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빨치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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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ester 작성일13-11-20 15:20 조회2,93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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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정재학이 남기는, 여름날의 언어
그 전부터 해마다 3월이면, 전교조 통일위원회 소속 전교조 교사들이 빨치산 추모제를 지낸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쓴웃음을 짓곤 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설마 학생 까지 동원했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도 못했다. 교사란 존재, 아무리 좌익에 물든 자라 하여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양심은 가진 자들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북 임실 모 중학교에서 빨치산 추모제에 학생을 동원한 일이 있었음이 밝혀지자, 나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마디로 ‘금수(禽獸)만도 못한 자들’이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철없는 어린 것들을 부추겨 그토록 붉은 통일일꾼을 만들고 싶었을까.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에 짙은 의문을 남기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교사가 북의 통일론을 지지하면서 학생을 세뇌시키고 선동한다는 것. 그 빨치산 추모제에는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 한마디로 6.25 전범으로, 국군을 향해 총을 쏘고 우리 가족과 친지, 이웃을 행해 죽창을 휘두르던 죄인들이 있었다. 바로 그들이, 민족적 비극을 저지른 죄로 형(刑)을 받아 옥살이를 살아온 자들이 학생들 앞에서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던 과거를 이야기 하고, 반미를 부르짖으며 통일투쟁을 선동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비전향 장기수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 것을 거부하고, 북을 조국으로 생각하면서 장기복역을 한 죄수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부르짖는 통일과 통일일꾼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다름 아닌 적화통일을 위한 활동이 아니겠는가. 바로 여기에, 이 현장 속으로 전교조 교사들이 순박한 우리 학생들을 끌고 간 것이다.
‘우리는 적의 옷과 총을 빼앗아 들고 싸웠다.’ 그 적이 바로 국군이었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빨치산 출신 중 하나가 6.15 행사 때, 광주에 나타난 북측인사들에게 김정일 앞으로 보내는 ‘충성의 편지’를 건넸다가 잡혔다는 사실은 정녕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끊임없이 대한민국 전복(顚覆)을 노리고 적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학생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물며 저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 빨치산들과 한패라는 것은 정녕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들이 바로 평소 참교육을 말하고 학생인권을 말하던 전교조 교사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학부모님들도 마차가지였다. 전교조가 평소에 안개막처럼 치고 살았던 참교육이라는 말에 속아, 아무도 전교조 교사들의 정체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있었다. ‘일부만 그러겠지’ 하는 자위도, 사실은 전교조 정체에 대한 진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자들은 ‘교단민주’를 외치며 함께 행동하고 함께 생각한다. 그리고 ‘너, 나 우리 모두 싸잡아서 묙한다’는 일련의 피해의식으로 연결시켜 서로를 동지적 관계로 묶는다. 전교조의 조합원 교육에서 그들은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전교조에 끌려간 불쌍한 일반조합원들의 운명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그들은 전교조 활동의 소모품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아무도 전교조 정체와 목적, 빨치산 같은 조직운용의 수법을 모르는 채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전교조 교사들에게 맡기고 있다. 이 무서운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식들이 자라고 있다.
자유주의교육연합에서 임실 그 학교로 찾아가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비디오를 보여주었을 때, 학생들은 눈앞에 펼쳐진 실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희 또래 나이의 북한 아이들, 꽃제비들이라 불리우는 아이들의 앙상한 몰골. 굶어죽는 사람들. 화면 가득 채운 그 비참함을 보고 학생들은 한결같이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저럴 수가!”
그 순간, 빨치산 추모제로 학생을 끌고 간 전교조 교사의 노력과 비전향장기수의 선동은 수포로 돌아갔다. 학생들은 통일의 환상에서 벗어나 모두 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통일은 그런 것이다. 통일의 진실은 바로 그런 흔한, 사소함에 있는 것이다. 나는 간혹 우리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애들아, 너희들 사탕 하나 줄 테니까, 김정일 만세 한번 불러볼래?”
