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서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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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3-10-14 06:53 조회3,3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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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서석용
어떤 인간이 길바닥에 접착제를 뿌리고 다닌다면 사람들은 매우 흥분해서 그자를 찾아 혼을 내줄 것이다. 모든 길바닥이 끈적거려 도무지 다닐 수가 없다. 신발이 바닥에 붙어 몸을 움직이려면 안간힘을 써야 한다. 심지어 자동차도 시원하게 달릴 수 없고 엔진소리 요란하지만 원하는 곳이나 원하는 시간에 도착할 방법도 없다.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흥분해서 그 몹쓸 짓을 한 놈(者)을 찾아내 보복을 할 것이 틀림없다.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거지로 만들어버리거나 아니면 감옥으로 보내 죗값을 받게 할 것이다. 아무튼 결코 그냥 모른 척하지는 않을 터이다. 너무도 당연하다. 이런 당연한 보복을 하지 않고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 이런 사고가 있다. 요즘 친노들이 하는 짓을 보면 멀쩡한 도로에 마구 끈끈이를 뿌려대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길을 가지 못하고, 스스로도 가지 못한다. 모두가 망하는 방향으로 허우적대고 있는 중이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다. 적절한 입법을 방해해서 나라가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 명분이라야 고작 국정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과 박근혜정부가 민주적이지 못하다(?)면서 바로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난 대선에 다소 의심스런 것이 있으니 박근혜대통령은 그 점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끈끈이를 잔뜩 뿌려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우리끼리만 아웅다웅한다면 그래도 보아줄만 하다. 이제 꼼짝 못하는 우리를 보면서 마침 북한이라는 적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하긴 우리에게 주적이 없다면 나라의 발전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따질 것은 따지고 가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북한이라는 주적이 있으니 환경이 좀 남다르다.
마치 일부러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만큼 친노들은 불요불급한 행위를 한다. 왜 저런 짓을 일부러 골라서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때마다 북한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매우 만족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이적행위를 자행해도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다.
이제 이 이야기를 특정한 부분으로 돌린다. 말하자면 본론으로 간다. 모모 천주교 신부들도 역시 그 끈끈이를 뿌리고 있는 중이다. 아마 친노와 같은 계열인지 모른다. 물론 그들이 뿌리는 끈끈이 피해를 입고 있는 군중은 천주교신자들이다. 국가 전체로 보면 그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일부 천주교신자들이 바로 그 끈끈이 때문에 천주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는 물론 천주교라는 특정사회에서 발생하는 국소적 사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면 그렇지만도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들 이상한 짓을 하는 신부들은 여기저기 나타나 이런저런 엉뚱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우리에게는 국가사업이라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제주에 군항을 설치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사업이다. 제주도라는 지자체의 일은 아니다. 그만큼 그 사업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요즘 중국과 일본이 조그만 섬 때문에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을 보면 우리도 시급히 군항을 제주에 건설해야 한다는 현실을 절감할 것이다.
바로 그 건설의 장소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로만컬러(Roman collar)들이 있다. 왜 나타날까? 그야 그 건설현장에 끈끈이를 칠하기 위해 나타난다. 왜 그런 방해를 해야 할까? 그 이유는 당사자들만 알고 있다. 아마 매우 복잡한 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그들은 상당한 끈끈이를 뿌리고 있다.
물론 그들 개인이 모든 국가사업에 찬성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반대의사를 가지거나 개진할 수 있다고 본다. 아무리 거룩한 성직자라도 개인의 소견은 말리지 못한다. 매우 급진적 사고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도 분명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가진다.
실제로 남미 쪽에는 끔찍한 진보주의 신부들이 많다. 그런 의지를 책으로 출판하기도 한다. 가끔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도로에 끈끈이를 뿌리지는 않는다. 결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북한과 같은 적이 없어서 그럴까?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기묘한 현상이다.
급진적이고 소위 진보성향이라면 도로에 끈끈이를 뿌리는 것이 상식인데, 그들은 그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진보성향의 신부들이 있는가? 제주 군항공사 현장을 들락거리는 신부들이 바로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아마 본인들은 꽤 자랑스럽게 여길지 모른다.
진보 신부의 본향인 남미에서는 도로에 끈끈이를 칠하지 않는데, 유독 우리의 진보 신부들은 그 짓을 하고 있는가?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일까? 왜 그들은 끈끈이를 자꾸 사용하려 애를 쓸까? 어디서부터 해석해보아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본바닥 남미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참 어렵다.
