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11 내가 어른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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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sunbee 작성일14-03-20 07:49 조회1,6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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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11. 내가 어른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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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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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까마득히 높은 분, 모든 것이 존경스러운 분, 접근하기가 어려운 분, 예를 갖추어야 하는 분, 나이가 많으신 분, 인생경험이 많으신 분, 매사를 주관하는 분 등등 으로 인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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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멀고 멀리 있는 나와 상관이 없는 아득히 먼 날의 일이라고 생각되었는 것이 내 앞에 성큼 닥아 왔다. 나로서는 예측해보지 못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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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격이 있나, 품위가 있나, 해박한 지식이 있나, 예(禮)를 아나, 통솔력이 있나, 그렇다고 돈이 있나, 풍부한 인생경험이 있나,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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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내게 어른다운 어른이 아니라 어른 짓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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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들은 종형 상(喪)을 당하고 또 이번 설날로 인하여 나의 자리가 굳혀져 버렸고,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어른 짓을 할 사람이 좋든 싫든 내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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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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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별한 계획 없이 초우축을 읽고 나니 반응이 달라지더라.
종형님 장사를 치루고 당일 탈상을 하는데,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주도하는데 여기까지 내가 개입은 하지만 적극적이 아니였다. 종조카들이 뭐라 할 지 모르겠고, 말 많은 사촌형수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엉거주춤하게 뒤에서 조력하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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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평토축이나 초우축의 경우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축문을 미리 준비해 갔다. 장례식장 측에서 노제축을 나에게 주면서 자신들은 바쁘다고 가는데, 속이 시원 했다. 이 자가 축문을 읽는 것을 보면 축문을 읽을 줄도 모르고 한자 옆에 토 달았는 한글을 읽다보니 초등학생 1학년 정도가 한글 읽는 것과 똑같이 글자를 읽어 되며 음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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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토제에서 내가 진행을 주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참석자 중에 장례행사를 주관할 수 남자로서 내가 나이가 2번째이고 전체로 봐서도 3번째이다. 종형은 나보다 3 살 위이고 형수는 70이 넘었고, 또, 이러한 장례를 잘 모르고, 종형 역시 도시에 살다보니 예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촌에 살고 있는 내가 전례대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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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평토축을 할 때 제군들에게, “지금부터는 우리식으로 한다”고 하고, 우리 집안에서 평소에 하는 방식대로 했다. 이것은 장례식장에서 하는 방식이 우리 전례와 좀 다르고 또 하는 것이 잘 한다고 볼 수 없더라. 그래서 조카들을 시켜 제사를 진행시키고 내가 평토축을 읽었다. 이때까지는 내가 해야 하는 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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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혼백이 집으로 돌아와 초우를 지내는데, 이날은 초우겸 탈상겸 한꺼번에 하기로 했다. 밤 8시경에 초우탈상을 하는데, 이때는 갈 사람은 모두 가고 청도에 살고 있는 나와 사촌 동생 이외는 상가 본 집 식구들 뿐이다. 상가는 아들 하나에 딸이 셋이니까. 딸린 식구까지 하니 10여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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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으로 마무리 하고 모두 앉아 식사를 하는데, 모두가 나를 보는 눈빛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내가 무슨 대단한 어른이라도 되는지, 쳐다보는데, 내 말 하나 하나 귀담아 듣는데, 그리 반갑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야들이 나를 집안어른으로 생각하는구나 하는 부담감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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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아니고는 누가 할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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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안 대소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지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집안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골육상쟁하는 집안이다. 이제 20여 년 동안 싸움이 잠잠하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 불씨가 가끔 살아난다. 