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망가진 정치, 언론, 검찰, 법원,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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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몽블랑 작성일17-03-02 13:45 조회1,9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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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국민의 힘으로 태형이라도 쳤으면-
우리 시골 마을에서는 오늘 방장(坊長), 이 박사, 병원 스텝, 몸이 불편한
根重 형까지 6명이 서울 시청 앞 태극기 집회에 참가했다. 지난여름에도
아름드리 나무를 쪼개 겨울철 땔감으로 만들던 장사, 근중 형은 허리 협착증
으로 6개월째 고생을 하고 있는데도 굳이 태극집회에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발걸음을 옮기는 근중 옹이 무리일 것 같아
몇 번씩 다짐 받듯이 물었지만 “나라가 망하겠다며 모두들 걱정을 하고
있는데 허리 아픈게 대수인가, 아파도 머릿수라도 보태야 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98년전 3.1만세 운동을 앞두고 남강 이승훈 선생에게 독립선언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을 때 “와석종신(臥席終身/자리에 누워있다가 죽음)할
줄 알았더니 이제 죽을 자리가 생겼구나“하며 기꺼이 응했다는 선생의
기백(氣魄)과 사생관(死生觀)을 보는 것 같았다.
당시 남강 선생은 56세였고 근중은 당년 76세 아닌가? 의논 끝에 이 박사와
병원 스텝, 그리고 방장도 가기로 했다니 붙여(?)주기로 했다. 서울 가는
버스에는 국회 의정감시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영구 선생도 타고 있었다.
태극기를 매달 큼직한 낚싯대까지 갖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프로(?)급이시다.
12시 30분쯤 시청 앞에 도착하니 광장, 세종로 쪽 남대문 쪽 소공동 쪽으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전경을 찍는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1/10, 1/20을 찍는 것도 어림없는 일이다.
서울 도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 태극기 물결이 넘쳤던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한문 근처에서 우연히 가요작사가 최송학 씨를 만났다. 그는 작년 11월
자신이 만든 노래 “내 청춘 찾으러가자"를 개사(改詞)해서 ”대통령 찾으러
가자“라는 노래로 만들어 탄기국 본부에 기증한 뒤 그 일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으로 다니면서 집회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애국가와 삼일절 노래에 이어 연사들의 강연을 듣고 광화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남대문까지 동쪽으로 종로5가,
청계천 쪽으로 도로는 모두 태극기와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다. 세종로, 종로,
시청앞, 청계천, 소공동 일대는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마이크를 통해 외치는 연사들의 피 끓는 호소와 청중들의 함성은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 순수한 열정과 염원은 사람들의 무심했던 마음을 일깨우고
잠자던 애국심이 달아오르는 것 같다. 마음과 마음들이 은연중에 합쳐진
때문인가 부듯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다.
이제 사람들은 엉터리 언론들이 해온 짓이 어떤 것이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정치 모리배들과, 그들의 비위만 맞추는 정치 검찰, 촛불의 눈치를
보던 법원,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강성노조와 종북 세력들의 폐해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에게 속아서는 안 되고 그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다시는 어처구니 없는 어리석음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정치 언론 검찰 노조 불순분자를 감시 감독해야 한다.
그들의 기본이 망가져 버렸고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국가적 비상 상황이다. 기본이 망가져 버린 정치,
언론, 검찰, 법원, 노조로는 정상적인 국가 기능을 할 수없고 기대할 수도
없다. 그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법과 질서가 회복될 때까지,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다수 국민의 힘으로 규찰단(糾察團)이라도 조직하고
태형(笞刑)이라도 때리게 했으면 좋겠다. 국난에 처하면 늙은이들도 죽을
각오로 나서겠다는 판에 民草들이 오죽 분통이 터지면 이런 생각까지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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