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비 걱정하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역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발해의꿈 작성일14-10-17 13:47 조회1,753회 댓글1건관련링크
본문
생계비 걱정하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역군
재단법인 국제농업개발원
연구소장 이병화
2014. 10. 20.
백영훈 박사(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는 자신의 사무실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사랑방이 된지 오래라면서 도무지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없다.
그는 광부와 간호사들을 서독에 파견하고 이들의 노임을
담보로 서독정부로부터 차관을 얻어 온 장본인이자 박정희 대통령께서 추진하셨던 경제개발5개년 계획 중
제1~2차 계획을 기획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추진기간(1971~79년) 동안 경제특보실 소속으로 새마을담당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백영훈 박사와 자주 만나 담소를 한다.
최근들어 국내외 거주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모여서
토해내는 울분을 들어보면 듣고 있다가 답답함이 너무 많다.
● 박정희 시대의 산업역군들이
천대받고 있고 생계비 걱정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누가 뭐래도 자신들보다 공로가 큰
산업역군은 새마을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한 새마을지도자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 자연부락 5만5천여 곳(지금은 1/4로 줄었다)에서 새마을사업을 추진하면서 마을 안길과 우물, 마을회관 등을 만들기 위해 3백평 이상의 토지를 무상으로 희사한
지도자가 1,730명이고, 이 면적 이하의 토지를 희사한
지도자는 6천여명으로 합계 7,700여명이나 된다.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돌이켜 보면 당시 마을 이장은 월급을 받았지만 새마을지도자는 오로지 희생정신으로
초지일관했다. 더욱이 어떠한 혜택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대통령께서 틈틈이 들려주시는 새마을지도자들의
격려 말씀에 감격했다.
이들은 오늘의 대한민국 근대화가 자신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자부심과 긍지에 살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당연히 아버지처럼 조국 근대화에
희생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말씀 또는 민주평통 위원들에게도 주었던 손목시계 하나 정도는 선물로 줄 것이라고 믿어왔는데, 집권 2년이 되어가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매우 섭섭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1971~79년 사이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새마을훈장을 받은 지도자는 950여명이나
되지만,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절반 조금 넘는다. 이들만이라도
국가유공자로 등록해주어 보훈병원 등에서 죽기까지 약간의 치료비라도 지원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들은 국민연금도 제대로 들지 못했고, 그 흔한 암보험도 대부분 가입 못했다. 또한 이들 대부분이 최저생계비 31만7천원도 못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희사한 토지가 도시개발로 수십 수백억 원이 되어 마을 이장과 통ㆍ반장들이 임의대로 처분해도 쳐다 만 보고 있지, 아무런
참견도 못한다는 것이다. 조국과 민족, 그리고 농촌근대화를
위해 귀중한 재산을 희사한 것이 나만 바보되는 지금의 세월에 더 비참한 것은 “아버지, 왜 그 땅을 그냥 주었느냐? 아버지 바보 아니냐?”라는 가족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정말 자신이 바보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 어느 전직 새마을지도자의 하소연
“하나뿐인 손자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은 후 곧장 스리랑카에
KOICA요원으로 파견되어 근무중 군인신분으로 순직하였습니다. 정부측에서는 KOICA 주최로 장례식을 치르려고 했으나 집안 환경으로 가족장으로 진행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 외교부장관께서 조화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손자를 국립묘지에
안치하고 싶어 관계 요로에 탄원하였으나 불가하다는 내용의 서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망사건(예컨데 광주 5.18
관련사건, 전방 사병들의 총격 관련사건, 세월호
관련사건 등) 당사자들이 포상금에 온갖 혜택을 다 받으며 국립묘지 안장이 허용되는 것을 보면서 허탈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 누가 누구에게 태극기 앞에 경례하며 몸과 마음을 바쳐 조국에 충성하고 사회에
봉사하라고 하겠습니까?”라는 하소연을 듣고 우리 사회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심신으로 역력히 느끼고
있다.
●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보는 남ㆍ북한 통일관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광부와 간호사들(18,993명)이 독일로 취업을 위해 떠났다. 이중 절반은 귀국하고 나머지는 독일 또는 제3국으로 직장을 찾아
그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바깥에서 보는 남ㆍ북한의 모습을 국내의 우리들보다 더 정확히 본다는 사실이다. IMF때에는
조국통장갖기 운동을 했고, 위안부 사건을 독일 등 서구사회에 알리는 운동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들 다수의 의견은 1990년 10월 2일
동ㆍ서독이 통일될 때, 오로지 구소련 고루바쵸프의 양해만 얻으면
되었지만 통일독일을 연구하는 한국의 통일 전문가들은 이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남ㆍ북한 통일에는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미ㆍ일ㆍ중 어느 쪽도 통일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최근 러시아는 독일거주 광부조직을 통하여 한국의 원전폐기물을 처리해 줄 수 있다는 제의를 한 바 있다. 원전에 한하여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만 누가 이 일에 총대를 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북한과의 접촉에는 ①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중심 있는 원칙을 고수해야 하고, ②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장경제를 끝없이 주입시키는 전략이 필요하고, ③ 통일기금은 투자개념으로
보아야 하고, ④ 지구촌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 북한 노동력과 극동러시아 자원개발인데, 이것이 서로 보완관계가 완벽하여 상생공영이 절대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푸틴 정부는 볼가강 구역에 러시아 국적 독일인들에게 제주도 10배 면적에 해당하는 자치구역을 선포해
주었음)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북한의 만행에 대하여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말한 참뜻을 우리 국민들은 알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장전된
권총은 반드시 쏜다. 망치든 사람 눈에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상기하자면서, 한국 국민들은 “설마 핵미사일을
쏘겠어?”라는 너무나도 안일한 사고가 오늘날 이러한 중심 없고 원칙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댓글목록
도사님의 댓글
도사 작성일
반갑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이장들도 월급을 받지 못했으며 마을에서 여름에는 보리 가을에는 벼로 수고비 일부를 충당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월 3000원씩을 몇년동안 주었지요.
지금은 조금 많아졌는지 잘 모르지만.....
박근혜대통이 그러한 새마을정신을 반에 반만이라도 이어간다면 사상에서부터 경제까지 모두다 잘 하겠지만 참으로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