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요약] 내부·외부 관찰자가 본 판사들의 윤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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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碧波郞 작성일13-08-11 22:50 조회3,214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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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우리처럼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
⊙ 소송법상 법관은 운동경기에서 ‘심판’ 정도의 지위
⊙ “판사도 불완전한 존재고, 재판 제도 역시 불완전한 제도”
몇 해 전 대한민국에서 법조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서울대 법대의 한 명예교수가 《월간조선》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사회기강을 바로잡는 사정(司正)의 주체와 사정의 대상도 모두 서울법대 출신이었습니다. 또 사정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메우는 이도 서울대 법대 출신입니다. 이를 바라보는 서울법대인의 심정이 씁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타 공인 가장 우수하다는 서울법대 출신들이 역대 정권 때마다 사정의 주체이자 그 대상이 되었다는 아이러니는 새삼스럽지 않다.
기자가 아는 판사들은 죄다 모범생이고 공부벌레들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새벽까지 판결문과 씨름하며 기록과 싸울지 모른다. 그러나 일부 비행(非行)·막말 판사들로 인해 사법부 전체가 불신을 받고 있다. 대한변협 공보이사를 지낸 엄상익(嚴相益) 변호사는 “판사들이 바라는 대가는 사회의 신뢰와 존경이었다. 그런데 그게 허물어져 가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국민들은 높은 법대(法臺)에서 검은 법복을 걸친 판사들을 마치 솔로몬 같은 전능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송법상 법관은 운동경기에서 ‘심판’ 정도의 지위입니다.”
엄 변호사는 “판사들의 사건 폭주 때문에 만들어진 법원 내부의 기능적인 관례들이 엄청난 오해와 한(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재판은 절차적 정의다. 핵심은 납득이다. 사법도 서비스다. 그렇다면 눈높이도 국민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변호사들이 주장과 증거를 완벽하게 제출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판사들도 많습니다. 밥상을 다 차려줘야 맛을 보겠다는 것이죠. 무조건 의심하는 병에 걸린 법관들도 많습니다. 국민의 미숙한 걸 모두 받아주고 안아주는, 그런 성직자 같은 판사라면 누구라도 존경할 것 같습니다.”
方熙宣이란 이름 석 자
법조인 사이에 ‘방희선(方熙宣)’이란 이름 석자만큼 논란을 가져온 이도 없다. 1992년 구속영장이 기각된 시위 대학생을 불법구금한 경찰관 5명을 고발하고, 법원의 인사조치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1997년 3월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8년부터 동국대에서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방 교수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법원 개혁에 앞장서 왔다.
“폐쇄적 관료주의와 ¹순혈주의로 인한 법조인의 고립적 행태는 사법의 발전과 신뢰에 치명적입니다. 과거 수차례 사법파동 때마다 뜻있는 판사들이 지적해 온 고질적 병폐가 아닌가요? 모두가 독립된 헌법기관인 법관들의 실상이 조직 내부에선 한갓 인사권자 한 사람의 바둑돌에 불과하게 보일 정도로 상부의 눈치나 살피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¹순혈주의 : 법조계의 신분을 가르는 속어. 경판(京判)과 향판(鄕判). 경판은 첫 부임지가 서울특별시, 향판은 첫 부임지가 지방도시. 경판은 다시 백판(白判)이냐 아니냐로 갈리는 데, 백판은 서울특별시로만 도는 말 그대로 上判 중에 상판임. 이들이 법조계를 두루 장악함.
그가 판사를 그만둔 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그때와 지금의 법조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러나 그는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폐쇄적 관료집단의 문화는 안 바뀌더라”고 무겁게 말했다.
“판사들은 법률가라는 의식보다 ‘사법의 관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대법원장을 정점(頂點)으로 하는 관료문화가 여전합니다. 젊은 판사조차 그 문화에 안주하고 보호받으려 합니다. 마치 과거의 목민관(牧民官)처럼 ‘백성을 보살핀다’는 문화가 남아 있어요. 법정에 가보면 얼마나 고압적인지, 그 선민(選民)의식에 놀라곤 합니다.”
방 교수는 “판사가 일반인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인식의 오류’”라고 했다.
“법조인은 우리 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며 그래서 일반인과 다른 윤리수준을 요구합니다. 시정잡배처럼 거래하면 안 되니까요. 사법부가 판사의 윤리의식을 기르기 위해 도(道)를 닦게 하거나 금욕·수도생활이라도 권장합니까. 선진국은 윤리의식이 남다른 판사를 뽑으려는 프로세스가 있지만 한국은 안 그렇습니다. 점수로 뽑고, 뽑은 뒤에는 인격교육을 시킨 적이 있나요?”
