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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종보고서 관련 수컷닷컴 정치베스트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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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전원 작성일14-10-16 23:43 조회1,72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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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베스트
비전원 | 조회 : 574 | 2 | 42 | 2014-10-16 18:01:01

작성일 : 14-10-16 13:30

 
5.18분석 최종보고서 (머리말)
  
 글쓴이 : 지만원

                                                    12년 연구의 결과물 
                                 5.18분석 최종보고서

  
                                        머 리 말

  

금년 9월 1일, 저는 자랑스러운 일을 해냈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상기되었습니다. 12년에 걸친 5.18역사 연구에 커다란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의 연구가 기초연구였다면 이번의 연구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2회(1981,1997)에 걸쳐 재판한 판결결과를 모두 뒤집는 성격의 연구입니다.

 

이전까지의 연구는 5.18 광주에 광주시위대와 북한특수군 600명이 별도의 독립된 존재로 공존했었다는 결론을 냈지만 이번의 연구는 광주에 광주인들로 구성된 그 어떤 목적의 시위대도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북한 특수군 600명과 그들에 놀아난 광주의 철없는 10대 중고생들과 넝마주이 등 광주에서 천대받던 20대 부나비들이 부화뇌동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광주에 민주화시위대가 있었다고 국민을 기만해서 막대한 보상금을 타내고 거기에 더해 유공자 대우를 받아온 사람들을 단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대한민국을 모략한 내용 그대로를 남한의 역사로 기록하도록 역할 했던 황석영 등의 반역자들, 우익 애국자의 탈을 쓰고, “5.18은 반공민주화”였다고 강변해온 위장인물들, “1980년 당시는 모든 철책선과 해안이 밀봉돼 있어서 단 한 사람의 간첩도 내려올 수 없었다”다며 허무맹랑한 말로 온갖 방송 등에 출연하여 “목숨을 걸고 말한다”며 5.18의 정당성을 적극 옹호해온 위장인물들을 단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 광주에는 그 어떤 목적으로든 광주인들이 구성한 시위대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은 100% 거짓이요 사기였습니다. 저는 이를 5.18기념사업회 자료들을 가지고 입증하였습니다.  

 

둘째 광주에는 대학생 시위대를 가장하여 홍길동이나 일지매 또는 조로처럼 펄펄 날아다니던 전설의 “연고대생 600명”이 분명히 존재했고, 이들은 기존의 군사 상식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방법들로 계엄군과 광주시민들을 이간시켜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도록 만들어 남남전쟁을 유발시켰고 그 결과 계엄군을 전멸시킬 찰나에까지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주시를 폐허의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들 600명이 북한특수군이었다는 것을 검찰자료, 안기부 자료, 북한자료 들을 통해 입증하였습니다

 

셋째 광주소요의 최전선에 섰던 광주인들은 대학생들도 아니었고 운동권도 식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넝마주이, 구두닦이, 껌팔이, 식당종업원, 구두공, 목공, 철공, 석공 등 59개의 처참한 직종을 가지고 살면서 ‘세상 한번 뒤집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한을 가진 사회불만 세력들이었습니다. 이들이, ‘600명이 벌이는 마술과도 같은 멋진 솜씨’에 현혹되고 부화뇌동하여 스스로 북한군의 소모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에 입증해 놓았습니다.  

 

광주에 두 개의 시위대가 있었다는 것과 단 한 개의 시위대만 있었다는 것이 왜 그렇게 굉장한 결론인가에 대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광주인들이 구성한 시위대가 따로 있었다는 결론이 유효한 한, 5.18 옹호자들은 바로 그 광주시위대가 광주의 민주화 전사들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주인들이 구성한 그 어떤 목적의 시위대도 없었다”는 결론이 힘을 얻으면 이제까지 5.18단체들은 국민을 속여 온 사기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추가한 하나의 결론은 “광주민주화”를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그 싹을 자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작은 결실이 아니라 지구보다 더 큰 결실일 것입니다. 광주소요의 주체가 북한특수군 600명이었다는 사실, 북한이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멀리 광주에까지 600여명의 특수군을 보내 적화통일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광주인들이 독자적으로 만든 시위대가 없었다는 사실, 이 엄청난 세 개의 사실을 제가 찾아냈다는 것은 실로 국민적 박수와 환호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그 거대한 정보기관들이 찾아내지 못한 진실, 그 이후 35년 동안 이 나라를 통치해온 역대 정권들이 등한시 했던 그 진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연구를 기피했던 그 진실, 5.18의 ‘5’자만 거론해도 광주사람들에 매를 맞고 광주법원으로 끌려가는 전근대적인 횡포가 있었음에도 이를 극복하면서 찾아낸 그 진실, 그 진실은 어두운 동토에서 일구어낸 진실이며, 그래서라도 세상의 무엇보다 값진 진실일 것입니다. 

