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원 단국대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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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염라대왕 작성일11-05-14 14:21 조회5,2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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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총여학생회 초청 특강 강연문 대한민국의 희망은 대한민국 안에 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단국대 천안 캠퍼스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 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직접 와보니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여러분이 행복해 보입니다 . 오늘이 제가 한나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첫 번째 대학교 특강입니다. 그 동안 여러 대학교에서 특강 요청이 있었지만, 제가 특별히 첫 특강만큼은 무조건 이 곳에서 하겠다고 계획을 잡아 놓았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궁금하시죠 ? 지난 광복절 아침에 박정은 총여학생회장이 저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 저한테 특강 요청을 하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저는 못 만났습니다만, 보좌 관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인터넷 뒤지고, 부동산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근처 아파트 경비 아저씨한테까지 물어 가면서 집에 찾아와서,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심지어 경비 아저씨한테 비타500까지 갖다 드렸다고 합니다. (웃음/박수 ) 제가 그 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특강 요청을 받았지만 이렇게 적극적 으로 열성을 갖고 찾아온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얘기를 듣고, 무조건 첫 특강은 단국대에서 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만난 것은 박정은 회장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런 회장을 뽑아 준 바로 단국대학생 여러분 덕분입니다. 저는 우리 박정은 회장님과 여러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박수)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한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젊음의 특권이고, 그것이 바로 젊음의 가능성입니다. 여러분의 희망과 가능성은 바로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 오랜만에 이렇게 대학교를 찾아오니까, 옛날 제가 학교다닐 때가 생각납니다. 아시는 분들이 많지 않으실텐데, 저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 평소에 싸이 미니홈피를 누가 관리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 전자공학과 출신인 제가 남에게 맡기겠습니까? 제 보좌진들도 비밀번호 모릅니다. 싸이질, 순전히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환호/웃음/박수)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학교를 다녔던 70년대에는 공대에 여학생이 드물었습니다. 여기에 혹시 공대 다니시는 여학생 계시나요? (예전보다 많이 늘었네요) 제가 처음 전자 공학과에 입학했을 때는 여학생이 딱 두 명이었습니다. 그나마 다른 한명은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는 바람에 저 혼자 다녔는데, 여자가 저 혼자니까, 인기 좋았겠죠? 공대 얼짱으로 인기 좋았었습니다. (환호/웃음/박수) 그런데 제가 처음부터 전자공학과를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당초 고등학교 때는 문과 였는데, 우리나라의 미래가 전자산업에 있다는 생각에 이과로 바꿔서 전자공학과에 갔습니다. 고등학교 때, 당시 우리나라가 수출 10억 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이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고민하면서, 많은 전문가분들과 얘기를 나누셨는데 저도 청와대에 있으면서 그런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때 주목한 것이 전자산업이었습 니다. 그 때까지 우리가 수출하던 것은 주로 가발이나, 인형 면직물 같은 거였는 데, 조그만 트랜지스터 하나가 20-30달러나 하고, 007가방 하나 분량이면 몇 만 달러나 한다고 하니까, 당시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또 무공해 산업이고, 손기술이 좋은 우리나라 국민들한테 아주 적합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국가적으로 전자 산업을 키우기로 결정 되었는데, 그걸 옆에서 보면서 저도 산업역군이 되어서 나라에 기여하려고 전자공학을 선택 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전자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에 있지만, 당시에만 해도 정말 우리 손으로 tv를 만들고 냉장고, 세탁기를 만들어서, 그걸 수출한다는 게 꿈같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꿈 만 같던 일들이 지금 현실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못 살던 나라가 지금 세계 11위의 경제규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대학생들을 보면 , 그 때 대학생들보다 훨씬 힘들어하고, 자신감이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 저희 때만 해도 대학교 다닐 때, 대학생활의 낭만을 만끽해도 졸업하면 취직할 곳이 많아서 원하는 곳을 골라 갔었는데, 요즘은 이력서를 수십 장 내도, 면접 한 곳 보기가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은 더 어려움이 큰 거 , 잘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희망을 찾 을 수 있는지, 오늘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저는 오늘 특강 제목을 ‘대한민국의 희망은 대한민국 안에 있다’로 잡았습니다. 여러분의 희망도 저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선배 가운데, 오승환 선수가 있죠? 아시아 최고의 마무리 투수이고, 올해 프로야구에서 47세 이브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정말 자랑스러운 선수입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큰 활약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승환 선수는 그런 최고 선수가 되기까지 야구선수로 겪을 수 있는 시련은 다 겪었다고 해도 정말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부상을 당해서 선수 생활을 그만 둘 뻔 했고 이 곳 단국대에 들어와서도 또 부상을 당해서 2 년 동안 아예 뛰지도 못하다가, 4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 보통 선수 같으면 포기하고 말았을 텐데, 오승환 선수는 포기하지 않았 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재활 훈련에 피땀을 쏟았고, 결국 오늘의 오승환 선수로 우뚝 섰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저 역시도 그 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총탄에 돌아가셨을 때,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데 몇 년 되지 않아서 다시 아버지까지 또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정말 숨 쉬는 것 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시련을 겪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가 겪는 시련이 가장 가혹 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 는 제목의 수필집까지 냈습니다. 