그래서 늘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큰집 일에는 관여하지 마라” 하시는 것 이였다. 내가 나이가 들었어도 어느 설이나 추석에 싸움을 하지 않는 해가 없었다. 이러한 것을 보고 성장한 나이기 때문에 집안 대소사 일은 항상 침묵으로 일관 했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참으로 답답한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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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안 윗대는 설명을 생략 하더라도 단집안을 설명하면 할아버님 4형제(남), 아버님 형제 4형제(남), 큰집사촌 4형제(남) 그 외 4촌들, 왕고모님, 종고모님, 고모님들, 그에 딸린 식구들 나는 그 수를 다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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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촌에는 형제가 많고, 살림이 있으면 큰 소리 땅땅치면서 살았고, 우린 이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집안인데, 여기다가 큰 아바님은 선비로 전혀 일하나 하지 않고 사랑방에 박혀있는 전형적인 시골 선비다. 큰아버님이 쓰신 대들보 글씨가 마치 인쇄한 글씨처럼 가지런하게 잘 쓰여 있다. 이건 우리집이 4칸 집인데 청마루 대들보에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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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3가지 조건을 갖춘 집안인데, 형제가 많제, 살림이 있제, 글자가 있는 집안이다. 그러니 작은 고을에서는 이름께나 있는 집안인데, 허구 헌날 집안 싸움만 하고 있었으니, 뭐가 되겠나. 하도 하도 싸우니 진저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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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발생은 모두가 큰집에서 일어나고 그 주요인이 큰엄마다(살아계신다면 99세 정도). 큰엄마와 큰집 식구들 사이에서 불씨가 일어나 각 집안으로 퍼진다. 항상 싸움의 원인은 큰집이다. 큰집 식구들은 이것을 인지는 하겠지만, 이것이 집안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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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큰어매가 어느 정도 위세를 떨쳤느냐 하면, 동네 할매, 당시로 보면 큰엄마와 나이가 비슷한 동네 아지매들 중에 두들겨 맞지 않은 사람이 없다. 며느리 머리 깔찌 뜯는 것은 보통이고, 또, 화폐교환하기 전인데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고 갚지를 않았다. 이 수가 한 두 명이 아니다. 수년이 지나도록 갚지 않으니 이것을 둘째 형님이 알고 갚았는데 원금만 갚았다. 당시 이자가 년 50% 정도 시절인데, 말이 되나. 화폐교환 하기 전에 빌려주고 화폐교환 후 수년이 지나 원금만 받으니 채권자들 분통이 터지겠지. (화폐교환은 10배다, 10원이 1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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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집안에서 자란 내가 집안 대소사에 나서겠나.
그러나 나의 맘 구석에는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나이가 들고 알 것은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집안 혁신의 장벽은 두 사촌이 건재하고 있었다. 큰집 사촌 중에 한 분은 현재 80세이고, 한 분은 지난해 77세로 돌아가셨는 분이다. 이 두 분이 그래도 우리집안에는 기둥이다. 이 기둥 중에 하나가 쓰러졌다. 그리고 80된 사촌 형님이 청도에 사시는 것이 아니고 양산에 사신다. 작은 아버님(87세?)이 살아 계시지만 요양병원에 수년간 계시니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5대조 이하 청도에 사는 사람 중에 내가 가장 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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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집안일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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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날에 이런 일이 있었지.
설날에 큰집에 모두 모이는데, 제군 두 분이 빠지니까 분위기가 설렁하다. 80인 형님은 다리가 아파서 못오시고, 한분은 설 전에 돌아가셔서 참석을 할 수 없고, 늘 오시는 분들이 없으니까. 설날이 설렁했다. 제례주관은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밖에 없다. 3살 위인 사촌 형님이 있지만 도시에 살다보니 禮에 부족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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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두 명이나 없으니까, 늘상 문 바깥에서 제례를 한, 조카를 방으로 들어오라 했는데, 조카가 하는 말이 35년 만에 처음으로 방에 들어온다고 한다. 제군이 많다보니 늘 상, 방안에는 나이 많은 분들이 서고, 대청에는 나이가 적은 제군들이 서는데, 조카가 드디어 방에 들어와서 제례를 올린다. 대청에 서있는 제군들은 설날에는 추워서 덜덜 떨어야 한다. 그게 35년 동안 문 밖에서 떨다가 드디어 방에 들어 왔다. 제군들 모두 한바탕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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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사를 지내는 집이 하나 더 생겼는데, 바로 사촌 형님집이다. 설 10 여일 전에 돌아가셨기에 차례에 사위와 딸들이 모두 왔다. 그래서 세배하게 되었는데, 설날에 본 손과 취객이 함께 세배하는 일이 드문 일인데, 올해는 이렇게 되었다. 그래서 나와 4촌은 앉아서 절을 받고, 질서들이 세배하게 했다. 그런데, 울산에 있는 형님이 앉으려고 하지 않아서 내가 어께를 눌러 앉혔다. 울산 형님은 질서들에게 앉아서 세배를 받으려니 좀 어색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예법이다. 울산에 있는 형님 입장에서는 친질서고 나와 또 다른 4촌에게는 종질서가 된다. 질서 입장에서 보면 울산형님은 처 작은 아버님(처삼촌)이 되고 나와 4촌들은 처당숙부(처오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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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 후에 같은 항렬은 서로 맞절을 하게 했다. 이렇게 하니 뭔가 위계질서가 세워 지더라. 이게 우리집안의 전례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에 와서 서로가 어찌 할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법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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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후 한 달이 지나 대구 4촌 동생이 왔는데, 하는 말이 “형님이 최고다” 한다.
