심을 확실히 믿고 받아들입니다. 지금 저의 모든 죄를 용서 해 주시고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저를 구원해 주신 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내 친구 ㅇㅇㅇ이는 이렇게 해서 그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확신했다네. 그때 그의 얼굴은 매우 밝았고 물에 빠진 사람이 마치 구조선에 올라탄 그런 안도의 표정이었네.
친구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것이라네. 물론 믿고 받아들인 후에는 그에 합당한 선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네. 이 글을 읽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수도 있고 이미 들어본 친구들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죽은 후에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을 말하네. 즉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라네.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서의 ㅇㅇㅇ이와 나의 인연은 그때 이후로 끝났네. 그러나 나는 복음을 전하던 그날 친구 고 ㅇㅇㅇ이의 믿음을 보았고 그가 죽었으나 하늘나라에 갔다고 확신하네. 왜냐하면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예수님 옆에 있던 강도도 단지 믿음으로 선한 행위를 할 기회도 없이 낙원에 갔으니까 말일세. 내가 나중에 그곳에 가면 그를 만나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의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네. 왜 하나님이 구원받은 친구를 더 살게 하시지 않고 먼저 데려 가셨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네. 그러나 하나님께서 ㅇㅇㅇ이가 세상에서의 고생을 일찍 끝내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다면 우리는 할 말이 없네. 오해하지 말게. 이것은 절대 핑계가 아니네. 성경말씀에 따르면 구원받고 하나님 안에서 죽은 자는 값진 것이라고 말씀하셨거든.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주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이로다.”(시 116:15)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정상적인 틀에서 무척 많이 벗어나 있네. 진리는 뒤로 하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는 말일세. 그러나 정상적인 기독교는 내가 ㅇㅇㅇ이에게 전했던 것과 같이 단순한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지 교회에 헌금하고 봉사하고 혼의 달관을 하는 것이 기독교가 먼저 할 일은 아니라네. 순서가 뒤바뀐 한국식 기독교, 돌연변이 기독교가 한국에 번창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네. 그러나 내 사랑하는 친구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싫어하여 정작 살아계신 하나님을 거절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제발 모두 다 구원받아 낙원으로 함께 가세.
친구들 중에서 가장 부족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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