읽어보신 분 없지요? 많이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도 저에게는 시련이었습니다. 우리 한나라당도 지금은 50%에 가까 운 지지율을 얻고 있지만, 그 동안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혹시 컨테이너 하우스에 살아보신 분 계십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컨테이너 하우스는 4월까지는 겨울이고, 5월부터는 여름입니다. 4월 까지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춥다가, 5월부터는 정말 찌는듯이 덥습니다. 바람도 안 통하고, 냄새와 먼지가 진동을 합니다. 저와 저희 한나라당은 그런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살았습니다. 그때가 천막당사 시절인데, 당시 저희 한나라당 지지율이 7%였습니다. 탄핵 역풍 때문에 당이 없어질 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 제가 당대표를 맡을 때 주변의 많은 분들이 말렸습니다. 저라고 왜 걱정을 안 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나부터 변화하고, 우리부터 변화하면 국민들께서도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하도 악수를 많이 했더니 손이 아파서 붕대를 감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왼손으로 악수를 하면서 다녔습니다. 그 때 다친 손목을 최근에 또 다쳐서 지금 이렇게 깁스를 하고 있는데, 저는 그때 우리 국민들을 보면서,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정책정당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국 곳곳의 민생현장엘 다녔습니다. 대표로 있으 면서 총 155회 민생현장에 갔습니다. 나갈 때마다 국민들 말씀을 수첩에 꼼꼼하게 적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국민들께서도 반신반의 하셨고, 우리 한나라당 내에서도 그런 많은 약속들을 지킬수 있을까 하고,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수첩을 보면서 당의 담당자에게 어떻게 조치했는지 확인하고, 끝까지 챙겼습니다. 처음 수첩에 적을 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하나 둘 풀리는 것을 보면서 저도 힘을 얻었고, 당직자들도 보람을 느 꼈습니다. 저보고 ‘수첩공주’라고 놀리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수첩 공주는 괜찮지 않나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 한나라당은 그동안 호남에서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호남을 방문할 때도 주변에서 ‘그런다고 호남에서 표 나오겠느냐?’, ‘그 시간에 차라리 영남엘 한번 더가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표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지역으로 갈라져 있어야 합니까? 저는 대표로 있는 동안 호남을 17번 찾아갔는데, 앞으로도 계속 기회만 되면 찾아뵐 겁니다. 저한테는 조금씩 희망이 보입니다.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 당이 호남에서 무려 8.2%의 지지를 받았는데, 저는 언젠가는 우리도 서로 화합하고, 지역주의 같은 것도 다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희 한나라당 지지율이 7%에서 50%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한나라당 안의 변화가 그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제 한나라당은 끝이라고 주저앉았더라면, 오늘의 한나라당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도 모두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이 많으실 것입니다. 취업이 가장 큰 고민인 4학년 학생도 계실 것이고, 속만 썩이는 애인이 고민인 학생도 계실 겁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책도 보고,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의논도 하고, 심지어는 점도 보러 다니고 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결국 어떤 경우에도 시련의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있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자기 안에서 희망을 찾을 때, 희망의 문은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 저는 우리의 희망이 우리 안에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희망도 결국은 대한민국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하거나 새로 탄생한 나라가 몇 개인지 아십니까? 85 개 국입니다. 그러면 이 85개국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나라가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딱 하나입니다. 바로,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전쟁까지 겪고, 나라가 분단까지 되었지만, 전 세계에서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기적의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힘은 전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부족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지금 일자리 걱정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러분들이 노력을 안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전세계 고등학생 가운데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이 우리나라 학생들입니다 . 학교만으론 부족해서 새벽까지 학원엘 다닙니다. 대학에 와서도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하고, 4년 내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실험실에서 밤새는 것이 우리 대학생들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확신하건데, 전 세계 어느나라 젊은이들 보다도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고, 그만큼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취직 걱정을 해야 하고, 좌절을 겪어야만 합니까? 문제는 딱 하나, 결국 국가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국민들은 21세기에 맞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국가의 리더십이 이런 능력이 발휘되도록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전자공학과 출신이라 컴퓨터로 설명해보겠습니다 . 