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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많은 애국시민들에게 전파되어 이명박정부가 확실하게 진상을 규명하여 줄 수있도록 적극협조 당부드림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회복을 위하여 많은 국민들에게 전파 여론을 형성하여 주십시요
진심으로 협조 당부 드림니다.
그리고 혐오스러운 사건그림이 있으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니 만큼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송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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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대통령님, 구천을 헤매고 있는 한 맺힌 애국영령들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빨갱이정권에서 은폐 조작된 연천GOP 피격사건의 진상을 밝혀라!!
북괴로부터 당한 피격사건을 내부의 하극상 사건으로 조작하였습니다.
2005년 6월 17일 새벽 북한병사 1명이 검거되면서 이 지역에는 ‘진돗개2’가 발령되어 양측 모두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2005년 6월 19일, 28사단 최일선 초소인 530 GP 근방에서 ROTC 42기인 김종명 중위가 병사들을 이끌고 차단작전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적으로부터 로켓 등 미상화기 9발의 공격을 받아 김종명 중위를 위시하여 8명의 장병이 전사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무조건 굴종하던 노무현 정권은 북괴를 옹호하기 위해 억울하게도 김동민 일병을 범인으로 조작하였습니다.
김동민 일병이 상급자들의 괴롭힘에 대한 앙갚음을 하기 위해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K-1 소총으로 실탄 44발을 연발 사격해 GP장 중위 등 8명을 사망케 하고 4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사건이라며 억울하게도 모든 죄를 김일병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6월 18일, 정동영은 북한에 가서 북한에 전력 200만KW를 공급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김정일과 노무현의 정상회담을 구걸했습니다. 530GP의 실상이 알려지면 노무현 정권의 퍼주기가 여론에 의해 제동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에 의해 당한 피해를 일개 일병에게 뒤집어씌우는 공작을 명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을 고이 길러 군대에 보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죄 없는 자식이 상관을 죽이고 전우 11명에 총구를 휘두른 패륜아가 되었으니 부모의 가슴은 얼마나 메어지겠습니까?
적으로부터 공격당해 전사한 병사들이 동료병사로부터 숨졌다고 하면 이 얼마나 불명예인 것이며, 전사한 장병들의 영혼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이런 기막힌 조작들이 허용되고 간과된다면 장차 누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싶겠습니까?
군 최고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 기막힌 사건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힘으로써 군에 기강을 세우고, 애국심을 회복시키고, 국가의 신뢰를 회복하여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의혹 짙은 사실들>>
- 사건전일 제28사단과 최전방부대는 철원 5사단 27연대에서 북한 사병 리동수 검거에 따른 조치로 “진돗개 둘” 이 발령되고, 2005.6.18 - 6.19일간, 야간 차단작전이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국방부와 육군은 은폐하였습니다.
- 군 수사발표대로 내무실 취침 중 당한 사고였다면 모두 평상복 차림이었을 것이고, 모든 전투복에 피가 젖을 리 없습니다. 군은 이 피 묻은 전투복을 모두 소각했습니다. 사고 후에 회수된 총은 사고 전의 재고에 비해 22정이나 부족했고, 차단작전시만 휴대하는 K3 기관총이 하나도 없습니다. 참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 미스터리입니다.
- 억울한 김동민 일병의 범행총기에는 지문이 없습니다. 범행 시 목소리를 듣거나, 범행을 목격한 자가 일체 없습니다. 사건당시 부대일지 내용입니다. “아 530GP 북한으로 추정되는 미상화기 9발 피격, 5명 사망” “야간 차단작전 중 사고였다, 사고 후 그 상황에서 시신을 배치하라는 지시를 받고 피를 닦아가며 혼자 시신을 배치했다”
- 포격으로부터 살아남은 25명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에게는 조기전역 및 국가유공자로 대우했습니다.
김동민 일병을 괴롭혀 처벌을 받아야 할 7명에게도 조기전역과 국가유공자 6-7급의 특혜를 주었습니다.