“싫어요.”
“그렇게 불러야 될 세상이 된다면?”
“아휴, 정말 싫어요.”
그래서 학생들은, 통일은 비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 비극이란 김정일 만세를 부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다, 아이들 모두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는. 자유대한민국 주도의 자유민주체제가 보장된 국가로 통일되어야 함을 깨닫고 있었다.
아무도 김정일 만세를 부르는 통일을 바라지 않았다. 김정일 만세를 불러도 좋으니까, 통일만 시켜달라는 학생도 없었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생각을 하고 싶어 하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자유로운 거주지를 꿈꾸었으며, 하고 싶은 일과 직업을 자유롭게 갖기를 소망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유치원 또는 유아원에서는 어린 것들이 사탕 하나 받아들고 김정일 초상화를 향해 ‘장군님, 감사합니다’를 외우고 있었다. 고개를 끄떡이는, 그 어린 것들의 메밀꽃대 만큼 가늘은 목을 바라보면서, 나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저 어린 것들이 김씨 왕조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구나.
지나온 5년. 그리고 전교조와의 투쟁. 나는 현직 교사로 살면서 수많은 위협과 고소고발을 겪었다. 승진에 대한 꿈도 아늑한 중년의 풍요도 버렸다. 남은 것은 부모에 대한 불효와 휘고 굽은 등뿐이다.
그러나 좌익들과의 투쟁이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오면서도 굽히지 않고 살아온 목적은 오직 하나. 국민 모두에게 전교조의 정체와 아울러 대한민국 교단의 위험한 현실을 알리고자 함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삼천리 방방곡곡, 땅과 바다와 하늘에 사는 국민들의 눈과 가슴, 가슴마다에 전교조와 좌익들의 음모를 알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부디, 다음과 같은 3가지 질문이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기를 바란다, 국민들이여.
왜 이런 자들이 우리 자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가?
왜 이런 자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었는가?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좌익들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2007년 7월 어느 날
영암 도포중학교에서 교사 정 재 학
경남 진해 老兵 옮김
그 전부터 해마다 3월이면, 전교조 통일위원회 소속 전교조 교사들이 빨치산 추모제를 지낸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쓴웃음을 짓곤 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설마 학생 까지 동원했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도 못했다. 교사란 존재, 아무리 좌익에 물든 자라 하여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양심은 가진 자들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북 임실 모 중학교에서 빨치산 추모제에 학생을 동원한 일이 있었음이 밝혀지자, 나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마디로 ‘금수(禽獸)만도 못한 자들’이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철없는 어린 것들을 부추겨 그토록 붉은 통일일꾼을 만들고 싶었을까.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에 짙은 의문을 남기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교사가 북의 통일론을 지지하면서 학생을 세뇌시키고 선동한다는 것. 그 빨치산 추모제에는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 한마디로 6.25 전범으로, 국군을 향해 총을 쏘고 우리 가족과 친지, 이웃을 행해 죽창을 휘두르던 죄인들이 있었다. 바로 그들이, 민족적 비극을 저지른 죄로 형(刑)을 받아 옥살이를 살아온 자들이 학생들 앞에서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던 과거를 이야기 하고, 반미를 부르짖으며 통일투쟁을 선동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비전향 장기수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 것을 거부하고, 북을 조국으로 생각하면서 장기복역을 한 죄수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부르짖는 통일과 통일일꾼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다름 아닌 적화통일을 위한 활동이 아니겠는가. 바로 여기에, 이 현장 속으로 전교조 교사들이 순박한 우리 학생들을 끌고 간 것이다.