 

이 진실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5.18이 현대사의 핵심이요, 남한에서 북한을 위해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이념세력의 철옹성 같은 ‘성지’ 노릇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방해하고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모든 반역의 근원이 5.18에 있고, 5.18이 온갖 반역세력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은 역사의 전사가 되어 이 오욕의 성지, 반역의 성지를 흔적도 없이 지워야 합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북한은 “5.18봉기는 북한이 이룩한 대남공작 최고의 역사”라며 북한 전역에 걸쳐 당과 정부의 최고위급이 참석하는 성대한 기념행사를 거행합니다. 북한에서 최고의 것들에는 “5.18”이라는 칭호를 영예의 상징으로 하사합니다. 북한의 룡성기업에 설치된 1만 톤짜리 프레스에는 “5.18청년호”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5.18영화연구소” “5.18무사고 정시견인초과운동” “5.18 누에고치반” ‘5.18전진호’, ‘영예의 5.18청년직장’ “5.18땅크호” 등 “5.18” 칭호들이 북한에 즐비합니다.  

 

1989년-91년 김일성이 황석영과 윤이상을 데려다 반미-반대한민국 모략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황석영은 시나리오를 썼고, 윤이상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주제가로 하는 영화음악을 작곡하여 후한 상들을 받았습니다. 이 명백한 사실들을 정부는 알려하지도 않고 매년 북한과 나란히 5.18을 영광스러운 역사라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욕의 역사를 놓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연 성스러운 역사라며 아이들에 가르치고, 역사책에 기록하고, 해마다 기념하는 이 나라가 창피스럽지 않으십니까? 우리 모두의 나라 대한민국이 코미디 국가가 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 어찌 비분강개할 노릇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5.18분석 최종보고서”를 이 나라에 영광스러운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이번 책에는 북한특수군 사진들이 꽤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를 바로 잡는 일에 적극 활용해 주시기 바라며, 국민 모두가 역사를 바로 잡는 성스러운 일에 그리고 부끄러운 나라를 정상국가로 바로 세우는 성스러운 국민적 의무에 서로 서로 앞장 서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PREFACE


On September 1, 2014, I was overwhelmed by an extreme sense of pride and excitement because I had finally put an end to my 12-year-long research on the history surrounding May 18
th KwangjuRiot of 1980.  If the previous research can be considered fundamental, the one I have just completed fully deserves to overturn the two judgments handed down by the court in 1981 and 1997.


Although the previous research concluded that the Kwangju rioters worked together with independent North Korean commandos in Kwangju City, this final report definitely confirms that no single rioting group made up of Kwangju citizens for any particular purpose whatsoever existed during this chaotic period. 
For this obvious reason, I have finally reached at a conclusion that  only the 600 disguised North Korean special forces plus the hapless group of imprudent teenagers, waste pickers, iron workers etc., became the nameless, unidentified or anonymous mob which  blindly followed and set off the nationwide demonstration.


Accordingly, we can convict those who had cheated and deceived people by saying that they were
the very demonstrators demanding democracy in Kwangju City, who had received tremendous amount of undeserved compensation from the government.  In addition, we should not fail to punish those who had intentionally helped North Korea to plot this history to be recorded as the true his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Cases of traitors who shall be held accountable for their cheating and disguising are categorized as follows:

1)   Hypocritical writers, such as Mr. Hwang, Suk-young.

2)  Figures like wolves in sheep’s clothing who have persistently claimed that the May 18th Riot was a democratic movement against communism.

3)  Those who have continued to say:  “No single North Korean act of espionage could infiltrate South Korea in 1980, as the front line and all coastal lines were closely guarded.  I declare this on my life”.

4)  Two-faced individuals who justified the May 18th Kwangju Riot by using groundless rumors to substantiate illogical arguments, which appeared on TV and in the media.


First of all, Kwangju citizens neither formed nor backed demonstrators for any purpose whatsoever in Kwangju City during this
turmoil period.  This being so, the so-called Kwangju movement for democracy was 100% pure deception and fraudulence.  I have proven this fact with written materials provided by the May 18th Commemoration Service Association.

