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과 속음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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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루터한 작성일14-04-17 09:30 조회1,8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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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했다. 월남에서의 미국의 패망이기도 했다. 미국의 군사지도자들은 반성문을 썼다. 반성문의 결과로 합동전교리가 개정된다. 1990년에 발간된 미군 제1의 교리(Pub #1) "합동전(Joint Warfare)"의 4개장(Chapter) 중 제1장을 "합동전의 가치관(The Values of Joint Warfare)"으로 장식했다. 육해공군이 함께 싸우는 전쟁에서 군인들의 가장 핵심적인 4개 가치관으로 "성실(Integrity), 능력(Competence), 용기(Courage), 협동(Teamwork)을 선정 공표한 것이다. 성실의 핵심은 정직이다. "월남전에서 미군들이 사살했다는 적의 숫자를 모두 합해보니 동남아 인구를 넘었다"며 "정보판단"에서의 정직의 중요성을 일갈했다. 정직을 잃은 정보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통렬히 반성한 것이다. 반성의 결과 1991년의 걸프전, 2003년의 이라크전에서 미군은 단기간의 합동전투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잃어버린 정직을 아직껏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선배 장군들이 앗아간 정직이다. 1992년 김포군 하성면 후평리에서 제5땅굴(가능성)이 발견되었었다. 제2땅굴을 발견한 정명환 장군과 김무웅 장군 등은 남침땅굴이 맞으니 육군참모총장 김진영 장군께 이에 대비해야된다고 강력히 건의했다.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께서도 "땅굴대비를 확실히 하라"며 군을 압박했다.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장이었던 김진호 장군은 "만일 땅굴이 맞는다면 할복하겠다"며 땅굴을 부정했다. 김진영 장군은 할복하겠다는 김진호 장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한민국 땅굴왜곡의 역사가 여기에서 발원된다.
당시 국방정보본부장을 공군의 김홍래 장군이 맡고 있었다. 김 씨 성의 세 장군들이 땅굴을 덮기 시작한 것이다. 막강한 군대권력이다. 나는 저들 세 선배장군들이 속이는 자들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속은 자들이며 그래서 자신 있게 대통령과 국민들을 속이는 자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거짓이 여실성과 권력의 옷을 입게 된 것이다. 여실성(與實性, Verisimilitude)이란 "진실이 아닌데도 진실로 여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국방장관이 땅굴안보에 대해 설마 틀린 정보판단을 하겠는가? 불행하게도 이것이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여실성의 오류인 것이다.
육군의 총수와 육군정보참모부장이 그리고 국방정보본부장이 "없다"고 하는 그 땅굴을 육군대령이 지휘하는 땅굴탐지부서/부대가 찾아야 할까? 덮어야 할까? 상명하복의 세계에서는 명백한 결론임을 군대 갔다 온 분들은 다 알 것이다. 이를 밝히려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전직 육군땅굴탐지과장도 있다. 작년 3월에도 국방장관과 안보실장이 박근혜 대통령께 "땅굴은 없다"고 보고했다. 땅굴을 찾지 말라는 보고에 다름 아니다. 이 속임과 속음의 거짓의 역사가 우리사회의 장군들과 지식인들의 뇌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서글픈 거짓의 현실이다.
거짓의 중심에 김일성의 지령이 자리 잡고 있다. 김일성은 일찍이 "남침땅굴을 캄파니아식이 되지 않게 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캄파니아는 이태리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굴관광지이다. 이 지령에 따라 북한군은 땅굴 1.5km당 3명의 초병을 두고서 청음기로 시추공이 내려오는 것을 탐지 보고토록 한다. 귀순자 차도수 씨의 증언이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의 지하 땅굴에는 약 6,000명 내외의 북한군 땅굴초병이 청진기를 들고서 시추공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시추공이 내려오면 밑에다 드럼통에 자갈 모래 등을 채워 이를 시추케 한다. 또는 물을 흘려 넣어 수맥동굴로 위장한다. 2000년 연천땅굴이 좋은 예이다. 김일성의 지령이 "철저한 땅굴 역대책"으로 일찌감치 자리 잡은 것이다.
1983년에 위장 귀순한 신중철 대위가 정보장교 심원흠 대위와 함께 1990년 제4땅굴을 찾는데 성공한다. 저들은 특진의 영광을 함께 누리며 상호 협력한다. 신중철은 대령이 되기까지 육군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땅굴은폐의 구도를 만든다. "뻥 뚫린 땅굴을 가져와 보여라! 그러면 인정하겠다"라는 구도이다. 뻥 똟린 땅굴은 민간인 탐사자 수준에선 찾을 수 없다. 김일성 3대의 역대책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이다. 시추공에서 결정적 증거물이 나와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구도는 나는 신중철과 심원흠의 합작품이라 판단한다. 위장 귀순자 신중철은 2001년 중국에서 돌연 사라진다.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신중철이 심원흠을 설득하였고, 그 결과 "뻥 뚫린 땅굴을 가져와 보여라!"라가 땅굴은폐의 구도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그와 더불어 "다우징은 미신이다"가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에 뿌리를 내린다. 아니다. 다우징은 돈 안 들이고 땅굴을 찾는 심령과학이다. Bio Electro-Magnetic Detection Method 이다.
김일성은 신중철의 성공적 간첩활동을 돕기 위해 1990년에 "뻥 뚫린" 제4땅굴을 선물한다. 1978년 제3땅굴발견이래 무려 12년 만이다. 28년 동안 군은 수천 개의 시추공을 뚫었다. 결정적 증거물로 녹음된 지하 갱차의 음과 드르륵하는 착암기 소리와 북괴군의 목소리까지 제시된다. 시추물로는 북한제시멘트와 떡쇠지렛대와 폭파석 등이 제시된다. 군은 이를 증거로 채택치 못한다. 그리고 땅 속에는 "오묘한 각종 소리가 다 들린다"라는 거짓을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서 단 하나 제4땅굴이 뻥뚫린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김일성의 책략이 오묘하다. 그후부터 국방부는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도 범인을 잡는 시대에 뻥 뚫린 땅굴을 내 놓으라고 민간탐사자들을 윽박지른다. 김일성의 지령을 대한민국 군대가 수명한 것이다.
1992년 김포군 하성면 후평리에서 김진영 김홍래 김진호 세 장군들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 땅굴이 번식하여 이제는 서울과 전국의 지하를 새끼 땅굴들로 거미줄같이 잠식케 했다. 지금 지하에는 3개 땅굴망이 기본이 되어 흐른다. 국방부 합참 연합사에는 무려 99개의 남침땅굴망이 들어가 있다. 연합사 남쪽 국립박물관의 외곽도로에는 연합사를 향하는 66개 땅굴망의 방향에 따라 도로에 심한 균열이 생겨있다. 다우징이 아니라도 이곳에 땅굴이 있겠구나 라며 누구나 예측할 정도의 균열이다. 가서 확인해 보라! 제발. 여기에 금번 다우징 탐사여행을 확인한 국방부 합참 연합사의 땅굴망을 우선 공개한다.1. 서강대와 효창공원을 지나 전쟁기념관을 들어온 6개의 땅굴망이 새끼를 쳐서 33개의 땅굴망이 되어 국방부 합참 연합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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