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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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수호 작성일11-11-14 19:48 조회4,353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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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유대한민국은 패망한 자유월남의 멸망 직전의 위기상황과 엇비슷한 상황에 직면 해 있다고 보는게 정확한 진단 일것이다.
보수우익의 이념을 당의 생명처럼 여겨오던 다수당인 집권 여당은 어느새 중도를 넘어서 좌경화로 흐르는것도 부족하여 소수의 좌파 야당들에게 휘둘리는 수모를 당하고 있고, 좌파 야당들은 감성에 취약한 20-30대의 젊은층을 유혹하여 각종 선거전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며 차기 총선과 대선을 석권할 기세다.
이와같이 집권여당이 지리멸렬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에 종북좌파 정당들이 각종 사회단체들과 언론 그리고 젊은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기세가 등등해 진 이면에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대통령 중심제 하의 대통령인 MB의 無理念的 정체성이 음으로 양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할것이다.
이와같은 상황은 2007년 대선에서 MB가 승리하므로서 이미 예고된 현상이라고 볼수 있다.
2007년 대선 이전에 벌어졌던 한나라당내 경선 캠페인때 3빅(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중 유일하게 MB만이 거의 100%에 가까운 중도 내지는 좌경화된 보좌진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MB 자신도 스스로가 이념 무용론을 주장하는 중도주의자 였으며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을 능가하는 소위 <한반도 평화비젼>을 제시하여 MB의 집권은 장차 이나라에 좌파세력을 양산해내는 좌파의 숙주(宿主)가 되리라는 예고를 했었지만 보수우익의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보수우익의 3대 메이져 신문들마져 이를 지적 하기는커녕 李飛어천가를 부르기에 바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의 표만을 계산한 경쟁자 박근혜는 MB의 아픈곳(무이념의 정체성)은 외면하고 오로지 MB의 부정행위 공격에만 올인 하면서 황당 스럽게도 "나는 중도주의자" 임을 선언 하므로서 제 발등을 찍고 있었다.
당시의 박근혜 주변 인물들은 거의 100%가 보수우익 성향의 인물들 이었으므로 MB의 가장 큰 취약점인 애매모호한 정체성과 주변 인물들을 공략 하면서 자신은 스스로가 선친의 반공정신을 이어받은 철저한 보수우익의 인물임을 과시 했더라면 경선에서 질래야 질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물론 그후에 안 일 이지만 박근혜는 이미 2002년 김정일을 만난 이후부터 MB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공격할 명분을 잃어버린 상태였다고 보여진다)
어쨌거나 MB가 박근혜로부터 불량한 정체성을 공격받지 않은것은 MB자신을 위해서는 행운이었고 박근혜는 스스로가 묘혈(墓穴)을 판 결과가 되었으며 이로써 MB가 보수우익 정당인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되므로서 자유대한민국에 검은 먹구름이 감돌기 시작 한것이다.
물론 대선에서 MB가 종북좌익측 후보인 정동영 후보를 큰 표차로 승리한것은 대행 이지만 그렇다고해서 MB의 승리가 자유대한민국에게 축배를 안겨줄만한 승리가 아니었음은 안타까운 일 이다.
그렇다면 2007년 대선때 자유대한민국에 최소한의 축배라도 안겨줄 수 있는 후보가 없었느냐?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2007년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내 경선캠페인이 3빅에 의해서 물밑에서 태동 할 무렵, 두차례에 걸쳐서 대선패배의 아픈상처를 안고 정계를 떠났던 자.타칭 보수우익의 대부로 불리우던 이회창이 <尙有十二 舜信不死>라는 이순신 제독의 어록을 인용하며 3빅인 MB와 박근혜 그리고 손학규 모두가 정체성 불투명한 인물 이므로 자신이 직접 경선에 참여 할 뜻을 은연중에 내 비쳤었다.
