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중국에 가서 4~5월경에 남한에서 폭동을 일으킴과 동시에 남침할 계획임을
알리며 동의를 구하던 바로 그 무렵 북한군 특수부대가 여러 루트를 통해 침투하고
있었다. 발견된 무장간첩들은 침투한 전체 간첩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광주시민으로 위장하고 유혈폭동 선동하기 위해 침투하다가 붙잡힌 간첩의 모습
(북한 인민무력부 직할부대 "심리전" 대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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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17일 대한뉴스 중 위 영상물 주요 내용
- 3/23 새벽 서울 한강 하류 무장간첩 3명 침투
- 황중해 일병, 김범규 이병의 수훈으로 완전 소탕 - 무장공비의 격퇴경로 - 새벽 2시 50분, 초소에서 약 100m 떨어진 물속에서 3명의 무장공비 발견 - 김이병이 소대본부에 보고하러 가는동안 황일병은 공비들이 초소 30m 지점까지 접근하는 것을 주시 - 새벽 3시 15분경 황일병의 M16 발사, 2명을 소탕하고 김이병과 합세하여 도주하던 1명 소탕 - 오분대기조와 수색수호대가 도착하여 집중사격을 한후, 완전히 소탕 - 한강변 발자국과 170여점의 노획품(일제잠수복, 물갈퀴, 기관권총, 저격용 소음권총 등) - 이 사건은 우리의 정전변화를 틈타 대규모 무장게릴라를 난파시켜 주요시설 파괴, 요인암살 등을 획책하는 계획의 일환 - 황중해 일병, 김범규 이병의 모습
- 3/25 새벽 포항 앞바다 무장간첩 출몰
- 무장간첩의 격퇴경로 - 0:20분 포항 동쪽 12해리에서 괴선박 발견 - 1:50분 1차교전 - 2:25분 태진호 어부 3명사살 - 2:50분 포항 동쪽 35 해리에서 무장침입선 격침 - 공비자료 사진 전시
- 27일 새벽 김화지구 간첩침투
- 간첩 사진 - 무장간첩의 침투와 격퇴경로 - 2인조 무장간첩은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600M지점까지 침투 - 1명 사살, 1명 도주 - 노획품 전시와 침투, 격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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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차 군사정전위원회(판문점) - UN측 수석대표 호스테틀리 소장은 간첩도발 항의 - 북한측 대표 한주경씨 조작극이라고 응대 - 50'남북협상 제의와 6.25남침, 72'남북대화와 땅굴, 남북총리회담 실무자 접촉과 3건의 무장간첩 - 노획품 전시 - 간첩자수 및 신고 강조기간 :4/1~5/30 - 상금 : 3000만원~5000만원으로 인상, 신고시 2000만원 보상금 - 전방의 경계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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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 당시 폭도들이 세무소와 방송국에 방화하고 해방구를 설치하였던 이유.
김일성이 1980년 5월 대남공작원들에게 내린 비밀지령의 전문:
- [비밀지령]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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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한군이었던 탈북자 증언: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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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선 씨가 알고 있는 광주봉기 침투자는 조장이었던 4군단 70정찰대대 상좌 황종인, 부조장이었던 4군단 33사단 중좌, 조원으로 침투했던 4군단 정찰대대 작전집체조의 홍씨 성을 가진 참모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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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 당시 침투한 북한군 부대 소속 중위 증언 동영상
- 이 증언은 지난 12월 26일 기자회견 때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장교들이 한 증언입니다. 이 증언을 끝까지 들으시며 사진 자료들을 보시면 1975년 3월 월남 중부지방 시민군 창군의 주체가 월맹군이었던 것처럼 광주 시민군 창군의 주체도 북한군의 남침을 목적으로 하는 북한군이었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시게 될 것입니다.
-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김용순 대남선전부장 겸 정무차관이 광주폭동 배후세력. 당시 차수석 당서기인 김정일이 총책임자.
북한 인민무력부 직할부대인; "심리전" 1개대대 약 200명, 특수전" 1개 대대 약 300명, 도합 2개 대대 약 500 여명이 군인과 무장폭도들 틈에 섞여서 유언 비어 유포. 극렬 대항! (출처 : http://study21.org/518/ 광주사태연구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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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광주청문회 때 이해찬이 무장공비 시체 사진들고 나와 광주시민군 시신
사진이라며 사기치던 모습 이해찬 주장대로라면 여기 무장공비들이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라는 것인데, 이해찬이 어찌나 사기를 그럴듯하게 쳤던지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 이해찬은 청문회 스타로 떴다.
아무데서나 발포하며 총을 들고 다녔다는 시민군의 모습. 광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때 당국에서 무기 반납을 호소하며, 무기 회수를 위해 애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광주사태의 진실: 영화 "화려한 휴가" 실제인물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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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려한 휴가" 실제인물 사진전/ 광주 탈레반 시민군 무기?
노무현에게 묻는다. 폭도들이 탈레반처럼 총기무장하면 민주화운동이라는 논리는
도대체 어느 나라 논리냐고? 5월 22일 광주시민군에도 외국인 인질을 납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나친 반미는 광주 민심이 돌아서게 한다는 들불야학 청소년들의 만류에 따라 그
명령은 취소되고 대신 "광주 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항공모함 코렐호를
부산항에 입항시켰다"는 유언비어 대자보를 벽보로 광주시 전역에 붙였다.
518광주시민군 실탄
518광주시민군 총기
폭탄을 제조하는 518광주시민군
518광주시민군 트럭
518광주시민군 무기 지급
518광주시민군 칼빈소총
518광주시민군 지프
518광주시민군이 군인들에게 마구 쏘아대었던 총기
518광주시민군 총기
518광주시민군 트럭
북한군 증언에 따르면 광주사태 때 침투되었던 북한군 여기 이 시민군 보초병과 같은 장발을 하고 시민군으로 위장하였다 한다.
기동경찰로 위장한 518광주시민군
기동경찰로 위장한 518광주시민군
기동경찰로 위장한 518광주시민군
공부하기 싫어 전남도청에서 "화려한 휴가"를 즐기는 영화 "화려한 휴가" 실제인물들
소년병까지 징집하였던 518광주시민군
518광주시민군 장갑차
트럭타고 폼잡는 518광주시민군
기동경찰로 위장한 518광주시민군
마스크 쓴 무장폭도들
(출처 : http://blog.daum.net/sionvoice/10753520 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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