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카톨릭마산 주보 칼럼으로 쓰인글입니다.
저자 성염 요한 보스코 前 주 교황청 한국대사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깨끗해졌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더는 드러나게 고을로 못 들어가시고, 나병 환자를 만진 탓에 부정 탔다고 손가락질당해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마르 1,40-45)
1945년 해방을 맞은 해부터 남한 땅에서는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덤비거나 미움받는 사람들은 모조리 “빨갱이”로 찍혀 학살당하고(6·25 전후 100만 명, 5·18의 광주의 시민들, 대구 인혁당희생자 등), 투옥당하고 고문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경상도에서 누굴 ‘문디’라 부를 땐 애증이 함께 묻어나지만, “빨갱이”로 찍히면 한국사회에서 “문둥이”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과거 독재정권들도 신부님들에게는 감히 “빨갱이”라는 딱지를 못 붙였다. 사람들이 안 믿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신부님들에게 “종북 사제”라는 호칭이 붙었다.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신자들이 마음이 몹시 불편한가 보다.
그중 일부는 주요일간지에 대형광고도 내고, 주교좌를 비롯한 성당 앞에서 “종북 주교 물러가라!” “종북 사제 척결하자!”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동대구역에서는 잘 차려입은 교우들이 “종북 사제 척결하자!”라는 유인물을 승객에게 나눠준다.
“정의구현 사제단”으로 알려진 신부님들은 대통령이 국정원의 “부정선거 획책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남이 명예로운 일이다.”라는 성명까지 발표하여 이 정권과 정면으로 맞섰다.
신자들이 속 시끄럽거든 이것 한 가지만 생각함직하다.사제단은 근년에만도 서울 용산에서 집터를 지키려다 불타죽은 주민들의 곁을 지켰고, 쌍용차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수천 명의 권리를 지켜왔고, 밀양에서 고향 땅을 지키려는 어르신들을 편들었고, 평화의 섬 제주도가 미국과 중국이 맞닥뜨리는 전쟁터가 될까 무서워하는 도민들을 지키고 싶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아무리 “박사모”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신부님들은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오명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 사회의 문둥이를 안아주니까 문둥이 취급을 받는다, 예수님처럼. 지난 70여 년간 남한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100만 명의 피를 두고 “그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책임지겠소.”(마태 27,25)라고 고함칠 용기는 없을 게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회를 “반공의 보루”라고 부르지 않고 “정의와 인권의 보루”라고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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