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종북빨갱이들의 폭동반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3-08-17 08:30 조회3,53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5.18이 민주화 운동이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
1. 광주5.18은 북한 식 민족민주화 운동
1) 1980년 5.18광주의 사상적 지주, 원조빨치산 박현채:
“민족민주 운동은 자기 나름의 요구를 가지고 그것을 확고히 지키고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민족민주 운동을 보다 큰 정치세력으로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현채, 1993, 88)
2) 5.18광주 전대총학생회장 박관현의 5월8일 민족민주화 성회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세력의 척결을 위해 투쟁해 온 우리 전남대학인은 참다운 민주화 평등의 꽃이 피어 오르는 그날까지 민족민주화 성회를 계속 할 것을 선포하며, 이곳이 해방을 맞는 민족의 광장이 되기를 염원한다.”
(5.18사료편찬위원회, 2009, 1:685)
3)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간첩사건:
이석기 민족민주혁명(민혁당) 사건으로 2003년 고법에서 징역 2년6개월 판결, 5개월 후 노무현이 그를 풀어 줌.
4) 북한 구국전선 2003년 5월21일호:
“반미 반전운동은 민족민주 세력의 당면과제”
2.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과 5.18광주
5월 19일 국민연합 사람과의 회동 직후 윤상원은 두 개의 내란선동 유인물을 “호소문”과 “민주시민들이여”라는 제목으로 등장시킨다. 그런데 국민연합 명의가 아닌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하위조직 민주투쟁위원회 명의로 작성하였다.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 효과를 보았기 때문인지 여기서 그는 그 유언비어를 여러 사람 사망 유언비어로 증폭시킨다.
광주시민 민주투쟁위원회(남민전 하부조직) 명의의 “호소문”에는 여러 학생 사망 설 유언비어가 이렇게 등장한다: “죄 없는 학생들과 시민이 수없이 죽었으며 지금도 계속 연행당하고 있습니다.” 이어 나오는 문장 “지금 서울을 비롯하여 도처에서 애국시민의 궐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선대학교 민주투쟁위원회 명의의 또 하나의 내란선동 유인물 “민주시민들이여”에는 여러 학생 사망 유언비어가 “최소 시민 3명, 학생 4명 이상 사망 확인”이란 문장으로 실려 있으며, 이어 “전국 일원의 유혈 폭동”이란 문구가 들어있다 (김영택 1996, 64).
3. 5.18 주동자 아무도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5.18에서 거룩한 “님”으로 추앙 받는 윤상원의 말이다.
“5.18이란, 국가권력 타도를 위한 무장봉기(박노해의 윤상원 평전에서)”,
다음 5.18의 대부 황석영은 그가 쓴 책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에서 말한다.
“5.18은 통일을 위한 무장투쟁이요 광주는 분단으로부터 해방시킨 일시적 해방구였다,
다음으로 5.18에서 시민군 대장이었던 김종배의 말이다.
“5.18은, 반 체제, 재야인사, 불순세력, 학생이 전국규모로 들고 일어나 과도정부를 전복하는 것”,
마지막으로 최규하 정부 퇴진을 위해 5.18무장봉기를 적극 선동했던 김성용 신부의 말은 이렇다.
“천대 받은 전라도의 한을 표출한 사건이다.”
4. 북한과 내통한 종북좌익 및 간첩들이 주동한 5.18광주
1) 김대중: 국민연합대표, 1980년 5.18 민중봉기 계획, 최규하 임시정부 전복을 위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주모자, 1971년 일본에서 한민통 활동자금으로 북한 부주석 김병식으로부터 20만 달러 받았고, 1988년 간첩 서경원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아 온 공작금 1만 달러를 받았으며, 2000년 김정일에게는 5억 달러의 대한민국 國富를 김정일에게 진상하였다.
2) 황석영: 황석영은 광주에서 1980년 극단 광대를 운영하며 5.18 불법시위 선동에 단원들을 적극 참가시킨다. 그는 1989년 3월 20일 북한에 밀입국하여 같은 시기에 북한에 들어와 김일성을 만났던 윤이상과 5.18광주를 주제로 한 대남-반미의식 고취를 위한 “님을 위한 교향시”라는 영화를 제작해 줌으로써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칭호와 함께 25만 달러라는 공작금을 받았었다.
