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개헌과 분당의 기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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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나무 작성일11-02-14 08:03 조회4,322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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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개헌과 분당의 기로에
MB가 나서도 안 될 개헌에 이재오가 목매는 덴 딴 뜻 있을 것
□이재오 제멋대로 개헌?
이재오는 2010년 10월 29일 국회 국정감사 석상에서 개헌문제관련 답변을 통해 “개헌은 국회에서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여야 간 합의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지만 논의의 틀, 논의의 계기는 특임장관이 만들 수 있는 것이며,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이 특임장관의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오는“지난 20년간 시행해온 5년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실현되고 안 되고 간에 이 개헌과제는 제시해야 하는 게 시대적 임무”라며 “불가능해도 시대적으로 필요하면 제시하고 넘어가는 게 정치적 임무”라면서도, 대통령으로부터는 “개헌특임을 받은 바도, 협의한 바도 없다“고 부정했다.
그런데 정부조직법 제 17조 ①항에는“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 또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무총리가 특히 지정하는 사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1명의 국무위원(이하 "특임장관"이라 한다)을 둘 수 있다.”고 하여 아무리 MB정권 제2인자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지시나 사전 협의 없이“제 멋대로 개헌”에 날뛸 수는 없다.
따라서 이재오는 신성한 국정조사석상에서 <허위증언>을 했거나 사사로이 제멋대로 개헌을 추진하는 월권과 불법으로‘국헌문란(國憲紊亂)을 자행’한 것으로 국무총리는 이재오의 해임을 건의하고 대통령은 이재오를 즉각 해임함과 동시에 검찰에 사법처리를 지시했어야하며, 국회 또한 특임장관 탄핵에 나섰어야 한다.
만약 대통령의 특별지시나 하명이 없었다면, 이재오는 MB계 수장으로서 MB계를 위한 개헌에 나선 것으로“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헌법을 위배한 것은 물론, 정부조직법 17조 특임장관의 임무를 위반함과 동시에 국가공무원법상 법령준수와 성실의무, 복종의 의무를 정면으로 짓밟고 위반한 징계처분대상이다.
그러다가 지난 1일 대통령이‘대통령과의 대화’라는 TV 쇼에 어느 대학교수 한사람을 5,000만 국민의 대표인 양 앉혀놓고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물가와 구제역이나 전세대란 같은 민생문제나 소말리아 해적, 북 핵 및 연평도포격 등 안보문제 보다는 이재오가 나서서 국민적 관심사로 만들어 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개헌문제에“지금이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늦지 않다.”며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는 이재오가 개헌문제에 대하여 이명박 대통령과“사전협의를 했거나 특별지시를 받은바 없다.”고 국정감사장에서 답변 한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국민을 우롱하였다고 밖에 달리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지만 MB정권거짓말규명청문회를 따로 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재오 개헌주도를 위험시 하는 이유
1979년 10월 6일 내무부장관은 북괴의 적화통일혁명노선에 따라‘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조직,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꾀했던 대규모 반국가단체를 1979년 10월 4일 경찰이 적발, 총책 李在汶(45·前언론인·서울 강동구 잠실 시영아파트 11동 408호) 등 일당 20명을 검거하고 나머지 54명을 수배했다고 발표 했다.
이 사건은 주범 이재문과 신향식, 안재구, 최석진 등이 사형을 선고받고 이재오 이수일 임헌영 등 73명이 실형을 언도 받아 1980년 12월 24일 대법원에 의해 형이 확정 된 초대형 간첩사건으로서 이재오는 韓國柱라는 가명으로 암약한 남민전 주간사령부(晝間司令部)라 불린 민투(民鬪) 책임자로 징역 5년 중형을 받았다.
이재오는 그 후로도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과 민중당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외세배격(미군철수), 매판파쇼타도(국가보안법철폐), 민중이 주인 되는 정부수립, 1국가2체제국가연합(연방제통일) 등 북괴의 적화통일노선을 여과 없이 실천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아 왔으며, 아래 예에서 보듯, 우익애국진영에서는 이재오의 사상이념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온 게 사실이다.
△정밀분석/李在五의 통일방안은 헌법위반 (조갑제 닷컴)
이재오는 국가연합이란 말로 포장했지만 그의 통일방안은 사실상 북한정권의 연방제이거나 亞流(아류)이다. 이는 公人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헌법위반 행위이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 제1, 3, 4조가 규정한 국가이념과 정통성과 통일의지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이재오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통국가인 대한민국과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을 동격으로 놓으려 한다. 북한정권에 대해선 지엽적인 비판을 할 뿐, 노동당과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을 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서는 가혹한 비판을 한다. 그는 보수단체의 모임에 와서도 '박정희 독재'라는 표현을 썼다.
이재오의 통일관은 從北정당인 민노당과 비슷하고 대한민국 헌법과는 전적으로 배치된다
△이재오의 정체 (양영태 칼럼 2006.7.6)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남민전 출신이며, 옥고를 치른 반국가 행위자라는 경력을 지닌 사람이다. 남민전 사건이란, 6·25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친북한 지하당 조직에 의한 적화음모로 베트콩식(式)의 투쟁방식을 도입한 공산주의 조직이었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전향의사를 밝히지 않은 이재오 의원은 한나라당 당대표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상태로 판단된다.
