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의 정치에 급급해 하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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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VERGREEN 작성일14-11-04 10:23 조회2,202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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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난이니 운동이니 하는 말은 그때그때 해당 정권의 정서에 맞게끔 붙여 묘사하는 단어 구사로서 그 역사적 사건의 위상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의 위정자나 교육자들은 올바른 표현을 써 후손에게 바른 교육과 모범을 보이겠다는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조석지간으로 변화무쌍한 정치를 한다.
(동학란)---말 그대로 난이다. 그런데 요즘 ‘동학농민운동’이라한다. 김영삼이 ‘5.18폭동사태’를 ‘5.18민주화운동’으로 격상 시킨 것을 시발점으로 반란군이 무기 들고 살인하고 관공서를 접수하는 정치적 폭동들이 ‘3.1절’이나 ‘4.19학생데모’같은 민족적 의거처럼 참신한 이름으로 둔갑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 망치는 민주화의 매국노들이 자기들 정체성 보신을 위하여 역사를 뒤집기 시작한 것이다.
작금에 와서 ‘동학농민운동’, ‘동학운동’, ‘동학농민전쟁’이라 칭하는 그 사건은 1894년 동학 지도자들과 동학 교도 및 농민들에 의해 일어난 민중의 무장 봉기를 가리킨다. 조선의 양반 관리들의 탐학과 부패, 사회 혼란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가 1882년(고종 19년) 전라도 고부군에 부임된 조병갑의 비리와 남형(濫刑 법에 따르지 않고 함부로 형벌을 가함)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부패 척결과 내정 개혁, 최제우의 처형에 따른 교조신원(敎祖伸寃運動)의 기치로 일어난 동학 농민군 중 일부는 명성황후 세력의 축출과 명성황후의 제거를 위한 무력 집단이 필요했던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았다. 파벌 싸움이나 일삼는 나라의 위정자들이 워낙 세상 물정에 어두워 보잘 것 없는 경제에 낙후 된 군사력으론 국내의 난마저 진압할 힘이 없었다. 결국 대원군과 민비세력은 청국과 일본을 다시 불러들이게 되었으며 청일전쟁이 우리 국토에서부터 시작되어 국토마저 쑥대밭이 되었다.
동학난, 동비의 난으로 불리다가 (김대중 정권) 때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갑오농민운동(甲午農民運動)으로 격상시켰다. 김영삼은 5.18을 밀어주고 김대중은 동학을 밀어 주었다. 유감스럽게도 동학란이나 5.18사태는 호남에서 일어났으며 둘 다 국가전복 내란음모 무장 폭동이란 난인데 그것을 ‘운동’으로 탈바꿈 시킨 웃지 못 할 현대 정치사의 난이다. 박정희가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던 그 절묘한 명언이 다시금 생각난다.
역사의 왜곡은 일본과 중국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의 적은 몸에서 기생하는 벌레다. 단독 정부, 단독 선거를 반대한 빨갱이들이 주도한 제주4.3 폭동살인 사태도 노무현 시절 고건, 박원순 등의 ‘제주4.3진상보고서’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평화공원 등의 결과물이 잘 말해주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니 ‘친일인명사전’이니 무슨무슨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니 하는 집단은 국내의 사건 사고를 왜곡하고, 일본과 중국은 고대역사 속의 국가와 영토를 왜곡하고 있다.
(광주사태)---내용에 비해 참 고상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분명 ‘반정부무장폭동사태’였는데 말이다. 어느 나라에서 무장한 시민이 국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교도소를 습격하는 행위를 ‘민주화 운동’이라 하는가? 그런 행위는 반정부군의 공격이라 한다. 5.18사태가 동학란처럼 확대되었더라면 당연히 북괴의 대규모 남침개입을 불러왔을 것이다. 그 사태가 광주에서 그쳤다는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실패한 ‘5.18사태’를 김영삼이 1997년에 ‘5.18민주화운동’이라는 국가 기념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오늘날 5.18은 국가 전복을 목표로 일어 난 용납 못 할 무장 살인 폭동으로 치부되었을 것이고 반란의 멍에를 전두환에게 덮어 씌워 무장폭동을 민주화의 길을 열기 위한 운동이라고 하는 어불성설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20세기 1980년에 있었던 작은 동학란쯤으로 국민의 뇌리에 남았을 것이고 역사는 그렇게 전할 것이다.
부패한 나라에서 청과 일본을 불러들이는 계기를 만든 동학란을 호남에서는 의로운 농민봉기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억압에 항거한 농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일으킨 정치적 무장반란이었지 순수한 개혁만을 위해 일어난 운동은 아니었다. 만약 그 시절에 궁지에 몰린 김영삼 같은 인물이 국가를 주도했다면 그때도 아마 ‘동학농민운동’으로 격상 시켰을 것이고 호남인은 ‘동학운동’이 나라에 개화를 가져 왔다고 그렇게 또 주장했을 것이다.
오늘날 ‘5.18광주사태’가 ‘5.18민주화운동’으로 뒤바뀐 것은 비자금의 화마를 피하기 위한 김영삼이 기문둔갑술을 부려 헌법을 무시하고 특별법을 제조해낸 혁혁한 공로임을 광주는 크게 인정하고 매년 그의 공로를 기려야 할 것이다. 사실 좌익과 광주에 있어 김영삼의 공로는 김대중에 비해 백배 이상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광주는 김영삼의 동상이나 컨벤션센터는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호남의 신은 김대중이지만 광주의 영웅은 단연코 김영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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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님의 댓글
삼족오 작성일
호남에서도 배신감으로 김대중.노무현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으나,
경상도에 지기 싫어서 찍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