- 이 중 2명의 생존자는 “부끄러운 국가유공자는 싫다”면서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 사고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부GP장 최충걸 하사와 박준영 일병은 유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분명히 작전 중 사고라 했고, 이는 녹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2007년 국정감사장에 국방부 수사관들에게 불려가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그 대가로 박 일병은 상이 7급에서 6급으로 상향조정됐고, 최 하사는 경계근무수칙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음에도 중사로 진급되었습니다.
7. 2002년 서해교전 당시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실제 교전이 일어난 사건이었는데도 일부 부상자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530GP 사건은 내무반 하극상이라면서 어떻게 생존자 전원에게 조기전역의 특혜와 국가유공자의 특혜를 동시에 안겨줄 수 있는 것입니까?
8.사고부대 중대장을 비롯한 모든 지휘관들은 아직까지도 처벌은커녕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2008년 11월 23일 강원도 철원군 181GP 내무반에서 수류탄 1발이 터져 이모(21) 이병과 허모(21) 병장 등 5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중대장으로부터 사단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문책징계를 받았습니다.
9. 아군 수류탄 파편은 쇠구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상자 몸에서 추출된 파편은 사다리꼴 파편이었습니다. 수류탄에 의한 피해일 수 없는 것입니다.
***. 연천530GP사건에 대하여 범국민적인차원에서 진상규명촉구를 위한“진상규명국민협의회”를 결성하고자합니다. 관심 있는 애국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 드림이다.
(pys5590@hanmail.net, dhc22@hanmail.net)
□ 추모카페명 : 전방부대총기난사희생자추모
2010년 5월 10일
연천530GP사건유가족회(김용배,김길남,이문행,이찬호,전제용,
조두하HP:011-9829-9677, 박영섭HP:011-9424-5590,)
국사모(국가사랑모임)(송영인HP:011-896-9211),
시스템클럽(지만원)자유시민연대(정기승,류기남,안응모,김한웅,이강욱,송영인,김구부) 대한민국어버이회(이칠성) 실향민중앙회(채병률)
연천530GP사건유가족회:(김용배,김길남,이문행,이찬호,전제용, 조두하HP:011-9829-9677, 박영섭HP:011-9424-5590,)
국사모(국가사랑모임) 회장 송영인HP:011-896-9211),
<<<아래 글은 유가족이 밝힌 진실의 내용입니다.
전사들의 시신사진들을 직접 보시고 전사자들이 수류탄폭발이나 총기사고로 사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까?
이를 은폐 조작하였던 빨갱정권이 자행한 천인공노할 국기문란사건의 진실를 이명박정부는 확연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다 많은 애국시민들에게 전파하여 이명박정부가 밝히지않으면 안된다는 국민들의 여론의 소리가 전파 될 수있도록 적 도와주십시요!!!>>>
연천 530GP 왜곡된 진실은?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
저희는 지난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 530GP에서 발생한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들의 유가족입니다.
군 수사기관은 당시 6월19일(일요일) 02시30분경 28사단 530GP 후방 초소에서 근무중이던 김동민 일병이 선임병들의 질책과 폭언에 앙심을 품고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K-1 소총으로 실탄 44발을 연발 사격해 GP장 중위 등 8명을 사망케하고 4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사건이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다.
그러나 의문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건은 다음과 같이 발생한 것입니다.
6월18일 밤 10시경 530GP 소대원 14명(GP장1명, 부GP장1명, 상병7명, 일병4명, 의무병1명)이 노루골 차단작전 지역(GP)에서 직선거리 약 1km(실제거리1.2km 지점)에 투입돼 작전을 마치고 19일 새벽 01시경 GP로 복귀중 GP로부터 약 900m 지점에서 북한군의 RPG7 로켓포 7발의 기습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 당했으며 4명은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또한 GP옥상에도 동일한 로켓포 2발의 공격을 받아 옥상 초소 경계근무자 2명도 사망했습니다.