 

Secondly, these 600 pseudo so-called students from Yonsei and Korea Universities obviously existed during that time in Kwangju City.  The mob used extraordinary guile and speed to defy military logic, which prompted internal conflict that put the riot soldiers at odds with the Kwangju citizens thereby causing both sides to treat each other as mortal enemies.  As a result, the mob disguising themselves as students, heightened the situation to a point where it was enough for the rioters to cause the utter annihilation of the martial law troops and devastation of Kwangju City.  I have proven the fact that the rioters were the North Korean commandos, utilizing all material kept by the Prosecution,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and North Korea related documents.


Thirdly, the rioters who stood at Kwangju City were neither Kwangju students, civilian activists nor learned figures.  They were simply people disgruntled with the government from 59 different walks of life, i.e. waste pickers, shoe shiners, waiters, factory and iron workers, masons, etc.  These were the groups who had, grudgingly, wished to disrupt society.  These disgruntled people, being seduced by a brilliant stroke of guile and deception of the 600 nameless, unidentified or anonymous rioters, blindly followed and were consumed by the mob.  I have proven this fact in my books entitled:  “December 12th viewed through investigative record” and “May 18”.


It might be difficult to comprehend the conclusion which explains that there were two different riot groups, and only one demonstration group.  However, there is a world of difference between the two facts:  As long as the conclusion that there was a riot group formed by Kwangju citizens remains effective, defenders of the May 18th Riot will without hesitation believe that the Kwangju rioters were the very demonstrators who demanded democracy.  However, if the conclusion expressing that there was no group of demonstrators formed with Kwangju citizens is enforced, the May 18
th  Kwangju Riot related organizations will be immediately defined as having deceived innocent people throughout the country for a long time.  My second conclusion will play an important role in checking this deceptive insistence, so that the Kwangju May 18th organization can no longer claim that it was a “Kwangju Democratic Movement”.


I am encouraged to say that this is not a minor recognition, but one of significant importance.  Needless to emphasize, I have discovered irrefutable historical facts disclosed as follows:

1)  The 600 North Korean commandos made up the majority portion of the Kwangju May 18th Riot.

2)  North Korea failed to secure a bridgehead for an effective unification by sending its 600 commandos all the way to Kwangju, which was an obvious violation of the Armistice Agreement.

3)  There was no demonstration group formed with Kwangju City’s own citizens.


To be perfectly honest I take great pride in having achieved the aforementioned conclusions, and feel that they deserve resounding applause from the entire nation. 

 

The fact that for over the last 35 years, responsible intelligence agencies under previous administrations paid little attention to the matter and failed to uncover what I have shown to be obvious is reprehensible. None of history scholars were willing participants in research. And the fact uncovered evidence of people were being beaten and taken to the Kwangju Prosecution's Office even when the May 18Kwangju Riot was barely mentioned in previous acts of tyranny. It stands out as a jewel which has finally been unearthed from the dark frozen soil.  This finding is therefore remarkable, all the more so because I have successfully shed light on the truth against all odds.


The reason why this truth stands out as so extremely important is because the May 18th fact is not only at the core of modern history, it is also how ideological groups sponging off South Korea have been able to play such a major role in carrying out a proxy war on North Korea’s behalf as being an impenetrable fortress barrier.
And because the traitorous roots of the May 18th Riot group have sabotaged and impeded national development, is exactly why this despicable clique has been able to provide such force to every treasonable act.  Hence, it is now high time that all of us strive to eradicate this disgraceful fortress by leaving no single trace.

 

Every year in May on the occasion of the May 18th Riot, North Korea has held massive commemorative ceremonies with high ranking officials from both the Workers Party and the cabinet in attendance, praising it as their best performance yet since the espionage operation was conducted in the South.  The North Korean regime attributes the name of May 18th to their best achievements as a symbol of honor.  For example, the name “May 18 Youth” was stamped out on a heavy-duty press machine (10,000 ton capacity) installed at Yongsung Enterprise.  In addition, there are more cases showing off “May 18” names, such as:

1)   May 18 Film Research Institute

2)   May 18 Accident-Free Towing Movement

3)   May 18 Silk Cocoon Working Group

4)   Honorable May 18 Youth Work Place

5)   May 18 Tank


Between 1989 and 1991, former North Korean dictator Kim Il-sung instructed two figures of South Korean origin, Mr. Hwang Suk-young (novelist), and Mr. Yoon I-sang (musician), to produce a film entitled “Symphonic Poem For You”
for the purpose of anti-America and South Korea propaganda.  These two figures were amply rewarded by the head honcho for the scenario, and for the theme tune respectively.


Surprisingl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not only been indifferent to this obvious fact, but it also commemorated the May 18th Riot as an honorable event concurrently with North Korea.  Isn’t it shameful for us all to know that this disgraceful history has been taught to our young students by our country for years as being honorable, and documented as the true history that secured Korea’s democracy?