□이재오 계의 체질화 된 반 박근혜
이재오의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반감은 적대적(敵對的) 수준을 넘어 증오(憎惡)와 저주(咀呪) 수준에 이른다고 할 만큼 강하고 뿌리 깊다.
당대표경선 3일을 앞둔 2004년 7월 16일 “박근혜 대표는 유신 그 자체이며, 독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면서 “독재자의 딸이 당 대표가 되면, 한나라당은 망 한다.”며, “부친의 공과는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유신독재 역사적 과오에 대해선 박 전 대표가 사과해야 한다.”고 압박함으로서 박정희(유신)에 대한 저주와 박근혜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 했다.
이재오는 2004년 8월 5일에도 유신 잔재 청산을 주장하며 박근혜 대표를 공격하면서 유신 잔재 청산을 주저할 경우 이회창 전 총재의 전철이 되풀이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박 대표를 비난한데 이어서
2004년 8월 29일 연찬회가 예상대로 주류와 비주류의 격전장이 된 가운데 여섯 시간여 동안 마라톤 토론을 진행했고, 이재오, 김문수, 박계동 의원 등 당내 비주류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의원들은 박 대표를 향해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사퇴", "유신 사과" 등을 요구하며 박 대표를 맹공 압박했다.
이에 대하여 박대표로부터 “대표 흔들기엔 다른 목적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고 직격탄을 맞은 김문수 의원은 취한 상태에서 “제2의 유신을 선포해 죄송하다”고 외치는 등 박 대표가 사실상 당내 독재를 하려고 한다는 뿌리 깊은 적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박근혜와 상극(相剋)이라고 할 정도로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하여 강한 적대감을 가진 이재오는 “웃고 말지. 됐다”라고 기자들의 질문에도 입을 닫았으며,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말없이 식사를 한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고 당시 언론보도가 말해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안상수는 2005년 9월 14일 인터넷매체 데일리안과 대담에서 “박근혜 퇴진과 한나라당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고 이틀 뒤에는 김문수가 “진짜 혁신을 하려면 박근혜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된다.”고 홈페이지에 적음으로서 열린우리당과 박근혜 퇴진요구를 공조하고 공교롭게도 박근혜 한나라당을 <반통일 반민족패당>으로 규정한 9월 15일자 북괴 노동신문 논조와 궤를 같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재오 분당 딴살림의 전주곡인가?
17대 대선후보 당내경선이 치열하던 2007년 7월 1일 MB 경선후보 측 서울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공성진이“(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되면) 이재오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수도권 의원들이 분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가 보도하여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크게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7년 8월 20일 전당대회에서 경선에 승리한 MB계 수장 이재오는 10월 26~27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2007국민승리연합’ 중앙위원 워크숍에서 “한나라당이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집권 이후 신당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여 親朴과 결별(축출)의사를 노골화 했다는 사실이 11월 5일 뒤늦게 보도되면서 대선을 코앞에 두고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8년 4월 총선 편파공천 후폭풍으로 미국에 머물다가 2009년 3월 귀국 후 칩거를 하던 이재오가 귀국 3개월여 만인 2009년 7월 13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지난 2006년 7월 전당 대회 당대표 선출시 박 전대표가 강재섭을 밀어 ‘다 이긴 판’을 엎어버렸고 2007년 8월 대선후보경선에서는 이재오가 이명박 캠프를 지휘하여 박근혜를 패퇴시켜 1 : 1 무승부로 "삼세판이 남았다"고 하여 언론에 가십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후 2010년 8월 7일 동아일보와 회견에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김문수에 대하여“문수? 문수와 친하지, 친한 정도가 아니라 동지(同志)니까”라고 답한 반면, 박근혜에 대하여서는 그저 “좋은 분이지, 좋은 분이지”라고 하여 두 사람을 同志와 좋은 분으로 확연히 구분 지었다.
원론적으로 정당이란 것은 정권획득을 목표로 한 <이념과 정책의 공동체>라고 할 때에 한나라당에서 한 솥밥을 먹고 있는 김문수나 박근혜가 다같이 理念과 政策을 공유하는 同志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양인을 동지와 좋은 분으로 구분 짓는다는 것은 이재오 나름대로 다른 기준이 있음을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문수의 경우는 1990년 11월 10일 “외세(外勢)와 군사독재를 종식시켜 민중주체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겠다(창당선언문)”면서 “민중의 역량을 결집해 독재(獨裁)권력과 독점(獨占)재벌, 외세(外勢)의 지배(支配)를 청산함(강령)”을 표방하고 산업과 토지의 국유화를 목표로 출범한 민중당에서 사무총장과 노동위원장을 역임한 이재오의 [同志]이다.
