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의 정과 신앙인의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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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3-10-27 06:26 조회2,7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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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의 정과 신앙인의 헌금 2013/10/26 06:52 | 추천 0 스크랩 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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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의 정과 신앙인의 헌금
연민의 정이란 남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헌금이란 일반적으로 내는 돈이란 뜻인데 종교에서는 믿음의 대상인 절대자에게 교리 목적에 부합되게, 정성을 다하며 바치는 순수한돈이란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1980년도 초기부터 강남구 대치동(은마아파트 파출소 건너편)에는 성당(현재의 대체1동 성당)을 짓느라 한창일 때 였다.
당시 서울대교구 소속 강남 청담동 성당에서 살림을 내어 새로 짓는 성당이었다. 당시는 천주교 교세가 하늘을 찌른다는 말그대로의 형국으로 천주교 입교자들이 교리반이 모자랄 정도로 신청하며 몰려들었다. 서울대교구 차원의 운영면에서도 기쁘고 또한 신자들 모두가 신앙의 열기로 들떠 감사했던 시기이다.
성당이 곧 완공되고 신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성당을 다녔다. 그런데 특이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초대신부이신 A요셉 신부뒤로 부임하신 K 루도비꼬 신부님 때부터 김몽은 신부님이어 C 모이세 신부님때 까지 여러해 동안 성당 정문앞 8m떨어진 꽃가게 앞에서 아주 비대하고 목청도 큰 여자거지 한사람이 세살가량 되는 아기를 옆에 앉혀 놓고 처량하고도 구성진 목소리를 내며 적선을 호소하였다. 구호는 '배가 고파요~!'였다. 사람의 눈치를 흘끔 흘끔 쳐다 보며 같은 목소리고 외 쳤다. '배가 고파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여자거지 행색과 아무것도 모르며 함께 있는 초라한 어린아이와 남자 합창단 솔리스트 테너 목소리는 저리가라 할정도의 파급력있게 호소하는 목소리와 그 '배가 고파요~1' 하는 내용을 듣고는 그냥 지냐칠수 없는 마음이 생겨나 가금씩 적선하는 신자들이 늘어 났다.
알고보니 그 여자거지는 이웃성당 여러곳을 날짜 정해 놓고 돌아다니는 상습적 거지 행색 연기자였다. 여러해 동안 그러하였다. 어느주일 교중미사때 C신부님께서 강론말씀 까지 하셨다. '지금 우리성당 앞에 동냥을 하는 사람이 있다. 저렇게 다른 일을 열심히 할 수가 있는데도 길바닥에 엎드려 노력않고 거지행색 연기로 적선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겐 적선하지 말라 였다.'
떠 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 여자거지는 사회전체가 가난한 당시 도곡동 AID 좁은 아파트 전세 사는 사람보다 더 큰 억대짜리 아파트도 소유한 주인공이라 하였다. 세상에 사람사는 모양새가 참으로 여러가지이다.
천주교 신부들이나 수도자들은 신자들의 헌금으로 살아가는 신분이다. 신자들이 내는 헌금이 모여 교구청에 납부되면 그 돈으로 월급이 책정된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 봉급범위 안에서 신부(사제) 활동을 한다.그 외에도 주일미사 외에 각종명분의 미사를 주례하면서 개인적 활동비가 마련된다. 신자들과 사제들 간의 이 모든 금전적 흐름은 헌금봉헌이란 명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천주교내 우리사회에서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호화스런 생활을 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신부위상이 지역사회에서는 유지급 지도자로 초청되고 그리고 씀씀이가 평신도들보다 윤택한 수준으로 비춰 졌다. 예를 들어 '골프'치는 것이 신자들 앞에서 자랑거리가 되고 과부헌금내는 정신의 신자들에겐 엄두도 내지 못하는 비싼 돈 써가며 국내외 여행다니는 것이 여반사 모습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운동이란 명목으로 골프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부들 발걸음은 헌금내며 골프장 한번가보지 못한 신자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것이다. 특수하게도 신부이고 수도자 이기에 검소해야만 되고 겸손해야 되고 그리고 하느님 말씀따라 행동하는 교육적 모범의 모습이 풍겨나야 한다.
가난한 신앙인들의 헌금으로 몇백명 사제들이 1인당 몇십만원 하는 항공기 타고 다니며 단체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잇는 오늘날 사제수도자들의 모습이다. 강론때 '과부들의 헌금' 아란 성경구절을 신자들에게 가르치며 헌금하기 마음을 부추기면서 그 헌금한 돈이 가난한 자에세 모두 쓰여야 할 판에 명색은 가난한자 위한다 하면서 현실적으로 나타난 모습들은 비행기 타고 제주도 피정 가기이고 크르즈 해외 성지여행떠나는 모습들이다.
