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대청소 500만야전군 '종교평화선언’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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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雲井 작성일11-12-20 18:33 조회3,669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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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한국사회는 다양한 갈등과 분쟁의 현장입니다.
이념적 갈등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갈등은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대청소 500만야전군' 역시 다양한 계층의 구성원이 모인 집합단체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념적 목표는 매우 확고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종교적 다원성에 의해 옳고 그름에 대한 배타적 독점성이 강하기 때문에, 종교 주제가 토론장에 부각되면 이는 바로 갈등으로 비화되고 우리공동체는 분열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교계 일각에서 제안한 '종교평화선언'을 우리 실정에 맞도록 각색해서 이를 500만야전군에 적용한다면 내부 갈등예방과 야전군전사의 매너향상에 기여 할수 있을 것 입니다.
이에 이곳 게시판에서 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토론은 금기사항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구성원간의 다원성 종교를 평화적으로 승화하기 위한 ‘야전군 종교평화선언’을 하기와 같이 제안합니다.
[기원전 3세기 중엽 인도의 아쇼카왕이 남긴 새김글]
저 아쇼카왕은 모든 종교의 신자들, 그들이 출가자 이든 재가자 이든, 모두를 존경합니다.
각 종교마다 기본 교리는 다를 수 있으며,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느라 남의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이건 자신의 종교에 오히려 더 큰 해악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조화가 최선입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자신의 종교도 발전하게 되고 진리도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종교평화선언문
(1) 열린 마음
특정종교는 ‘나만의 진리’를 고집하지 않으며 나의 종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진리에 대한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
열린 진리관은 이웃종교를 대하는 기본 원칙 이어야 하며 대화와 소통을 위한 출발점이다.
진리란 특정 종교나 믿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리는 모두에게, 모든 믿음에 다 열려 있다.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 문법과 표현방법이 다를 뿐이다.
(2) 종교다양성의 존중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종교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웃종교에 대한 인정과 관용이라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그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배우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웃 종교와 우리는 경쟁적 관계가 아니다. 진리를 향한 동반적 관계이며 이웃종교의 장점을 통해 내 종교의 부족함을 채우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그리고 사회적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한 동지적 관계이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존중할 때 공통점이 더욱 빛나 보이며 모두 진리를 향한 동반자라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상호존중의 호혜성은 종교다양성을 실천하는 최소한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법이니.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정신이다.
(3) 전교 전도의 원칙
믿음을 전하는 일은 곧 자신의 믿음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요, 서로 다른 믿음을 지닌 이들과 어우러지면서 큰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다.
실천적 활동을 통해 내 믿음의 참됨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없는 감동이 가장 최선이기 때문이다.
말로 전하는 일은 가장 나중의 일이며, 또한 가장 조심스럽게 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교 전도는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실현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다.
나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해 타종교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지향하고 다른 종교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법이어야 할 것이다.
(4) 공적영역에서의 종교 활동
한국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이 자유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을 자유 또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전파하려고 하는 행위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 위임된 공적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전하기 위해 공적 지위나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공적 권력이 신앙전파의 수단이 되거나 공적 장소가 신앙 전파의 무대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개인적 신앙이 공적 영역에 작용해 종교적 편향성을 낳는 것은 결과적으로 모든 종교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언제나 이를 유념하고 공정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평화를 통한 실천
종교 간의 갈등과 충돌은 사람의 일이지 가르침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 간의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 종교의 가르침이나 지도자를 비난하는 일은 옳지 않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평화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종교간 평화를 가로막는 갈등 상황이 오더라도 종교인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평화를 이뤄가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하나의 좋은 모범을 만들어야 한다.
끝.
(이는 초안입니다. 좋은 제안으로 첨삭 바랍니다.)
댓글목록
gold85님의 댓글
gold85 작성일
좋은 제안입니다. 당연히 신사도의 태도를 지키자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이것을 참고로하여 자신을 돌아 보는 기회로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 8년간 생활하면서 경험한 것인데 로타리클럽 모임에 갔을 때 개신교 목사, 천주교 신부, 일본전통종교 지도자가 같은 식탁에 앉아서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식사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이라고 생각했지요.
긴 세월로 보면 종교의 생성과 소멸이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고 사람의 개성이 다양하듯이 종교의 형태도 가지가지, 사람이란 존재가 쉽게 세뇌되어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종교의 출현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요.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듯이 남의 종교를 존중하는 것이 맞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간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듯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종교도 비난 받지 않을 수 없지요.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지만 창의력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면서 보완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종교, 새로운 교파가 생겨 나지 않을 수 없지요. 종교는 사회 환경적 요인에 의하여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벽파랑님의 댓글
벽파랑 작성일
우리는 남의 종교에 대해 존중하는 아량들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속좁아 터진 근성머리들을 가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김성주, 김정일과 같은 권세를 가졌다면 남의 종교를 헐뜯고 비방하는 종교세력이 있다면 그것들부터 조져놓고 길들였을 겁니다.
산머루님의 댓글
산머루 작성일좋은 제안입니다 타 종교를 배척하고 테러 행위를 서슴치 않는 종교는 대한민국에서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