‘우리는 적의 옷과 총을 빼앗아 들고 싸웠다.’ 그 적이 바로 국군이었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빨치산 출신 중 하나가 6.15 행사 때, 광주에 나타난 북측인사들에게 김정일 앞으로 보내는 ‘충성의 편지’를 건넸다가 잡혔다는 사실은 정녕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끊임없이 대한민국 전복(顚覆)을 노리고 적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학생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물며 저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 빨치산들과 한패라는 것은 정녕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들이 바로 평소 참교육을 말하고 학생인권을 말하던 전교조 교사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학부모님들도 마차가지였다. 전교조가 평소에 안개막처럼 치고 살았던 참교육이라는 말에 속아, 아무도 전교조 교사들의 정체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있었다. ‘일부만 그러겠지’ 하는 자위도, 사실은 전교조 정체에 대한 진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자들은 ‘교단민주’를 외치며 함께 행동하고 함께 생각한다. 그리고 ‘너, 나 우리 모두 싸잡아서 묙한다’는 일련의 피해의식으로 연결시켜 서로를 동지적 관계로 묶는다. 전교조의 조합원 교육에서 그들은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전교조에 끌려간 불쌍한 일반조합원들의 운명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그들은 전교조 활동의 소모품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아무도 전교조 정체와 목적, 빨치산 같은 조직운용의 수법을 모르는 채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전교조 교사들에게 맡기고 있다. 이 무서운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식들이 자라고 있다.
자유주의교육연합에서 임실 그 학교로 찾아가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비디오를 보여주었을 때, 학생들은 눈앞에 펼쳐진 실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희 또래 나이의 북한 아이들, 꽃제비들이라 불리우는 아이들의 앙상한 몰골. 굶어죽는 사람들. 화면 가득 채운 그 비참함을 보고 학생들은 한결같이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저럴 수가!”
그 순간, 빨치산 추모제로 학생을 끌고 간 전교조 교사의 노력과 비전향장기수의 선동은 수포로 돌아갔다. 학생들은 통일의 환상에서 벗어나 모두 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통일은 그런 것이다. 통일의 진실은 바로 그런 흔한, 사소함에 있는 것이다. 나는 간혹 우리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애들아, 너희들 사탕 하나 줄 테니까, 김정일 만세 한번 불러볼래?”
“싫어요.”
“그렇게 불러야 될 세상이 된다면?”
“아휴, 정말 싫어요.”
그래서 학생들은, 통일은 비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 비극이란 김정일 만세를 부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다, 아이들 모두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는. 자유대한민국 주도의 자유민주체제가 보장된 국가로 통일되어야 함을 깨닫고 있었다.
아무도 김정일 만세를 부르는 통일을 바라지 않았다. 김정일 만세를 불러도 좋으니까, 통일만 시켜달라는 학생도 없었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생각을 하고 싶어 하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자유로운 거주지를 꿈꾸었으며, 하고 싶은 일과 직업을 자유롭게 갖기를 소망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유치원 또는 유아원에서는 어린 것들이 사탕 하나 받아들고 김정일 초상화를 향해 ‘장군님, 감사합니다’를 외우고 있었다. 고개를 끄떡이는, 그 어린 것들의 메밀꽃대 만큼 가늘은 목을 바라보면서, 나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저 어린 것들이 김씨 왕조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구나.
지나온 5년. 그리고 전교조와의 투쟁. 나는 현직 교사로 살면서 수많은 위협과 고소고발을 겪었다. 승진에 대한 꿈도 아늑한 중년의 풍요도 버렸다. 남은 것은 부모에 대한 불효와 휘고 굽은 등뿐이다.
그러나 좌익들과의 투쟁이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오면서도 굽히지 않고 살아온 목적은 오직 하나. 국민 모두에게 전교조의 정체와 아울러 대한민국 교단의 위험한 현실을 알리고자 함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삼천리 방방곡곡, 땅과 바다와 하늘에 사는 국민들의 눈과 가슴, 가슴마다에 전교조와 좌익들의 음모를 알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부디, 다음과 같은 3가지 질문이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기를 바란다, 국민들이여.
왜 이런 자들이 우리 자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가?
왜 이런 자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었는가?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좌익들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2007년 7월 어느 날
영암 도포중학교에서 교사 정 재 학
경남 진해 老兵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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