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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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성령 작성일14-10-26 21:50 조회1,872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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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최 성 령
또 다시 10.26이 돌아왔습니다.
그 날 나는 건설현장 기사였습니다.
출근해서 현장을 점검하고 오전 10시 쯤
작업자들이 일을 멈추고 줄줄이 나왔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일은 무슨 일이냐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서거한 지 벌써 35년이 지났습니다.
5천년의 운명적인 절대빈곤을 해결하고,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공산주의와 戰線을 맞댄,
동족이면서 원수인 저 북한의 위협을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막아 낸
위대한 우리 아버지.
그 당시 나라의 山川은 민둥산과
말라버린 개천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홍수가 나고
가물면 논밭이 쩍쩍 갈라졌습니다.
산림법을 제정하여 나무를 베지 못하게 했고
식목일을 정해 나무를 심고 가꾸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세계적인 山林强國이 되었으며
지금은 쌀이 남아
골치를 썩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의 영도력이 아니면 가능했겠습니까?
북한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모양 그 꼴로
우리의 옛 모습과 똑 같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산에 나무가 없이는 식량생산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의 慧眼은
놀랍고 또 놀랍습니다.
그는 우리보다 가난했습니다.
대통령이면서
해묵은 세이코 손목시계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낡은 혁대를 찬 가난뱅이였습니다.
대통령이면서
양복바지를 수선집에 맡겨 고쳐 입고
집무실 에어콘은 항상 꺼져 있었으며
그것은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만 켰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가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시절
초등학생 큰 딸 근혜가
의장 찝차를 타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것을 안 박 대통령이 근혜에게 한 말,
그 차가 네 차냐? 그 차가 애비 차냐?
그 차는 나라 차다!
하면서 야단을 쳤답니다.
고향 선산에 사시는 그의 형님 박동희가
지역 유지의 부탁을 받고 대통령인 동생에게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며
그를 천거(薦擧)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잘 알았습니다 해 놓고는
선산 경찰서장에 명하여
형님댁에 경찰 보초를 배치해
외부인사의 출입을 감시케 했답니다.
어느 해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와
물난리가 났을 때
박 대통령은 잠 못이루고
비 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밤을 꼬박 세웠더랍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회고담입니다.
또한 어느 해
가뭄으로 벼가 말라 죽을 때
기적 같은 비가 내려 논에 물이 고이자
박 대통령은 운전기사만 대동하고
경기도 어느 시골마을로 내려가
물 고인 논에 털퍽 주저앉아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울었답니다.
당시 운전기사의 증언입니다.
미국으로부터 M16 자동소총을 구입 후
그쪽 담당자가 사례비를 들고
대통령을 찾아와 돈 봉투를 전하자
박 대통령은 그것을 돌려주며
이것만큼 총으로 더 주시오 했더랍니다.
나라는 가난하고 있는 건 사람 뿐
공장을 짓고 도로를 내고
댐을 건설하려해도 돈이 없어
독일에 차관을 얻는 댓가로
광부와 간호사를 파송했습니다.
광부는 막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간호사는 시체 닦는 일을 마다 않고
밤 낮을 모르고 일을 해
조국에 돈을 보내 왔습니다.
그가 독일을 방문 했을 때
애국가를 부르다가 끝내지 못하고
대통령과 그들은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합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육영수 여사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혹자는 그를 독재자라고 합니다.
독재자가 남긴 무슨 재산이 있습니까?
민주화도 좋지만 우선 먹을 것이
더 급했던 시절이 아닙니까?
민주화 된 지금은 살기가 편해졌고
햇볕정책으로 북한 동포의 삶은 나아졌으며
그들이 만든 미사일과 핵폭탄은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길바닥에 드러누어
사사건건 반대하던 전직 어느 대통령.
그는 노벨평화상도 받았지만
그는 저 세상에서
그 때의 일을 잘 했다고 자부할런지요?
그는 컨벤션센타다 도서관이다
그리고 무슨 평화재단 등
그를 기리는 기념물과 銅像이 많은데
나라를 절대빈곤에서 구원하고
국가의 안보를 지켜 낸 민족 영도자를
아직도 독재자로 평가하는 이 나라는
과연 국가가 맞습니까?
