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5공세력이 5.18에 대해 절대로 입을 열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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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벽달 작성일14-11-24 23:03 조회2,969회 댓글8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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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선언 바로 전날인 6월 28일 자정을 기해 전두환은 수방사를 동원, 수도권 지역에 위수령을 발령해 운동권, 반정부 세력을 몽땅 잡아들일 계획을 세웠지요. 예상 인원은 약 10만명(?) 1만인가?
서울시내 각 대학교에 전방지역 장벽자재를 동원하여 철조망을 설치하고 수용할 계획이었음.
그런데 비상발령 직전 당시 민정당 총재였던 노태우가 전두환을 찾아가 독대후 갑자기 비상발령이 취소되었음.
취소된 이유가 노태우가 권총을 차고 들어가 협박했다는 말도 있으나 이는 전혀 신빙성이 없는 말이고 노태우가 전두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협박한 것으로 판단됨.
추측되는 내용은 전두환 및 5공세력이(노태우도 포함)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을 축소은폐하고 그 댓가로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에 추천된것.
(김재규가 부하 몇 명 데리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박대통령 시해했다고 생각하는 천진난만한 분은 없겠지요?)
* 세부적인 박대통령 시해 배후세력 및 시해동기는 다음을 참조 ; cafe.daum.net/ncoms (현대사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서)
전두환이 재빨리 김재규를 체포하여 사건이 일단락 되는듯 하였으나 조사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관련자들 규모가 전두환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정도로 대규모였던 것으로 추측(나라 자체가 뒤흔들릴 정도?)
이에 최규하와 전두환간에 이미 체포된 김재규 단독범행으로 만들기로 합의. 단 군사력을 보유한 참모총장 정승화만은 체포하기로 합의하고 대신 최규하가 전두환에게 . 대통령을 넘겨주는 조건(?)
버림받게 된것을 알게된 정승화가 연행에 불복하여 일어난 사건이 12.12.
대통령의 꿈이 날라가게 된 것을 알게된 김영삼과 김대중이 극심한 저항을 하고 내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 1980년 5월 22일에 계획된 김대중내란계획임(5.18은 김대중 체포에 저항하여 일으킨 사건)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의 생각은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면 박정희처럼 장기집권 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임.
최규하 내각의 발표대로 헌법을 개정하고 개정헌법에 의해 공정한 선거를 치룬다면 사실상 김대중이 내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을까?
전두환이 대통령이 될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518당시 보안사령관에 불과한 전두환의 이름이 주로 거론 된 것으로 판단됨.
김영삼 정권이 5.18을 내란이 아닌 민주화운동으로 만드는데 전두환과 5공세력이 침묵하는 대신 박대통령 시해 축소은폐 사건은 묻어두기로....
전두환과 5공세력에게 5.18은 억울한 누명에 불과하지만 박대통령 시해 축소은폐사건은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어 질 일임.
따라서 전두환과 5공세력들은 절대로 5.18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한다.
이상 두서없는 소설임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세부적인 박대통령 시해 배후세력 및 시해동기는 다음을 참조 ; cafe.daum.net/ncoms (현대사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서) - - - - - - - 본문 게시판에서도, 여기서도, 역시, 뜨질 않뉴면요! ,,. 여불비례, 총총.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링크에 표시했는데....
회원가입해야 읽을 수 있도록 되었네요.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이지요.
그래서(박정희의 죽음을 두고 전두환과 더러운 뒷거래) 역대 정권들이 전두환 추징금을 강제로 환수하지 못하고, 전두환은 전두환대로 서로가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6년간이나 버티고만 있었지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니 전두환이 꼼짝 못하고 몽땅 털어서 추징금 완납 한거지요.
시스템 클럽에서 아무나 씹어댈 정도로 박근혜 그리 호럭호락한 여자 아닙니다.
사방이 온통 적뿐인 한가운데서 홀로 고군분투 하는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경제적, 와교적 파탄까지 일으켜 박근혜 흠집내려 하고,
죄없는 수백명의 어린학생들까지 수장시켜 이것이 박근혜의 책임인양 국민을 호도하는 무리들 입니다.
천진난만한 어르신들, 멍텅구리 일베들 엉뚱한 길로 몰아가는건 일도 아니지요.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문제는 북괴군 600명의 개입을 전두환이 과연 모르고 있었냐? 하는건데....
알고 있었다. 쪽으로 무게를 두고 싶네요.
600명이나 되는 적이 내려오려면 간첩선이나 잠수함이 적어도 20~30척은 동원이 되야 하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전두환 입장에서는) 어디서 한탕 크게 헤집어 주어야 하는데, 그래야 왁자지껄한 파리떼 잠재우고, 정의감에 불타는 국민들 안보의식 잔뜩 부풀려 위풍당당하게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는데...
그게 학생들 돌멩이만 가지고는 영 ~~~쩝~~~
북한의 무장군 수백 정도면 충분 하려나???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5.18에 북한국 개입설 공론화 하는것?
간단해요.
"전두환이 정권을 잡기 위해 북한군 600명을 연고생으로 위장시켜 데려와서 광주시민들 수백명을 죽게했던것 같다." 이렇게 공론화 하면 518 애들이 들고 일어나 사실을 밝히라고 하겠지요.
어쩔 수 없이 5공측에서 누군가는 나설테고....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나쁜놈은 마찬가진데....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그리되면 "그동안 아무도 밝히지 못한 추악한 음모를 지만원 박사가 천신만고의 노력끝에 밝혀냈다.
지만원 박사야말로 대한민국의 마지막 희망이요, 자존심이다." 이렇게 되냐요?
아니면 일베애들 동원해 한번 흔들어 놓든지....
걔네들 요즘 할일없어 걸스데이 치마자락 들추기나 하며 놀고있는것 같던데....
삼족오님의 댓글
삼족오 작성일
5.18 당시 광주시민들이 시민군에게 등을 돌린 이유는
북한 특수군의 개입와 주도가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 입니다.
광주교도소 습격을 북한체제와 무전교신해독으로 참호를 파고 대기하여
조준사격으로 북한특수군이 전멸 당하여 전투력을 상실하자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측에 광주수복을 요청하게 되었고
정리가 된 것입니다.
단 최규하정부와 신군부가 북한의 특수군의 개입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특수군의 대거 침투에 대한 책임론이 있게 되므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상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발표를 하지 않고 극비로 처리 한 것입니다!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어쩐지 핵심도 빗나간것 같고....
구구한 변명처럼 들리는데....
핵심은 전두환과 5공세력이 박대통령 시해사건을 축소은폐하는 댓가로 최규하 정권으로부터 대통령직위를 강탈(?)하려는 음모로 인해 이에 위기를 느낀 김대중, 김영삼이 내란까지 일으켰고,
지만원박사께서 전두환과 5공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이들이 518과 무고함을 증명하고자 하여도 "다 지난일 가지고 쓸데없는일 하지마라."하며 거부하는 이유가
1. 518은 전두환과 5공에게는 억울한 누명에 불과하지만
2. 이 억울함을 풀려고 한다면 이보다는 더욱 어마어마한 대통령 시해사건 축소은폐까지 불거지므로 이들이 518에 대해 입을 열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30년도 훨씬 더 지난 일가지고 새삼 책임론은....
이미 북한군개입 밝혀질대로 밝혀진거고 518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면
1. "북한군 개입사실 몰랐다."고 하여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면 되고 아니면
2. "알았으나 군의 사기를 고려, 당시에는 극비에붙였다." 하면 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