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 극복할 경계의 큰 눈뜨고 할 말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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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강 작성일16-09-29 21:06 조회2,2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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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국 극복할 경계의 큰 눈뜨고 할 말도 하자!
해괴망측한 작금의 현실을 걱정으로 묘사하신 글, 몇 번이고 읽어야 했습니다.(*주)
많은 분야에 적극 공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이 해괴망측한 현상들이 “뻐꾸기를 키우는 국민의 탓!”에서 라기 보다는 차라리 우리 국민들이 “거짓의 선전/선동에 무관심하게 넘어갔던 탓!”이란 관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뻐꾸기를 키웠다면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으나 속아서 넘어갔다면, 그 이유를 깨우치기만 하면 얼마든지 희망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관점은 소련 군정하의 북한에서 있었던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46.3.5)과 남쪽이 모르도록 비밀리에 단행된 화폐개혁(47.12.1)이 있었는데도 이 사실에 눈감고 지나쳤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위 두 사건의 여파로 제주 4.3사건을 비롯한 각종 사건 사고들이 그 후에 파생되었다는 연관성을 국방부 위촉 4.3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감지하였고 내용의 전파를 위해 노력했으나 관심유도에 실패하면서 저는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의 결재란에 부동의 서명을 하고 4.3위원을 사퇴하였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국민들이 미소 군정시절에 북한에서부터 시작된 대남공작이 아직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경계의 큰 눈만 다시 뜨게 된다면 앞으로 예상되는 추가 사건들까지도 예방하면서 대한민국을 튼튼히 지켜갈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많은 국민들이 무관심하게 넘겼던 몇 가지 정황사례만 짧게 부언합니다.
- 아래 -
1. 스탈린 명령/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소련군 대위 김일성은 인민위원회를 구성, 친일파 지주/관료들을 숙청하고 그들의 토지를 무상몰수(46.3.5)하여 소작농들에게 무상분배함으로서 스탈린 만세 김일성 만세소리를 만들어 내는 데 일차 성공하면서 그 후의 북한은 타도의 대상을 모두 친일파로 매도해 왔음. 이로 인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던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감사의 환호도 아무 공로도 없었던 소련으로 돌아가는 결과를 초래하여 북한 주둔의 소련군은 일본군 항복을 접수한 민족의 해방군으로 환영받고 남한의 미군은 일본군을 계승한 한반도의 점령군이라는 선전선동이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도 통하는 현상을 초래했던 것임!
2. 그러나, 6.25정전 직후 소작농에게 무상분배된 토지를 집단농장의 소유로 전환하면서 김일성은 지주와 관료는 물론 농민들의 재산까지도 모두 빼앗아 세습독재의 기반으로 활용함으로서 민족전체를 배반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임! 민족전체를 배반한 북의 공산독재정권은 "민족"을 논할 자격도 없음에도 "민족끼리"를 논하고 있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에도 이에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침묵하는 현실이 매우 답답함!! (공산주의에는 민족의 개념이 있을 수 없으며 오직 타도할 계급만 존재)
3. 미군정하의 38선 이남에서도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을 따라서 하자는 주장이 남로당의 48년 5.10선거 거부와 제주 4.3무장폭동으로 나타났던 것을 알아야 함! (참고: 48년 5월 8일 제주발 동아일보기사에는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읍면동에 인민해방군을 조직하고 “목포에까지 김일성군이 내도하였으니 안심하라”고 선동하고 있음! “순경 1만원, 형사 2만원, 경위이상 3만원, 총경급에는 100만원의 살인현상금을 걸고 경찰관 살해를 촉구하고 기타 신문에서도 제주 남로당의 각급 인민위원회 결성대회에서 스탈린과 김일성이 긴급동의로 명예위원장에 추대되고, “곧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시작 된다” “친일경찰을 사살하라”는 등의 선동문구가 발견됨! 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 300원)
4. 당시 이승만 박사는 미국사회는 물론 한반도에 주둔했던 어떤 미군장성누구보다도 높은 최고의 학력으로 세상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았기 때문에 놀라운 주도권을 발휘하여 UN 감시하의 5.10선거를 통한 제헌국회에서의 합법적 과정을 거쳐서 토지의 유상인수 유상분배 정책을 관철하여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 발전의 기초를 닦아 놓았던 것임! 그럼에도 이승만 박사는 토지의 무상몰수/무상분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친일파로 그리고 미군은 일본군을 계승한 점령군으로 매도되는 현상까지 발생함!
5. 부-자-손 3대에 이르는 북의 세습독재 핵심권력은 북한동포의 인권이 개선되어 민주화가 달성되는 날에는 민족을 통째로 배반한 거짓말의 원죄로 생존이 불가함으로 영구세습독재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핵무기개발도 그 방편의 하나로 보아야 함.
6. 북한의 대남공작에 큰 동력을 부여했던 기막힌 사건 하나는 38선 이남에도 스탈린 만세! 김일성 만세!를 불렀던 사람들이 다수 발생했었다는 사실임!! 이는 소군정이 단행한 비밀화폐개혁(47.12.1)에 대한 조치지연으로 북한에서 사용중지된 조선 은행권이 대북무역상을 통해 선박으로 운반되고 이 화폐를 무상제공받은 행운아(?)들이 생겼다는 것임! 이들이 그 후 종북 제 1세대가 되어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임!! 당시의 대북무역상이 성시백 이었다는 사실을 (고)김용규 선생을 통해 득문한 바, 성시백은 서울에서 간첩죄로 처형(50년 6월27일)되었고 그 공로로 사후 북한 '영웅 1호'가 되었다고 함!
7. 이들 종북 제 1세대와 그 후손들은 북한이 붕괴되는 날에는 신분노출로 대한민국에서의 생존이 불가하다는 판단에서 북한의 체제 유지 지원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임! 민주화를 논하며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했던 5.18 유공자라면 최소한도 북한동포의 인권개선과 민주화의 선봉에 서야만 함에도 일체 침묵하면서 오히려 대한민국 민주화의 절대유공자 이승만 박사와 산업화의 절대 유공자 박정희 장군까지 친일파/독재자로 몰아가는 현상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한 것임.
8. 미소 군정시절에 있었던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과 비밀화폐개혁은 그 후의 대한민국 사회에 형언불가의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에도 이 분야를 연구한 경제학과 역사학 학자들이 없었다는 것이 최대의 유감임!!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위 두 분야에 대한 연구와 사실의 공론화는 대한민국의 정통성확보를 위해서도 절대 필요한 바, 많은 학자들의 참여가 요구됨.
따라서 백범 김구선생에게 자신을 김일성 특사로 소개하며 대남공작을 했던 성시백의 찬양보도(“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가 5.18의 제2차 대법원 판결 직후인 1997년 5월 26일자의 노동신문에 특집 보도되었음에도 이 사실조차도 공론화되지 않은 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었던 배경에 대한 과정과 책임의 소재도 국가의 안보차원에서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할 필요가 있음!
9. “10년 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전문”, "대한민국의 위기시작은 1997년 5월 26일", "성시백 2세를 감시하고 막아야 나라를 구합니다." 등의 글이 google이나 naver 등에서 탐색됩니다. 애국시민들이 이 내용을 파악하신 후 경계의 큰 눈뜨시고 할 말을 하시게 되면 대한민국은 튼튼히 지켜질 것을 확신하며 "빨간 '뻐꾸기'를 키우는 대한민국 국민!"이란 걱정의 글을 써 주신 <국검>님의 건승, 건필을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만세를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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