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던 다수의 민심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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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몽블랑 작성일16-12-12 22:59 조회2,621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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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던 다수의 민심을 보다> 20161210
나는 박근혜 대통령 탄액안에 대한 국회의 결정이 있은 다음날인 12/10일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여러 친구들과
통화도 했고 특히 몇몇과는 시간과 장소까지 정해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10시50분께 현장에 도착하니 시청앞 광화문 청계천 일대는 발을 내딛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태극기의 물결로 가득찼다. 주최
측에서 집회의 개시를 알리자 그 많은 사람들이 얘기들을 멈추고 시끌벅적
하던 광장과 거리가 조용해졌다.
국기에 대한 경롓! 구령이 떨어지자 귀에 익은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가 낭독되었다.“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어서 4절까지 애국가 제창이 있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국기에 대한 맹세 낭독 때 숙연해진 분위기를 깨고
애국가를 부를 때는 목청을 돋우어 맘껏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라고 돼 있는 제 4절을 부르는데 내 옆에 서 계신 영감님은 울음이 섞인 듯
떨리는 음성이 됐다.
그 모습에 同化된 듯 주변에 계시던 아주머니들 가운데 몇 명이 눈물을 닦는
모습이었다. 나도 가슴 뭉클하고 콧날이 시큰거리며 알 수 없는 자긍심과
기쁨 같은 것이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만세 3창이 있었을 때 나는 하늘을 향해 양팔을 힘차게 뻗어 올리며 큰 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만세를 불러본 것은 내 생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연설을 마친 뒤 주최 측에서 도보 행진 코스를 안내하면서
“여러분, 시장하시지만 오늘 하루 점심 안 잡숴도 괜찮죠?” 하고 외치자
집회에 참석한 군중들이 힘찬 목소리로“네!!”하고 대답했다.
모두들 웃으며 큰 박수를 쳤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종로, 2가, 3가, 4가,
5가, 마로니에 공원까지 도로를 꽉 메운 수십만 인파가 질서 정연하게
도보행진을 한 뒤 2차 집회에 참가했다
그 날의 감동을 시인 송현 씨는 “이것이 진짜 대한민국 민심이다”
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가 현장에서 읊은 시를 옮겨 싣는다.
<이것이 진짜 대한민국 민심이다>
1. 오늘 아침 일찍 서둘러서 내 딴에는 완전무장을 하고 동아일보 앞으로 가려고
5호선 지하철을 탔다. 박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었으니 김이 새어 몇 사람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라도 나가서 한 자리라도 채워야 한다.
그런데 지하철 5호선 5번 출구에 사람들이 꽉 막혀서 나는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다. 지하 통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다들 손에 촛불이 아닌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2. 동아일보 앞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뒤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만치 태극기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청계천 광장 쪽 가시거리까지는 물론 사방이 온통
태극기 물결로 넘쳐났다. 세상에! 나는 보수 우파 쪽 행사에 이렇게 엄청난
인파가 모인 것은 내 평생 처음 보았다.
3. 나는 중학교 때 4.19 데모에 참가하여 처음에는 구경을 하다가 나도 데모대
따라 돌을 던졌다. 돌을 던지는 것이 옳은 일 같았다. 경남도청 유리창을
최소한 석장 이상 깼다. 대학 때는 한일회담 반대 데모에 참가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10월 유신 반대 데모에 참가하였다. 중학교 선생으로 나는
전국에서 최초로 삭발을 하기도 했다.
6.10 항쟁 때 데모로 날을 새웠다. 광주사태 때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계엄사에
붙잡혀 가서 별별 고생을 다 하니 열흘만에 10킬로가 빠졌다. 그런데 보수 우파
사람들이 오늘처럼 이렇게 엄청나게 많이 모인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안 할 말로
그 동안 나는 보수 우파 쪽 사람들은 다 바보들인 줄 았았다.
서을역 집회에 나가보니 그리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보수 우파는
고생을 더 해야 할 것이라 탄식했다. 월남처럼 공산화 되어 나라가 망해도 싸다고
생각했다. 속이 상할 때는 좌파의 죽창에 옆구리를 찔려봐야 정신 차릴 것이라
악담을 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이 엄청난 보수 우파의 태극기 물결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그동안 염려한 것이 모두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동안 내가 밤마다 구국 삐라를 만들면서 가슴 태우며 나라 걱정을 하면서
잠을 설쳤는데 나보다 더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다는
것을 보고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4. 나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 꽃발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시거리에는
모조리 태극기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수많은 태극기
물결 속에 광화문 광장에 모이는 좌빨 언론에 세뇌된 멍청이 들쥐는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이다.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얼라들이 자기 집 강아지 부르듯이
대통령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온갖 악행을 해대던 그런 구제불능의 쓰레기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태극기 물결을 보는 내 눈을 의심하고 내 목이 메이게 하는 것은 나이 든
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러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백발이 성성한 분도 많았고, 꼬부랑 할머니도
많았다. 심지어 휠체어를 타고 나온 분도 많았고 지팡이를 짚고 나온 분도
많았다. 만약 좌빨들과 시가전이 벌어지면 싸우다 죽을 각오를 나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분들은 나보다 더 강한 구국 일념으로 죽을 각오를
하고 나온 분들 같았다.
그 순간 내 불에는 나도 몰래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이제 나 혼자
밤 잠 못자고 삐라를 만들어 페북에 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보다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분들이 저리도 많은데 이제 나는 할 발 물러서도 되지
싶었다. 그런데도 왜 내 뜨거운 눈물은 그치지 않는단 말인가!
5. 나는 재작년에 한글학회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 반대 대책회의 중에 발언권을 얻어
앞에 나가 내 주장을 하고 자리로 돌아와 그만 꼬꾸라지고 말았다. 나의 심장이 멎었다.
심폐술을 해도 심장은 뛰지 않았다. 119에 실려서 강북삼성병원 응급실로 갔다. 심장으
로 피를 공급하는 혈관 세 개가 다 먹혀서 피를 공급하지 못해 심장이 멎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죽었다. 담당 의사는 내 가족의 동의를 얻어서 이판사판으로 철사를 넣어서
막힌 혈관을 뚫기로 했다. 어차피 죽은 몸이니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이고 이판사판이 아닐 수 없었다. 첫 번째 혈관 뚫기를 시도했다.
바늘이 딴데로 삐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두 번째 혈관을 뚫기를 시도했다.
천만 다행으로 혈관이 뚫려서 피가 조금씩 공급되어 마침내 죽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 내가 의식을 회복 했을 때 담당 의사가 내게 말했다.
---18분만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처음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기적입니다! 일종의 부활입니다! 나는 죽었다 살아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부활이다. 그렇다면 하늘은 왜 나를 다시 살려주었을까?
그동안 나의 삶이 허접하였으니 사람답게 살고, 가치 있게 살라고 마지막
기회를 주었지 싶다.
6.나는 부활한 이후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을 내딛듯이 지여처다 정신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그제 박대통령 탄핵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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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님의 댓글
우진 작성일모두가 다 옳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