3) 서경원: 서경원의 카톨릭농민회가 1980년 5월15일 5.18폭동을 선동하며 주도했고, 동신실업전문대학 학생회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명의로 제2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핏빛 진달래로 피어 오르길 바란다!" 북한 김일성의 꽃 진달래를 흠모했던 그는 1988년 북한에 밀 입북하여 김일성으로부터 5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았던 간첩.
4) 윤기권: 5.18광주 유공자 윤기권이 대한민국 민주화 발전을 위해 공을 세웠다고 보상금도 챙기고, 북한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평양시 교수강습 및 학생답사견학소 지도교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럼 5.18광주 정신은 북한이 원하는 적화통일에 밑거름이 된다는 점을 어떻게 반박하고 부정할 것인가? 5.18측이 유기권을 버리면 그와 함께 싸웠던 시민 군도 북한을 위해 싸웠던 반란군으로 내쳐야 하고, 윤기권을 껴 안으면 5.18정신은 피할 수 없이 북한의 적화통일 운동이 된다.
5) 윤상원: 김대중과 광주를 연결하는 인물은 광주 폭동 주동자 윤상원이었다. 김대중이 당시 5월 22일로 예정되었던 쿠데타(민중봉기로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 하야 시키고 김대중 스스로 대통령 되려 했던 내란) 준비를 하던 "민주회복 국민회의" 사무국장으로 임명한지 불과 한달 여 만에 광주사태가 터졌다. 그러나, 윤상원 본인은 김대중을 위해서라기보다 공산주의 사상 동지들을 위해 폭동을 주동하였다.
6) 윤한봉: 5.18무장폭동의 실질적 지휘자였던 그는 공산주의 혁명가요 남민전 전사였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당사자 박형선의 처남이 윤한봉이요 노무현의 측근 박연호도 그 사건 관련자이며 모두 광주일고 동문들이다. 5.18기념재단설립자 윤한봉은 동지 8명과 함께 박정희 암살을 계획했으나 5.18 직전에 꼬리가 잡혀 결국 미국으로 피신한다. 미국에서 1989년에는 전대협대표 임수경과 문규현신부를 김일성 평양축전에 밀 입북시키는 일을 성사시켰다.
7) 문익환: 김일성의 충실한 심부름꾼 문익환은 안재구 등 남민전 간부들이 출옥하자마자 김일성의 부름을 받고 평양에 가서 지령을 받아 ‘구국전위’를 결성한다. 국민연합 중앙위 상임위원장이었으니 5.18광주 무장봉기의 선봉장이었다. 5월8일 폭력시위를 결의하였고, 남민전 전사 안재구와 그 가족을 극진히 돌봐 주었으며, 김대중으로부터 대통령 이전에 매달 500만원씩 받았었고, 간첩 이선실로부터도 수천 만원 단위의 공작금을 지원 받았었다.
8) 장기표: 국민연합 조직국장 장기표, 심재권과 함께 5.18당시 서울 쪽 행동대장이었다. 윤상원을 김대중에게 천거한 장본인이니 윤상원은 사실상 장기표의 꼭두각시인 셈이다. 있지도 않은 신 군부라는 이름으로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억지를 부렸던 5.18세력의 사령탑이 바로 장기표인 셈이다. 그는 훗날 북한 여간첩 이선실과 접선하였고 그가 간첩임을 알면서도 숨겨 주었으며 그로부터 자금지원도 받았었다. 자생간첩 활동을 한 셈이다. 박정희의 산업화 노선에 목숨 걸고 반대한 인물.
5.18폭동반란, 그 부정하고 불법적인 범죄행위 역사를 국민들 스스로 심판하려는 여론을 협박으로 혹은 폭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5.18세력, 김일성 왕국의 살인 독재를 본 받고 싶은가? 5.18을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할 바에는,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주장하라. 이상.
2013. 8. 17. 만토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