그러나 이재오에게 있어서 박근혜는 여전히 <독재자 박정희의 딸>일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좋은 분이지”라고 립 서비스를 하기도 속으로 낯간지러웠는지도 모른다.
□이재오 당신은 누구인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외세를 배격하며, 민중국가를 건설하고, 산업과 토지를 국유화 한 후 북과 1국가 2체제 국가연합(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면서1990년 8월 3일 북과‘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를 구실로 30명의 단체를 구성해서 1991년 2월 23일에는‘조선로동당’의 초청방북을 위해 발버둥 치던 이재오 당신은 누구인가?
1979년 10월 4일 적발 된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 된 이재오가 1982년 1월 14일자 옥중서신에서“세한연후(歲寒然後),지송백지후조야(知松柏知後彫也)”라는 옛말을 인용하면서 “추운 겨울이 지나봐야, 소나무나 잣나무(상록수)의 절개를 안다”는 뜻이라고 절개(節槪)를 강조 했다.
서신에는 이어서 “인간도 일단 어려움이 닥치면, 금방 실의에 빠져 자기만이 가장 고생하고 괴로운 사람처럼 인생을 절망으로 보내거나, <지조(志操)를 버리고 변절(變節>하거나, 부정과 불의에 가담하거나, 쾌락을 추구하거나 하여 인생의 정도를 벗어나게 됩니다.”라고 한 후, “인간의 가치는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고귀한 신념>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1989년 1월 29일 전민련 조통위원장이 되기 전, 1989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섯 번째 옥중생활 이전, 1990년 11월 10일 민중당을 창당하기 훨씬 전부터 가지고 있던 송백(松柏)과 같은 <지조와 절개>는 무엇을 위한 지조와 절개였으며, <고귀한 신념>은 어떤 신념이었는지 밝혀야 할 거이며, 아직도 그때 간직하고 있던 지조와 절개를 지키고 고귀한 신념에는 변함이 없는지 고백해야 한다.
2008년 1월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보수우파단체가 연합하여 개최한 이명박 대통령당선 축하모임에서 이재오는“가끔 나에게 이재오는 왜 전향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우파가 기치로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군사독재와 싸웠는데 거꾸로 좌파라고 한다. 내가 우파인데 어떻게 전향하나”라는 궤변으로 억울함을 토로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어떤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좌파 정권 종식에 실제로 연사로 나왔던 사람이 이 의원,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의장이다. 누가 이 분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이 분들은 대한민국의 검증을 받았다. 오히려 이 분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전향을 애써 보증해 줬다.
그런데 전향(轉向:changing direction)이란 ‘말로만, 입으로만’하는 게 아니라 위수김동과 친지김동에 새끼김동 3대세습을 철저히 배격하고, 적화혁명이론과 강령, 투쟁지침(규약,선언.지령)과 함께 조직(노동당/지하당/전위조직)가입경위와 내용, 조직원색출과 활동(범죄)사실자백 등 공산당 식 <지조와 절개>를 버리고 반역조직의 일망타진에 앞장섬으로서 <혁명적 동지애>와 <조직보위책무>를 완전히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반공방첩에 사실적으로 기여 했을 때라야 轉向을 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오나 김문수 손학규 심상정 등 자칭, 타칭 ‘민주화 인사’들로부터는 위와 같이 명백한 전향사실이나 객관적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비극이라면 비극이며 체제에 대한 위협이라면 위협이다.
다만, 천주교신자들이 매일같이 “내 탓이오”라고 부르짖으며 참회를 하고, 기독교신자들이 주기도문을 입에 달고 살며, 불교신자들이 불경과 주문을 입이 닳도록 염불하듯이 단 하루 한 시라도,“빨갱이”소리를 듣던 사람들은 자신의 반역을 통회(痛悔)하면서 개헌나팔이 아니라 전향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다.
□개헌강공의 속내는 이재오의 살길 찾기
헌법상 국회와 함께 개헌발의권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개헌은 국회가 할 일, 주도하지 않겠다(2010.11.3)”며, “청와대가 나서면 될 일도 안 돼(2011.1.25)”라면서 “지금 여야가 머리를 맞대면 늦지 않다.(2011.2.1)” 고 남의 일 보듯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대통령이 개헌을 관철하려는 의지도, 개헌이 성사되리라는 기대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 대목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룬 李대통령과 앞날을 예측 못할 이재오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에 올인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아니며, 정치안정과 선진조국건설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 무엇보다도 (특임장관)힘이 있을 때 개헌논의를 빌미로 MB계를 재결속시켜 포스트 이명박을 노리고, 개헌도 경선도 실패 했을 경우, 여러 차례 내비쳤던 바와 같이 분당이라도 하여 일정세력과 지분을 가지고 정치생명을 연장하겠다는 계산 아래, 당장 2012년 총선에 공천 줄 세우기라도 해 보자는 의도가 엿보이는 “이재오의 살길 찾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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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바다님의 댓글
검은바다 작성일
이재오도 그렇지만, 우파의 탈을 쓴 김문수 같은 것들이
대선 후보로 거론된다는 자체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