Our country, the Republic of Korea, has become a ridiculous nation dear countrymen.  How can we possibly be expected to suppress our emotions without an eventual violent backlash?


With honor, I hereby present my “Final Analysis Report on the May 18th Kwangju Riot” to this country, as an esteemed entry to recorded history.  In my report there are many photos inserted of the North Korean commandos who conducted these secret operations as nameless, unidentified or anonymous insurgents.


It is my keen desire therefore, that readers make the best use of this book in setting the most disgraceful part of history, right.  Furthermore, I sincerely hope that each of my fellow countrymen will be in the vanguard to set this flagrant piece of written history straight, thereby allowing the country to finally stand tall.

 

October 15, 2014

Jee, Man-won

 

2013년 10월
저자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작성일 : 14-10-16 09:15

5.18광주에 민주화시위대는 없었다! (동영상)
 

 글쓴이 : 시스템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Wl-YbwZB12A

 

 

 

 

 

 

 

 

 

 

 

 

 

작성일 : 14-10-16 13:21

5.18분석 최종보고서 (요약)
 

 글쓴이 : 지만원

5.18분석 최종보고서

 

                                요 약

 

김일성은 10.26을 통일의 기회로 판단했다. 광주 폭동을 위해 10.26이후 살인기계로 훈련된 북한특수군을 축차적으로 침투시켰다. 5.18은 이렇게 집결시킨 600명의 특수군이 벌인 광란작전이었다. 광주사람들은 이들을 연고대생 600명이라 불렀다. 살벌했던 5.17계엄이 선포되면서 광주의 운동권 및 대학생들은 잡혀갔거나 사태기간 내내 숨어있었다. 지각없는 10대와 넝마주이, 껌팔이, 철공 등 59개 직종의 개념 없는 사회불만 계급이 부나비 되어 600명이 벌인 작전에 소모품 노릇을 했다. 이것이 광주시위대의 본질이었다.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형을 받은 12명은 겨우 5월 26일 하루 동안 ‘결사항전’을 선포해 계엄군 작전을 불러들인 ‘무 개념 부나비들’이었다. 1981년의 대법원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600명이 저지른 가공스런 살인-파괴 행위에 대해 처벌할 자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들은 26일 모두 사라졌다. 1997년 대법원은 이 600명과 이들이 동원한 부나비들을 놓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라 규정했고, “민주회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게 조기에 진압한 전두환 등을 내란범이라 판결했다. 인민군 판사들이었다.


 SUMMARY

 

Former North Korean dictator Kim Il-sung decided that October 26, 1979 (the date former President Park Jung-hee  assassinated) was a golden opportunity to unify the Korean Peninsula.  He stealthily deployed killer-trained commandos one after the other into the Kwangju area, to participate in the Kwangju Riot from October 26, 1979.

The May 18th Riot was a secret invasion wildly conducted by a mob that consisted of 600 North Korean special troops.  However, people in Kwangju city called the mob of 600 insurgents  -   students, who came from Yonsei University, and Korea University in Seoul.  As soon as martial law was declared in Kwangju City and surrounding vicinity, protesters and demonstrating university students were either arrested or hid out during this turbulent period of time.  An unknowing group of angry, social misfit rioters from 59 different
precarious occupations including teenagers, waste pickers, bums, etc., played their part as tiger moths that were overwhelmed in the rioting conducted by the 600 North Korean infiltrators. This is the true story of the May 18th Kwangju Riot. 



There were
merely12 clueless tiger moths that practically invited martial law troops, who were sentenced to death or life imprisonment for declaring their so-called “desperate resistance”  on the very day of May 26, 1980.


In 1981, the Supreme Court failed to hold the mob as accountable for committing the destruction
perpetrated by the 600 disguised commandos from May 18th to 21st , 1980.  The mob completely disappeared as of  May 26th 1980.  Then in 1997, the Supreme Court labeled the 600 commandos and the blind followers as from a semi-constitutional organization assembled to maintain and protect the status quo, and held former President Chun Doo-hwan who had pacified the rioters in the early stages to be guilty of treason.  The judges acted as if they were North Korean judges.


2014.10.16.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산업화~
42
민주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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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내조 (2014-10-16 17:42)
역사를 빨리 다 바로 잡자.
0
6
종북잡는망나니칼 (2014-10-16 17:51)
광주 오일팔과 전라도 우덜적폐 해소만 되면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이 20년은 앞당겨질 것이라 봄
0
6

댓글목록

한가람님의 댓글

한가람 작성일

비전원님... 사방 뛰어다니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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