결국 그들이 노리는 노림수를 파악하는 것이 그것을 해석하는 첩경일 터이다. 그들이 군항 건설을 반대하면 누가 제일 기뻐할까? 그야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펄쩍 뛰며 좋아할 터이다. 사실 북한이 진해를 공격하는 것보다, 높은 한라산 너머에 있는 제주군항을 공격하는데 시간도 더 걸리고 요격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니 제주군항은 건설하지 못하게 해야 할 대상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못된 신부들이 군항 건설에 끈끈이를 뿌리는 현실과 북한이 제주군항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실질적 관련이 있을까? 이는 바로 그 신부들에게 물어보아야 답을 얻을 사항이지만,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것도 있어 위의 두 사례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신부들이 빨갱이란 이야기가 되는데, 설마 Roman collar의 거룩한 신부가 빨갱이가 될 수 있을까? 實例가 있을까? 임수경이와 북한을 다녀온 신부도 있으니 빨갱이 신부가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틀림없이 그런 부류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제주군항 부근을 어정거리는 신부에게 직접 물어보면 어떤 답을 할까?
참 재미있는 질문이다. 아직 물어본 적이 없어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자신은 빨갱이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것 같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빨갱이라야 제주군항 건설을 반대할 명분을 가지는데 빨갱이도 아니면서 제주군항 건설에 반대하는 것은 도무지 무슨 명분일까?
은근슬쩍 뭐 환경파괴가 어쩌고저쩌고 떠들고 있다. 바로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북한이 좋고 북한을 도와주고 싶어 시간을 아껴 제주군항 건설 반대 집회에 참석했노라고 실토를 하면 무엇이 덧날까? 왜 그들은 떳떳하지 못할까? 그들 자신들도 건설반대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셈인가?
그러기에 떳떳하지 못하니까 은근슬쩍 말꼬리를 돌려 환경이 어쩌고저쩌고 떠들고 있다. 차라리 자신들이 빨갱이란 것을 만천하에 왜 선포하지 못할까? 그렇게 당당하지 않은 일을 왜 일부러 힘들여 저지르는가? 더구나 성직자 신분으로 빨갱이가 아니라는 거짓말까지 하는가? 신자들에게는 거짓말을 금하면서 자신들은 주저 없이 거짓말을 한다.
이런 모순이 천지에 어디 있는가? 빨갱이가 빨갱이 아니라면서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는데, 그러고도 성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차라리 성직자 옷을 벗고 본격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얼까? 국가보안법이 겁나서 그런가? 하긴 그 부류의 신부들이 어떤 단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냥 소문이 그렇다는 뜻이다. 일명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명칭을 쓰는 모양이다. 그것은 공식적인 단체가 아니라고 한다. 말하자면 구성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비밀단체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빨갱이라 여기는 신부들이 대부분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데 물론 확인된 바는 없다.
구성원을 확인할 수 없는 비밀단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무엇이 겁나서 구성원을 숨기고 있을까? 여기에 모든 사건의 本質이 있다.
구성원을 낱낱이 밝히기 거북한 사정을 분명 가지고 있다는 自白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겁을 내면서 그 비밀단체를 유지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을까? 무슨 정의를 구현할 것이 그렇게 많아 비밀스런 단체까지 구성해서 야단을 부리고 있을까? 참 해괴한 노릇을 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정의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 그것을 구현해보려고 하는가? 과연 정의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도 정의를 곧바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어떤 共同體의 共通善 수준이 正義가 될지 모른다는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정의란 어려운 개념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런 어려운 정의를 들먹이면서 기어코 해보려는 작업이 무엇이기에 구성원이 누구인지를 숨기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 그렇게 구성원마저 숨겨야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면 도대체 무슨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뜻인가? 우리가 잘 모르는 그들만의 정의를 구현해보겠다는 뜻일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짓을 이 밝은 태양 아래서 획책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수없이 많은 한국 천주교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짓을 기어코 하겠다는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구성원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비밀스럽게 정의라는 것을 구현하겠다는 속셈인가? 그 정의가 무슨 정의인가?
대한민국을 거꾸러뜨리는 사건으로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주장할 셈인가? 무슨 정의를 정의라 부르는지 그것만이라도 시원하게 알려주기 바란다.
目下 제일 바람직한 것은 그들이 모두 성직자 옷을 벗고 자신들이 그렇게 소망하는 바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 길이 제일 바람직한 길이다. 왜 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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