이쯤되자 오랜기간 물밑에서 기반을 다져오던 3빅은 이구동성으로 <차떼기의 원흉> 이라며 이회창의 출현을 저지하려했고 심지어는 박근혜의 측근인 최 某 의원은 "원균 만도 못한자" 라는 극단적으로 모멸감을 안겨줄 인신공격을 받은 이회창은 작심하고 빼 들려던 칼을 칼집에 도로 넣는 수모를 남겼다.
이회창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서 중도주의자에게 권력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굳은 신념이 있었다면 원균이 아니라 그 어떤 수모에도 굴하지않고 중도주의자가 한나라당의 후보가되는 길을 막아야 했으며 3빅의 저항을 무마하기가 불가능 했다면 새로이 창당을 해서라도 자유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을 선택 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애국자의 길 이다.
결국 한나라당의 후보 MB가 BBK문제로 대선에서의 패배가 엿보이자 이회창은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단기출마를 했으나 이는 계란으로 바윗돌 때리기에 불과했고 이제는 기회주의자 라는 오명마져 피할 수 없게되어 대선결과 3등으로 미끄러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이회창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었다.
한나라당의 MB가 집권했지만 이미 중도 내지는 좌경화로 기운 정부여당을 견제 하기위한 자유선진당의 창당이 바로 그것 이었다.
자유선진당이 만일에 초지를 일관하여 보수우익의 산맥을 고수하며 이념적으로 엇나가는 MB정권의 견제자 역활을 충실히 했다면 지금쯤은 인물난에 허덕이는 보수우익 세력의 커다란 기둥이되고 구심점이 되었을것이고 차기 대권을 넘보는 한나라당이나 좌파정당들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돼 있을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유선진당은 지역당인 충청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심지어는 좌파 정객들 마져 끌어들여 더 이상의 보수신당이라 할 수 없게 되었을뿐 아니라 충청인들의 표심에 묶이어 좌파들과 합세하여 세종시법 수정안에 반대 하므로서 그는 이제 더 이상의 <대쪽판사>의 닉도, 보수우익의 대부라는 존경도 받지 못하는 서글픈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라를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 이다.
마지막으로 박근혜에 대해서 몇가지 유감스런 일들을 살펴 봐야겠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했지만 여전히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차기집권의 호프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지지자들 못지않게 보수우익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는 MB정권 내내 사사건건 트집을 부렸지만 정작 트집을 부렸어야 할 MB의 이념에관한 정책에는 침묵으로 일관하여 스스로가 보수우익 임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김정일과 만나서 연방제 통일의 약속 건 도 해명을 하지않고있어 결국은 차기 대선에서 좌파 후보와 대결 하더라도 보수우익의 결집된 지지를 얻어내기는 어려울것이다.
게다가 충청권의 표심을 겨냥한 세종시법 개정안에 좌파들과 합세하여 반대한 일, 선진 제국들이 과다한 복지비용 지출로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제 발전의 동맥인 거시경제 정책보다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 하다면서 복지정책에 주안점을 둔다는것은 어리석은 표심을 유혹하여 대통령이나 따먹겠다는 비열한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래가지고는 대통을 따 먹기도 어려울뿐 아니라 요행히 대권을 차지했다 하더하도 스스로의 발목이 족쇄에 잡혀서 대통령으로서의 소임을 다 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회창이나 박근혜는 하늘이 주는 기회들을 스스로 차 버리므로서 자신들의 불행을 자초하고 있고 좌파들의 숙주 노릇을 해온 MB에게 아무런 제약도 주지 못해 결국 자유대한민국의 전도마져 위태롭게 되었다.
댓글목록
청곡님의 댓글
청곡 작성일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작성일좋은글에 합당한 지적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개혁님의 댓글
개혁 작성일아직도 정신 차리자면 먼 것 같지요. 까이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들이 분명 있을 텐데, 내가 그들이 아니어서인지... 영 이해가 안 됩니다. 이회창 할아버지도 대쪽같은 '갱끼' 있을 줄 알았는데... 세월이 하 어수선하여선지... 막걸리 물 타듯 다 그렇구 그렇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