펜티엄 듀얼코어 프로세서에 300기가 하드를 갖춘 최신형 컴퓨터라면 컴퓨터를 운용하는 os도 윈도우 xp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컴퓨터의 os가 dos 라면 아무리 포토샵, 한글 2007 같은 최신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도, 컴퓨터 자체가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저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 하드웨어도 충분한 수준에 도달해 있고, 국민 개개인의 역량도 최고의 수준인데, 정작 이것을 움직일 os만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 바로 국가적 리더십의 문제,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무한 성장의 가도를 달릴 때, 저는 그것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니까 우리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일어났는지, 그리고 국민 모두가 잘 살아보자고 일어섰을 때, 우리가 어떤 기적을 일구어냈는지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다시 그 힘을 우리 속에서 끄집어 낼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은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몫이며, 지도자의 책임 입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이 희망을 찾고, 우리나라가 희망을 찾기 위해서, 새로운 국가적 리더십을 만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입니까? 제가 한나라당 대표를 처음 맡았을 때였습니다.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아날로그 정당이었습니다. 홈페이지 방문객이 열린우리당의 반도 안 되었습니다. 제가 대표에 취임하면서 ‘디지털 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니까 모두 웃었습니다. ‘디지털, 인터넷, 사이버, 이런 것들은 열 린우리당이나 하는 거지, 한나라당은 안 된다’는 생각들이 지배적 이었습니다 . 저는 우리 스스로의 가능성을 비하하는 그런 생각이 정말 싫었습니다. 왜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포기부터 하려고 합니까? 그래서 디지털위원회를 만들어서 1주일에 한번 씩 회의를 하도록 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센티브까지 주면서 독려했습니다. 저부터 싸이질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그 한나라당이, 방문객수, 콘텐츠, 게시판 운영까지, 인터넷에서 압도적 1위입니다. 저는 리더가 방향을 잘 잡고,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얼마 든지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지도자가 정확하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사심없이 솔선수범 한다면, 얼마든지 재도약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흔히 ‘산업의 쌀’로 표현되는 중요한 핵심이 몇 가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산업의 쌀은 ‘땀’ 이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무언가 수확을 얻고, 발전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땀 흘리는 것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두 번째 산업의 쌀은 ‘철’ 이었습니다. 자동차, 조선, 기계 등 모든 산업은 철을 기반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세 번째 산업의 쌀은 ‘반도체’ 였습니다. 컴퓨터와 각종 정보통신 기기들이 모두 반도체를 기반으로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네 번째 쌀을 준비해 야 할 때입니다. 저는 우리의 네 번째 쌀은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21세기에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지식과 정보이고, 이제는 사람이 경쟁력입니 다. 건설이나 공장만으로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백 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부가가치를 올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한류 열풍으로 우리가 얻은 가장 소중한 소득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일류국가라는 인정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드라마 한편, 영화 한편의 수익으로 끝나지 않았고,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을 일류로 인정받게 만 들었던 것입니다. 문화와 지식이 산업을 이끈 현장인 것입니다. 앞으로는 사람한테 더 투자하고, 사람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는 창의력을 극대화시켜서 그것을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삼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리더십과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이것저것 지시하고 이끌어가면서, 국민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나서는 식으로는 더 이상 안됩니다. 기업과 국민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민간의 자율과 창의성을 최대한 북돋워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나라가 오히려 거꾸로 간다는 것은 현 정부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 도서관에서, 실험실에서, 강의실에서 땀 흘리는 노력들이 절대로 헛되지 않고, 그것이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부터 제가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이제, 조금 더 현실적인 말씀들을 드리겠습 니다. 여러분들 요즘 당장 눈앞의 취직도 걱정일테고, 조금 더 길게 보면 결혼 문제라든가, 육아 문제라 든가, 치솟는 집값까지 걱정스럽지 않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걱정의 반은 나라의 책임입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바로 서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더 많습니다. 당장 취직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보내는 사람 들도 많고, 졸업을 늦추려고 휴학을 하고, 대학원에 가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 그러면, 나라가 어떻게 해야 여러분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늘어나겠 습니까? 첫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것을 명심 해야 합니다. 일자리는 정부가 세금 거둬서 만들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투자확대 를 통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정부가 국민세금을 쏟아 부어서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약 2천 억원을 써서 약 2,800여명이 취업을 했는데, 일자리 한 개 만드는데 평균 7천만원이 든 셈입니다. 그렇게 만든 일자리가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입니다. 차라리 직접 돈을 주느니만 못한 결과 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일본이 10년 불황을 마치고, 경제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자리도 늘어나서 지금 일본 대학생들은 회사를 골라서 가고 있습니다. 취업률이 95%나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부러운 일입니까? 그동안 정부에서 직접 돈을 쓰던 정책을 바꿔서 기업들이 앞장서도록 규제를 없애고 감세를 하고, 정부 몸집을 줄인 결과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 니다. 정부부터 다이어트해야 합니다. 핸드폰도 슬림으로 가는데, 정부만 비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온갖 규제와 간섭을 하고, 세금과 반기업 정서로 손발을 묶는다면, 투자도 안되고, 일 자리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둘째는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가장 들어가고 싶은 기업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이라고 대답을 하실 겁니다. 