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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옹은 1907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일본 중앙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19세 때인 1926년 일본에 건너가 공수도의 본관인 송도관(松濤館·일명 쇼도깡)에 입문, 일본 공수도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후나고시로부터 가라데를 전수받았다. 1944년 9월 서울 서대문에서 한국 최초의 태권도 도장이라 할 수 있는 청도관을 개관했다.
1947년에는 서울 YMCA에서 한국 최초의 연무대회를 개최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도미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종기씨와 장남 이영길이 있다. 고별예배는 4일, 장례식은 5일 있을 예정.
장례위원장은 김일호 미주 청도관 회장, 준비위원장은 박찬학 부회장, 부위원장은 최응길 전 버지니아주 태권도협회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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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기사를 올리는 이유는 지금도 일본을 맹목적으로 미워하고 왜곡되게 교육받은 역사관을 가진 이들이 우파내에서도 적지 않음을 알고 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배우고 알고 인정하자는 취지에서 올리는 것이다. 지금의 맹목적 반일감정은 좌파들이 자신들의 만행과 치부를 일본에 돌리기위해 죽기살기로 조장해낸 것과 은혜를 모르는 일부 조선인들의 합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어쨋든 하필 태권도관련해서 실증을 들었는가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른다. 한낱 일개의 무술조차도 역사를 왜곡한 우리들이 다른 일본관련 역사를 왜곡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 나는 정말이지 군대 갈때까지 태권도가 순수한 우리나라 무술인줄 알았다. 썅...)
지금 이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국문법이나 어휘의 상당수가 일본의 국어사전을 그대로 베끼고 순수한 국산언어로 둔갑한게 아직까지 많다. 성문종합영어, 정석수학, 대학교 전공서적등 일본판 서적을 그대로 번역했다는 것 즈음은 과거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다 짐작했으리라. 물론 요즈음이야 교수들의 실력이 예전보다 상향되어서 자체적으로 베끼지 않고 만든경우도 더러있다는걸 밝혀두지만, 여기서 우리자신이 돌아보아야하는 것은 누구로 부터 영향을 받고 주고하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진실이 무엇인지 사실이 무엇인지를 인정할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선진 사회로 진입하려면 경제적 수치면에서 진입하는 것 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할것이 옳고 그름을 용기있게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먼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먼저 옳은 것은 옳다라고 할수 있는 양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지만원 박사님이라는 성격의 소유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존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만원 박사님은 자신에게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 와도 옳은 것은 옳다고 인정하는 조선의 기개가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