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박태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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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윗 작성일11-12-15 07:13 조회8,757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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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건드리면 가만 안둔다”
"포항제철은 선조들 피의 대가" 실패하면 죽자.
박정희와 박태준
1973년 6월 9일 새벽 6시, 고로 앞에 도열해 있던 포항제철의 전 직원은 좀처럼 쇳물이 나오지 않는 고로만을 쳐다보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긴장과 흥분은 무거운 침묵으로 변해 옆 사람의 침 넘기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1시간여 지났을까, 드디어 붉은 쇳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만세소리가 장내를 흔들었고, 무쇠 같은 사나이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박정희 시대는 단군 이래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다, 1960년대가 가난과 패배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희망의 시대였다면 1970년대는 그 노력이 결실로 맺어지는 영광과 긍지의 시대였다, 한민족 오천 년 역사 중 가장 격동적인 시대가 1970년대였다, 70년대를 가히 민족의 중흥기라 부를 만 했던 것은 70년대에 바로 포항제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류역사상 그 족속들의 삶의 방식을 가장 확실하게 바뀌게 했던 혁명이 있었다면 그것은 5.16이다, 한민족의 역사는 5.16의 전과 후로 나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6혁명으로 대한민국은 환골탈태했다, 포항제철은 그 혁명의 완성이자 종착역 같은 것이었다, 포항제철은 5.16이 있어서 가능했고, 박정희와 박태준이라는 사나이가 있어서 가능했다,
박정희와 박태준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사제지간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다시 제2군수기지 사령관과 참모장의 사이로 지내면서 두 사람 사이는 강력한 신뢰의 끈으로 연결된다, 5.16 당시에는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거사가 실패했을 경우 '내 식구들이나 좀 돌봐줘'라며 혁명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박태준은 박정희에게 부하보다는 동생이었다.
포항제철의 건립은 단군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공사였다, 이 공사의 책임자는 박정희가 가장 신뢰하는 박태준이었다, 1967년 9월 박태준은 박정희의 호출로 영국에서 달려왔다, 박태준은 고사했으나 박정희는 호통을 쳤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맡을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
판자집이 즐비했던 나라에 제철소를 지을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돈을 빌리러 미국에 갔던 박태준은 첫 난관에 부딪혔다, 돈을 빌려주기로 했던 회사들이 등을 돌렸다, 한국에서 제철소를 만들어보았자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IBRD의 보고서 때문이었다, 이 때 실의에 빠졌던 박태준의 뇌리에 스쳐가는 것이 바로 '대일 청구권 자금'이었다,
박태준은 공사를 독려하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포항제철은 선조들의 피의 대가이다,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리는 죽어 마땅하다, 우향우하여 영일만 바다에 빠져죽자" 박정희의 전폭적인 지원도 빠지지 않았다, 박정희는 3년여 공사 기간에 13번이나 현장을 방문했다, 박태준이 정치인과 관료들의 압력에 시달리자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종이 마패를 건네줬다, 마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박태준을 건드리면 누구든지 가만 안 둔다'
100만 톤을 목표량으로 건설되었던 포철은 가동된지 단 일년 만에 매출액 1억 달러를 기록하며 빚을 다 갚고 흑자를 기록했다, 세계철강 역사의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고로 건설은 계속되면서 2기가 완공되는 1976년에 조강능력은 북한을 추월했다, 포항제철은 2008년에 매출액 30조6424억원, 조강생산량 3313만6000t을 달성했다. 2011년에는 4고로에서 하루 평균 1만 5천 톤 이상의 쇳물을 생산하며 연일 세계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1992년 10월, 박태준은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가 박정희에게 보고를 했다, "각하! 불초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의 건설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 타파와 경제 부흥을 위해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라는 각하의 의지에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조강 생산 2,100만 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70년대에 판자집의 나라는 대리석의 나라로 바뀌었고, 지게에 땔감을 지고 가는 목(木)의 시대에서 용광로의 쇳물로 기계를 만드는 철(鐵)의 시대로 진보했다, 이제 박정희도 없고 박태준도 없다, 박태준의 존재로 박정희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었지만, 박태준이 떠나고 이제 비로소 박정희의 시대는 저무는가, 이제 다시 반도 땅에는 선 굵은 사나이들의 드라마는 탄생되지 않을 것인가, 땀과 눈물의 70년대가, 아버지의 등에서 풍기던 땀 냄새가, 그 영광과 긍지의 시대가 이제 역사의 장막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가난했던 아버지들의 시대, 고맙습니다, 독일 함부르 탄광에서 대통령의 눈물, 조선 수주협상에서 정주영이 내밀었던 거북선 지폐, 맨손 하나로 오늘을 일구어 낸 아버지들, 고맙습니다, 유신헌법 국민들의 90% 지지, 일부 정치인들이 독재의 시대라고 저주해도, 국민과 지도자가 일치단결하여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노도처럼 내달리던 그 시대가 부럽습니다, 그 시대에, 박정희와 박태준의 시대에 그리고 그 시대의 당신들에게 경의를 드린다
댓글목록
다윗님의 댓글
다윗 작성일
"박태준을 건두리면 누구든지 가만 아둔다"사나이 박통의 믿음이 기적을 만들었다
오늘의 한국도 박정희대통령의 믿음에서 성장한것이다
雲井님의 댓글
雲井 작성일그 유일한 '종이마패'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선굵은 사나이들"의 신뢰信賴로 얽어 엮은 개발과 도전의 드라마가 "60년대 판잦집의 나라를 80년대이후 대리석의 나라로" 새계 9번째로 무역규모 1조달러를 달성하는 나라로 발전시켰습니다.
진정 "가난했던 아버지의 시대... 유신헌법 국민들의 90% 지지, 일부 정치인들이 독재의 시대라고 저주해도, 국민과 지도자가 일치단결하여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노도처럼 내달리던 그 시대"의 대통령 박정희 장군의 선견지명과 포항제철 박태준 鐵學박사의 굵직한 발자취들이 한없이 그립습니다.
다윗님 어디서 이런 좋은글 찾아 오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산머루님의 댓글
산머루 작성일저런 훌륭한 지도자가 또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