월급도 많이 주지만, 삼성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로 개인의 가치가 올라가고, 삼성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환영받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경력직 취업 시장에서도 삼성 출신들이 가장 환영받습니다 . 21세기는 글로벌 시대입니다. 여러분의 일자리가 한반도에 국한될 수도 없고, 국한되어서도 안 되는 시대입니다. 일본으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여러분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삼성 출신이 국내에서 대접을 받듯이, 이제 대한민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세계의 기업들에게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 선배들은 세계 어느나라에 가도 차가운 대접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냐는 질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 그러나 이제 최소한 그런 시절은 지났습니다. 앞선 세대의 피와 땀이 만 들어놓은 결과입니다. 이제 21세기를 살아야 할 여러분들은 세계 각국에서 가장 기술이 뛰어난 인재들,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들로 인정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가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다음 정부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서, 우리 젊은 이들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가장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축구가 4강에 오르자, 전 세계의 스카우터들이 한국 선수들을 주목했듯 ,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 당연히 세계의 기업들은 한국의 인재들에게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안에 숨어있는 희망을 찾는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지금껏 노력을 많이 해오셨지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더욱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을 때, 국가가 여러분의 미래를 열어드릴 수 있는 대한민국 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그러려면 더 이상 정치가 국민을 실망시켜서는 안될 텐데,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실은 저도 우리 정치 때문에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년 정월 대보름날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큰 달맞이 행사가 있어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긴급 의원총회가 열려서 대전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실망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부산 행사장 제 옆자리에 앉기로 되어있던 사람이 바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동건씨였거든요. 악수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야지 하면서 기대가 컸었는데, 못 만나게 되니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참 정치가 싫었습니다. 우스개소리로 드린 말씀이지만, 실제로 우리 정치가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많이 드리고 있죠? 정치가 국가와 국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준이 국민에게 맞춰져야만 합니다. 국민과의 약속 이 중요한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제가 대표가 되고 나서 첫 어린이날에 저는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모임을 찾아갔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캠페인도 벌이고, 실종 아동을 찾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한나라당 의원들이 각국의 입법례를 검토하고, 우리 현실을 조사하고, 꼬박 1년 동안 준비를 해서 2005년 5 월 3 일에 실종 아동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 날 국회에 실종아동 부모님들께서 오셔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니까, 작년 한해 2,695건의 미아신고가 접수됐지만, 아이들 모두가 며칠 만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제도적 장치 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제도를 만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 지켜졌을 때,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당 사상 처음으로 대국민 공약 실천 백서까지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국민과 했던 약속들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가고 있는지 고백하는 책이었습니다. 지금 까지 민생 탐방의 약속이 40% 정도 실천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앞으로 100% 가 될 때까지 실천해 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런 과정들이 정치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리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 수첩에는 민생탐방에서 들었던 아픈 사연들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그 약속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수첩을 들여다봅니다. 아마 오늘도 여러분께서 저한테 많은 것들을 말씀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수첩에 그만큼 또 약속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들은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정치에서 희망을 발견하 실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우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민족입니다. 아니, 애당초 불가능이라는 것이 없는 민족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 안에 있고, 그 희망의 원천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들입니다. 여러분이 나라의 희망이고, 가족의 희망이고, 학교의 희망이면서, 저에게도 희망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을 만나서 제 가슴속에 또 다른 희망을 안고 돌아갑니다. 정말로 여러분과의 만남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이제 제 가족입니다. 여러분도 저를 언니처럼 이모처럼 생각해 주시고, 어려운 일 있을 때면 제 싸이에 사연도 올려주시고, 이메일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성심성의껏 제가 할 수 있는 대답도 해드리고, 여러분의 마음을 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주셔서 정말 고맙 습니다. 박근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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