이처럼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진실을 밝히고져 합니다. 이에 유가족들은 수사기록, 부대일지 생존 소대원들의 진술 및 각종 제보 등 첨부된 근거자료에 의해 군에서 은폐, 조작한 사건임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군은 김동민 일병의 범행동기를 유발시킨 1차적 책임자 7명의 질책사병과 그 외 군 복무규정 위반 및 경계수칙 위반 초소 근무자 3명의 사병도 군법에 의한 처벌은 고사하고 조기 전역의 혜택과 함께 2006년 초에서 6월 사이에 3차에 걸쳐 530GP 소대원 21명 모두를 국가유공자 6~7급으로 지정해 국고를 축내고 있습니다. 반면 서해교전 부상자들은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않아 지금도 정부와 투쟁 중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6월19일(일) 530GP 인접부대 야간작전 실시현황.
6월18일(토) 23:00~6월19일(일) 01:00간 520·531GP 야간 차단작전을 실시하였습니다.
작성자 : 3군사령부 전투정보과장 대령 손기화(☏031-331-2220)
- 국회 국방위원회 황진하 의원실에 제출된 자료 중 - |
둘째, 군은 02시경 전 군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해 전 군에 비상을 걸었다가 해제된 뒤 군 수사관들을 530GP로 파견해 작전지역에 투입되었다가 귀환한 부GP장에게 사건을 은폐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그 당시 연대장이었던 오주석 대령은 지통실과 통화에서 “대응 사격 했느냐?” 라고 물었고 2006년 4월2일 월간 군사세계 박계향 기자가 “사건당일 작전에서 복귀가 왜 늦었느냐?”고 질문하자 오 대령은 “차단작전은 월광에 따라 복귀가 빠를수도 늦을 수도 있다며 그날 작전은 하자없이 수행되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지통실 당직사령 정판영 중대장도 ‘최초 미상화기 9발 피격’ 이라고 보고했으며, 05시30분~06시30분 사이에는 사망한 유가족들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작전중 사고-폭탄사고”라고 연락을 취했습니다.
셋째, 군에서 발표한대로 내무반 총기 난사사건이라면 19일 새벽 5시경 28사단 공병대가 투입돼 GP옥상 복구작업을 할 일이 없음에도 복구작업을 강행할 이유가 없었으며, 당시 투입된 사병은 GP주변 철조망에 혈흔은 물론 희생자들의 의복과 신체 일부분이 산재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군에서 사망 장병들의 전투복 등을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해 보존하지 않고 소각한 것도 진실 은폐의 의혹을 더욱 짙게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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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학 몸에서 나온 파편 (왼쪽부터 시계방향 파편 밑면 - 윗면 - 측면 확대 사진) |
현재 우리나라 GP에서 사용하는 KG14의 파편은 쇠구슬 |
넷째, 군 수사기관 발표대로 내무반 사고라면 위 사진에서 볼 때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수류탄과 총상에 의해 생긴 상처가 아닙니다. 전 국방부장관이었던 정래혁, 윤성민씨와 재향군인회장이었던 고 박세직 회장 및 참모진 10여명, 성우회 회장 및 사무총장도 확인해 줬습니다.
2008년 11월 국방위원회에서 한민구 당시 육군참모차장은 6사단 181GP 수류탄사고에 대해 보고하면서 KG14 수류탄은 1000여개의 쇠구슬로 형성되어 있다고 보고했는데, 내무반 사고라는 530GP 부상자의 몸에서 나온 파편은 마름모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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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원) 미상화기 열화탄에 의해 생긴 화상 [군수사발표-수류탄 폭발로 인한 파편상] |
군은 박의원 상병이 수류탄 폭발로 인한 복부파열 개방창에 의해 현장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위의 증언자들은 열화탄에 의해 사망한 것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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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욱) 미상화기 열화탄에 의해 생긴 파편창 [군수사발표-총상으로 검안] |
또 이건욱 상병은 사고당시 우측 어깨 및 좌측 대퇴부 파편창으로 검안했다가 총상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사진을 보면 총상이 아님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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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 미상화기 열화탄에 의해 생긴 파편창 [군수사발표-총상으로 검안] |
김종명 중위 역시 사고당시 파편창으로 검안했다가 총상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당시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군의관 유성호 대위는 허위검안 댓가로 전역 후 서울대학교 법의학 교수로 임명돼 현재 재직중입니다.
