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인에 대한 지박사님의 글을 읽고 생각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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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無相居士 작성일10-05-15 10:52 조회6,979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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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인들은 지금도 호남푸대접이란 의식이 강다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하기야 과거의 수많은 정권시절(김대중, 노무현 정권 제외)에는 경상도 또는 친경상도적인 국회의원들이 전라도 또는 친전라도적인 의원들보다 많았지요. 국회위원들은 자신의 표밭구축을 위해 출마지역 발전에 신경을 쓰게 마련인 것이 한국적 풍토이다보니 전라도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었던 측면도 다소 있기는 하겠지요.
그런데 그들이 이유불문코 무조건 박정희 대통령을 계속 저주하지 않으면, 그들의 우상인 김대중을 찬양하는 데에 모순이 생기게 될 수밖에 없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비록 경상도 출신이었지만 한 국가의 살림을 책임진 분답게 겱코 호남에 대한 편파적 의식을 가진분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분들도 계시겠지만 하나의 중요한 비화가 생각납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만들어진 여수(당시 여천)의 호남정유(지금의 GS 정유)는 당시의 럭키그룹(LG 및 GS 그룹의 전신)에서 추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처음에는 미국의 모빌 회사와 합작을 추진하다가 모빌측에서 국가의 보증(Governmental guarantee)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를 박대통령이 단호히 거절함으로써 협상이 깨어지고, 그 틈바구니에서 칼텍스 회사가 국가 무보증으로 순수 민간차원의 합작회사를 제시함으로써 오늘의 GS 정유까지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모든 애로가 해결된 것으로 여겼던 럭키그룹에서는 다시금 박대통령의 지시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럭키그룹에서는 정유공장의 입지를 충청도 비인으로 확정하였으나, 박대통령이 무조건 호남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들으면, 이 역시 박대통령이 철권의 독재를 한 증거물이 되겠지요.
당시의 우리나라는 지금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국가적 자본력이 엄청 취약할 때였고, 그런 중에도 국가적인 기간산업 중의 하나인 정유공장 건설에는 기본적으로 바다를 끼어야만 하는 입지조건은 필수였습니다. 동해, 서해, 남해를 비교하면 동해 쪽이 바다가 깊어 대형 선박 특히 정유공장의 경우 대형의 유조선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항만구축을 위한 인프라 비용이 가장 적게 들고도 가능한 곳이 동해입니다. 지금의 울산 SK 정유공장(대한석유공사<KOCO>의 후신)이 국내최초로 건설된 것이 그것이지요.
원유수송비의 경제성을 생각하면 최소한 30만톤급의 유조선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30만톤의 유조선이 바다에서 뜰려면 최소한 10 훼덤(Fathom, 1 fathom=1.83 m) 이상의 바다깊이가 필요한 바, 그 때부터 럭키그룹은 밤낮없이 혈안이 되어 해안을 뒤지기 시작였으나, 호남 해안가에는 이런 조건의 해안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다가 오랜 기간의 끈질긴 노력끝에 지금의 여천 삼일면 해안 쪽에서 30만톤이 겨우 비비고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면적의 장소(바다)를 기적같이 찾게 되어 오늘의 정유공장이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의 여천석유화학 단지가 형성된 것이지요. 당시의 국내 도로망 및 철도(단선) 상황으로 볼 때, 기름의 소비가 가장 큰 경인지역으로의 수송비가 당시기준으로 울산정유공장에 비해 년간 200만불 이상 더 소요되는 불리점이 있었고(초기 정유공장 건설비가 당시의 달러 가치로 5500만불), 그 사실을 박대통령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런 비화를 생각할 때 과연 박대통령이 호남푸대접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어른은 무리를 해서라도 호남쪽의 미래를 생각하시는 지극한 마음과 혜안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댓글목록
커피님의 댓글
커피 작성일누가 뭐라해도 지역 감정이라는건 김대중에 의해 극대화 되었고 김대중이 가장 큰 수혜자이며 자신의 정치생명을 그 지역감정이라는 것으로 연장해 가며 평생을 울거먹었습니다. 김대중은 지역감정이라는것을 자신의 가장 큰 무기로 삼았고 그러는동안 전라도 사람들도 가장큰 피해자로 남게되었습니다. 이제 전라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볼때입니다. 그동안 김대중이 걸어논 최면술에서 깨어날때입니다. 역적 김대중을 현충원에서 몰아내는일에 전라인들이 앞장서야겠습니다.
나그네1님의 댓글
나그네1 작성일전라도사람들의 피해의식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여러 말글이 있지만 피해와 피해의식이 있다는것은 인정해야할것입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면 그것을 아우르고 민족화합을 위하여 일익을 감당해야할 것이 당연할진데 오히려 부추기고 도외시한다면 이미 지도자로서 자질이 없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지만원씨는 전라도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화합할수 있는방안을 마련해야지 오히려 부추기는것 같습니다.
한가람님의 댓글
한가람 작성일
나그네님... 호남인의 피해의식... 그 실체가 모호합니다.
이땅에서 호남인에게만 피해를 준 주체가 누구인가요???
호남푸대접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일제 식민통치는 전국이 함께 당한 일인데, 그때 호남인만 괴롭혔나요???
해방되고 이제 60년이 조금 더 지났는데, 호남만 특히 푸대접할 만한 시간이나 있었나요???
80이 넘으신 우리 노친네는 50세 정도까지는 바다구경도 못하신
강원도 촌 노인네 입니다.
그런데도 옛날부터 전라도 사람들과는 혼인도 하지 않으려 했다는 말씀은 하십니다.
왜정시대에도 그랬다면... 그것은 옛날부터 그 지방 사람들이 다른 지방에 비해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월에 부대끼며 살다보니 스스로도 호남인에 대한 몇가지 영상이 그려집니다.
1)비교적 머리가 좋다, 영리하다... 그러다 보니 손해볼 일은 조금도 안한다.
2)물질적 이해에 엄청 예민하다.
3)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 거의 없다.
4)자신이 잘못한 일도 자기의 책임이 아니다... 사돈에 팔촌까지 추적해 가서라도 타인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라고 강변한다.
5)뒤통수 치기를 잘한다.
뭐 이런 정도로 머리에 각인이 돼 있습니다.
호남 푸대접이란 호남인을 싫어하는 타지방의 정서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의 피해의식이란게... 다른 지방에 가서 이런 정서를 느끼면 그냥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해법이 밖에 있을까요???
해법은 안에 있습니다.
호남인들이 이상의 내용을 직시하고 스스로 고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아마 정치적인 푸대접으로 친다면 강원도가 호남보다도 더 받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