“뭐가” “설날에 세배하게 했는 거”“ 아, 그거 당연한기라”“ 내 기분 참 좋더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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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생 나이가 57세이다. 이 동생이 도시생활을 하니 예절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 기회에 40대 종질서들에게 세배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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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질서 입장에서는 처남, 종처남, 제종처남들과 함께 세배를 했으니까, 처가 쪽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겠지. 또 종질녀들도 이러한 분위기가 좋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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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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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너무 빨라,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여야 하고,
내가 벌써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몰랐고,
앞으로 집안사를 돌아봐야하고,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싫든 좋든 집안 대소사를 둘러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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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이 깨어져버린 집안인데 다시 인정이 있었는 과거로 돌리기엔 너무나 멀어져 버렸다. 나는 늘 생각하기로 집안의 인정은 여자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들끼리는 찌지고 뽁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해결되고 원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게 아니다. 한 번 어긋나게 간 것은 돌아 올 줄 모르고, 계속 그릇된 방향으로 간다. 그러므로 집안이 잘되려면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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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째지고 뿌서지버린 집안을 화목하게 해보려고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이게 어렵더라, 그 주요한 장벽이 바로 자식들이더라.
자식들은 자기 부모의 좋은 점은 잘 보는데, 나쁜 점은 잘 모르더라, 그리고 인정하려 하지 않더라.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세뇌교육을 받아 커왔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주위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지 느끼지를 못하더라. 예를 들면 시골동네에 부모가 좀도둑이라면, 동네 사람들은 도둑놈으로 알고 있는데 그 자식들은 도둑으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고, 부모님의 행위가 그럴 수 있는다는 식으로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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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모님이 거짓말쟁이라면 그 자식들은 부모가 거짓말을 하여 주의사람들을 혼란시키고, 거짓말쟁이로 비난 받는다고 별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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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아낙들은 말을 번복 잘하고, 자기 생각대로 여과 없이 말하며, 이 말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지 아닌지도 생각도 없고, 자기 세가 있으면 함부로 날띈다. 이건 70세 이전 세대가 심했다. 그 주원인이 무식하고, 교육을 받지 않았고, 머리가 둔한 자들이였기 때문이다. 국민(초등)학교하라도 나온 세대들은 6년간 학교교육을 받은 자들은 초등학교 받지 못한 세대들보다 전체적으로 인간성이 훨씬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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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부터 집안에서는 내게 대들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싸움이 끊임 없었는 집안이라 대소사에 나서기를 주저했고, 말 많은 집안이라 항상,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일에는 침묵을 지킬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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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여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
선산 2,000여 평 되는데 큰집 조카가 장조카 명의로 소유권 이전하려고 벌초 때 꺼집어 내는 것을 내가 소유권 이전 해가면 죽인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토지를 팔아먹었나, 마지막 남은 선산을 이전해가 자신들 소유로 하겠다고,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소유권 이전을 해가서, 토지를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큰집 식구들 소유물로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것을 묵과 할 수가 없지. 지금은 이 선산에 8대,6대,5대, 고조, 증조, 조부님들 산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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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산에 특이 한 점은 수백년 된 소나무가 30여 그루가 있는데, 우째서 지금까지 건재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산소 위치가 동네 뒤에 있는데, 70년대 이전에 땔감이 없어서 나무란 나무 모조라 베어 땔감으로 사용했다. 특히, 도리솔이라도 나무꾼들이 몰래 베어가는 시절인데, 나무 둘래가 장정 한 사람으로는 안지를 못하는, 엄청 굵고 큰 수백년 된 소나무인데 어찌 땔감으로 베지 않았는지. 나는 이 우람한 소나무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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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망해 왔는 집안에 별수 없는 나라는 존재가 집안 대소사에 관여해야 하니, 이것이 잘하는 짓인지 못하는 짓인지, 가는대로 굴러가게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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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대소사가 나에게 집중은 되나 확 안겨오지 않고, 모두가 주춤 주춤하고 있다, 그 이유가 3대에 걸쳐서 골육상쟁한 여파이겠지. 집안의 싸움 불씨가 점점 소진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큰집식구들끼리는 잔잔한 여진의 불씨가 다시 살아 날 수도 있다. 또, 완전 소각시킬 수도 있고, 다시 화목한 집안으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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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선 과제가 자식들이 부모의 잘못을 인식하고 사과하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이 부모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부모님이 말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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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은 한 세대가 거의 끝이 나간다. 아직도 생존하신 분이 계시지만 이미 새로운 세대로 이전해오고 있다. 구세대는 이미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신세대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전통의 禮를 우리 집안에 따르게 하고자 한다. 전통의 禮가 바로 집안 화목을 시키는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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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란 너무나 중요하다.
禮를 무시한 집안은 흥할 수가 없다.
禮를 나는 우리집안에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면, 세월이 가면 언젠가 인정이 철철 넘치고 웃음꽃이 피는 가문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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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19.
시골에서 어른 짓하여야 하는 무기력한 kimsunbee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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