유성호 대위는 총상에 의한 삽입구는 거리에 상관없이 형태가 일정하며, 탄환의 직경보다 작다는 기존의 총기 법의학적 이론을 부정하고 20~30㎜ 심지어 50~60㎜ 크기의 상처도 총상의 삽입구로 허위 검안한 것입니다.
(김인창)미상화기 열화탄에 의해 생긴 파편창 [군수사발표-맹관총상으로 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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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철)미상화기 열화탄에 의해 생긴 파편창 [군수사발표-맹관총상으로 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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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사건발생 후 530GP 보유무기의 수량이 맞지 않습니다. 보유무기는 K-1, K-2가 36정, 공용화기인 K-201과 K-3 등 총 42정이지만, 사고 후 현장촬영 사진에는 20정만 나와 있다. 나머지 22정(K-1 7정, K-2 11정, K-201 2정, K-3 2정)은 차단작전에 투입되었다가 회수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여섯째, 범인으로 지명된 김동민 일병의 변호를 맡은 이기욱 변호사는 법무법인 창조의 대표로 군 수사관이 김 일병 아버지를 찾아와 무료변호를 해 주겠다며 이 변호사를 소개해 변호를 맡았습니다. 이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도 역임한 인물로, 지난 2003년 법원 개혁을 위한 토론회에서 ‘사법개혁 당면과제’라는 주제를 발제했고 KBS이사로도 재직했습니다.
일곱째, 사고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부GP장 최충걸 하사와 박준영 일병은 유가족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분명히 작전중 사고라고 진술했는데 유가족들이 진술내용을 녹음해 현재 보관중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역 후 2007년 국정감사장에 국방부 수사관들에게 불려가 진술을 번복해준 댓가로 박 일병은 상이 7급에서 6급으로 상향조정됐고, 최 하사는 경계근무수칙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음에도 중사로 진급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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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탄이 폭발한 530GP 내무실 천장?? |
수류탄이 폭발한 530GP 내무실?? |
여덟째, 수류탄은 폭발시 40퍼센트의 파편이 위로 향한다. 하지만 석고판으로 이루어진 내무실 천장은 전혀 깨지지 않았습니다. 김 일병이 총기를 난사했다는 방향의 관물대 역시 스물다섯발을 난사했다고 하지만 총탄의 흔적이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28사단 81연대 gop16소초에서 근무했던 병사입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김종명 대위님 외 모든 전우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도합니다.” - 무적태풍 (2009.11.11 20:25, IP 210.110.211.51) -
(530GP 희생자 8명의 미니홈피 ‘싸이월드’에 올라 온 글)
결론: 이 사건을 재조명해 볼 때 지난 정권에서 햇볕정책으로 인하여 자국민에게 저지른 범법행위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미 떠나간 그들이지만 적어도 조국을 위해서 명예롭게 싸우다 죽었노라고 함께 눈물 흘려줘야 할 이들이….
누구든 이 사건을 재조명해 진실을 온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적어도 그들이 하늘에서 “아버지, 어머니 저는 억울해요”라고 소리치지 않게 명예를 되찾아줘야 합니다.
아직 세상이, 사랑이, 인생이 뭔지도 모를 꽃같은 나이에 피워보지도 못하고 명령만이 존재하는 군에서, 내조국 내부모 형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군생활하다 떠나간 그들을 위해서 이들에게 씌워진 오명만은 반드시 벗겨줘야 합니다. 처참한 모습으로 떠나간 그들이 깨끗한 모습으로 웃으며 그곳에서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이제는 진실을 밝혀줘야 할 때입니다.
부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리고 슬픈 마음을 헤아려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음을 밝혀주시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연락처: 박영섭, HP 011-9424-5590 HP: 전제용,HP 010-4856-3598
2009년 12월 유가족 일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