35년 전 박 대통령의 장례식을
오늘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연도의 시민들이 한결같이 우는 모습에
나도 그만 그들과 함께 울고 또 울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동안 35년을 참았다 터진 울음이었습니다.
그가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는 건
그의 업적도 중요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노라고
우리는 한 점 의심도 없이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다부진 얼굴에 카랑카랑 하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넘쳐
그의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보고싶습니다.
충성!
댓글목록
이름없는애국님의 댓글
이름없는애국 작성일
박정희 대통령-----!!!
그 뿐께서 대통령을 하실 때는 대통령이라면 으례히 박정희인줄 알았습니다.
"대통령은 저렇게 하는구나!!!"
해야하는구나!!!는 알지도 못하던 젊은 시절....
대통령은 당연히 박정희대통령 처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당시 나라가 힘차게..희망을 가지고 전진하던 중이라서...물론,이것도 뒷날 알고 보니 박정희대통령의 영도력에 의한 것이지만...
대통령이란 당연히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 가는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독재????
사실 저는 생활상 못느꼇습니다.
통금이 가끔 불편하기는 하였지만...치안 확실하고 살기 편했죠.
김땡삼이나 개대중이를 비롯한 몇몇 놈에게는 독재가 피부에 와 닿은 것 같습니다.
한국은 당연히 발전을 계속하는 줄 알았습니다.
박대통령 생전에 항상 우리는 고도성장 중이였죠.
박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무지하던 때라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 운 것이 아니라,그냥 슬펐죠.
그리고,다른 대통령 들이 나왔습니다.
다른 대통령들도 당연히 박정희대통령 처럼 일할 줄 알았죠.
저에게 심긴 대통령의 이미지는 박정희대통령이 유일했기 때문에....
그러나 왠걸....?????
무식한 젊은 때는 김땡삼,개대중이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죠.
각종 선전선동에 휘둘리는 일개 무식자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들의 말이 옳고.."아~박정희가 독재를 많이 했나보구나~~!! 그들은 민주투사구나."
지금의 생각은 "사기꾼들!!!쳐죽일넘들,도둑놈들 자기의 즐거움과 배떼지를 위해 국민들을 무더기로 잡아먹은 놈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사람 힘으로는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 없죠.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사 제2의 박정희를 보내주실지 모르지만...
최성령님 내내 평안하세요.
이름없는애국님의 댓글
이름없는애국 작성일
박대통령께서 장모님의 생신날 일가친척들을 초청해서 소박한 잔치를 베풀던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일국의 대통령 같지 않습니다.너무나도 소박하고 정감가는 분이죠.
연회도 조촐했고..차린 음식도 조촐했고...그 음식들을 박대통령께서는 맛있게 드시고...
이름없는애국님의 댓글
이름없는애국 작성일
육영수 여사의 생전에 박대통령께서 비름나물무침을 찾으셔서 한달에 몇번 정기적으로 반찬으로 올렸답니다.
비름나물.....
저도 어렸을 때 몇번 먹었습니다.
비름...주위에 흔한 풀이죠.맛은 별로..냄새는 많이 나고....
가난한 집에서만 먹던 풀이죠...시장에서 돈주고 사는 반찬거리가 아니라,그냥 몇 발짝 움직여 동네 언저리에서 뜯을 수 있는 풀이죠.
어릴 적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박대통령께서는 청와대에서도 그 반찬을 요구하셨고,맛있게 드셨답니다.
그때 마다 육여사께서는 반찬 장만은 손수 하셨지만 드시지는 않았다더군요(ㅎㅎ)
육여사님은 부잣집 따님이시라..비름나물을 먹어보지 않았기에...
도사님의 댓글
도사 작성일
어른들과 함께 술좌석에서 어느 어른이
"참으로 박 정희 대통령은 신이야 신!"
"민주화가되면 개벽천지가 되는 줄 알았지? 그 놈들이 정권잡고 한 일이 무어야?"
"아 우리보고 자내들은 앞으로 굴뚝없는 세상에서 살 걸세, 조금만 기다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냐고 했는데 그게 지금의 주방문화 아니당가!"
그 분은 이 나라를 살린 선지자이며 분명 신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의 큰딸은 참으로 인륜을 져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