개신교가 일어날때의 중세말의 예인데 '마르틴 루터' 당시 유럽 각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로마 바티칸에 베드로 성당 건축명목으로 먼거리 여행비 내고 가기 어려우니 국내에 머물며 벽돌한장 값 내는 헌금으로 전대사 혜택을 받자 한 것이, 고백성사 대죄 사함도 아니고 잔벌흔적 없애자는 전대사 은총 교리적 뜻인데도 개신교 일으키는 측에선 무조건 '면죄부' 판매라 역설적으로 바가지 뒤집어 씌우면서 공격하는 바람에 고백시 대죄와 전대사에 관하여 아무리 입이 아프게 설명해도 '면죄부'라는 단어 공격앞에 결국 개신교라는 신교가 탄생한 역사적 예가 있다.
오늘날 호화판 천주교가 하늘을 찌르는 성당이나 짓고 부설 건물이나 으리뻑적 지어가며 신자들에게 겸손하라 타이르며 과부헌금이란 성경구절을 들춰가며 성가까지 불러가며 헌금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결과적으로 교회정신으로 헌금이 쓰이는 것이 아니고 젊은 청년들과 어울려 밤 늦게 까지 여기저기서 술타령이나 하고 비둘어진 여성관계 추문이나 내고 심지어 교회가 간섭 할 사안이 아닌데도 선거때만 되면 신부가 주동이 되어 어느후보 낙선운동해야 된다며 어느후보 지지하여 당선시키라 하며 마치 염라대왕 위세로 나대는 타락현상이 비일비재 한 현실이 되었다. 강우일 주교를 필두로 많은 주교들이 현실사회 참여란 교리해석을 그럴싸하게 잘못 내세우며 심지어 국가시책에 반대하는 각종사안에 대들고 더 한심하게 대한민국 정체성을 불인정하는 공산좌파 사회주의 옹호 노선에 동참하는 현실에 아연실색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실정에 다달았다.
한국천주교회! 교회를 지도하고 이끄는 고위층 즉, 추기경, 대주교, 주교, 몬시뇰등 그리고 수도회 장상 모든 위상의 소위 말해 왔던 교회 지도자!
오늘날 신자들에게 교중미사 강론중 자기 말 듣지 않으면 성체영하는것을 거부하겠다 하기 까지 서슴치 않은 도깨비 가같은 신부들까지 나오는 현실과 신자들을 협박해 예수님도 핍박 받다가 십자가에 매달리 셨으니 신자들도 전국 각처 국책사업 현장에 반대 데모에 동참하여 예수님 닮으라하는 언사를 여과없이 내 뱉는 현실에서 과연 교회지도자들은 이 잘못 가침을 가슴으로 듣는 신자들의 현실 난처함을 어떻게 가르치고 이글려 하고 있는가? 오늘날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횡포로 시달리는 신자들의 아우성에 왜 침묵만 하고 있는 현실의 교회상인가?
신자들은 교회밖에서 처량하게 동정구하며 구걸질 하는거지에 방불한 제주도 해군기지앞 거적대기나 깔고 앉아 거리미사 점방이나 펼쳐 놓은 곳에 애긍하는, 헌금내는 도구에 불과한 신분인가! 왜 교회지도자들이 단체행동으로 경우에 따라 신자들까지 대동하고 여행 명목의 비싼 돈 내가며 비행기나 타고 제주도 강정마을 까지 가서 문정현등 운동권 신부들에 헌금이나 내야만 하는가? 반국가적 행위를 하는 그들에게 적선하여 무엇이 이루어 진다는 말인가? 교회 전체가 썩어도 너무 썩은 현실임에 통탄을 금치못하는 작금의 오늘날이다.가난해야 하느님 나라가 임한다 사제들 수도자들이 신자들에게 가르치면서 자기가 대표해야 할 교회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신부 수도자 그들 스스로 호화로움에 빠져 집단적으로 뽑내는 행세는 교리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것 아니겠는가? 자기 모순에 빠진 인간일 뿐이지 않는가? 왜 사제이고 수도자라 해야만 하는가!
사제 수도자 들은 마음 안팎으로 착하고 선량하며 세속적 수법인 둘러대기 일수로 처신함을 부끄러워야 하고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하느님을 흠숭하는 거짓되지 않는 삶의 모범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그 종교가 생기를 되찾고 살아 숨쉬게 된다는 점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야 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외형적으로 하느님 말씀 내세우며 정반대로 뒤로는 거짓으로 점철된 이중적 집단행동이나 동시에 일삼는 마귀 같은 처신을 서슴치 않는 대부분 오늘날 신부들과 수도자들을 하느님께 그리고 천하만민에게 고발하는 바이다. 2013. 10. 27. 춘천에서 화곡 김찬수 알렉산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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