사실, 법관과 사법부의 분위기는 누가 뭐래도 정권의 이념적 배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통령의 좌우 이념 성향, 다수를 점하는 정당의 이념 지향, 그간의 판결이나 발언에서 유추된 대법관(혹은 헌재 재판관)의 개인적 이념과 역사의식, 그리고 보혁 성향의 대법관들 간 이해관계가 혼합돼 사법부의 좌표가 결정된다. 유신(維新)과 5·6공 정부 때도,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부 때도 다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철학에 부합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진보 성향의 박시환(朴時煥)·김지형(金知衡) 대법관이 대법원에, 송두환(宋斗煥) 재판관이 헌재에 진입했다. 민변 부회장이던 강금실(康錦實) 변호사가 법무장관(2003.2~2004.7)이 된 것도 비슷한 케이스.
그 틈 속에서 상·하급심 판사들은 법과 개인의 양심, 정치적 신념, 정권의 성향 위에서 ‘영리하게’ 외줄을 탄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울중앙지법원장 출신의 법무법인 충정의 이우근(李宇根) 대표변호사의 말이다.
정치판사의 4가지 유형
“예전의 ‘권력 추종형’ 판사들은 단순히 독재정권의 눈치만 살피면 됐지만, 요즘의 일부 정치 판사들은 정권의 추이(推移), 여야의 권력지형, 시류(時流)의 변화, 여론의 동향 등을 두루 살핍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정치적일 수 있지요.”
이우근 변호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도 정치권력에 아부하거나 정치권에 줄을 대고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권력추종형’ 정치판사가 없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권이 수시로 교체되고 권력의 사법부 장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이즈음에는, 정치권력에 맞서 시민단체 요구나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재판하는 ‘정치판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변호사는 ‘정치판사’ 유형을 다섯 가지로 나눈다. 첫째,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의 지지를 상실해 가는 정권의 속성에 비춰, 현재의 정권보다 차기 정권에 기대를 거는 ‘권력지향형’ 판사. 둘째, 시민운동에 보조를 맞추는 소위 ‘개념 판사’로, ‘시류영합형’ 판사. 이들은 자신의 이념을 시민단체의 정체성에 끼워 맞추려 한다.
셋째, 국가보다 민족을 우선시해 대한민국 헌법체계를 민족이념보다 하위(下位)에 두는 ‘민족지향형’ 판사. 넷째, 자본주의 사회를 약육강식의 비인간적 정글로 보고 정의의 기준을 약자와 소외계층에 두는 ‘소외지향형’ 판사. ‘역사는 진화(進化)한다’는 일종의 ‘진보사관’과 ‘민중사관’을 지닌 판사를 말한다.
이 변호사는 그러나 “이들 4가지 유형은 대체로 한데 어우러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소외지향형’은 사회체제의 전복을 꿈꾸지 않는 한 건전한 ‘가치지향형’ 판사로 성숙, 승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분쟁은 사회적 질병, 판사는 질병 치료사
법무법인 화우의 박영립(朴永立) 대표변호사는 눈물겨운 경험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 진학을 미룬 채 여관 조수·버스승객 계수원·양복점 기술자로 전전했다. 20세가 되어 뒤늦게 검정고시에 도전, 대학에 진학하고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변호사가 되어서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을 맡아 구금시설 실태를 조사해 구치소, 유치장의 시설개선을 이끌었고,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 대한 소송을 맡기도 했다. 그의 눈에 비친 판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분쟁(紛爭)도 일종의 사회적 질병입니다. 질병을 치료한다는 사명감이 없어 문제가 발생해요. 판사도 감정을 지닌 평범한 인간이죠. 우리와 똑같이 부족하고 평범합니다. 판사를 바라보는 도덕적 기준이 높고 고결해야 한다는 기대심리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일반인은 실망합니다. 그래서 문제해결이 어렵게 됩니다.
헌법에 명시된 신분은 보장하되 문제가 생기면 퇴출해야 합니다. 직무교육과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통제시스템 강도를 높여야 해요. 판사도 불완전한 존재고, 재판 제도 역시 불완전한 제도가 아닙니까. 그것이 법조윤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온정주의적 사표만으로 판사의 비행을 면제시켜버리면 통제가 어렵습니다. 엄격하게 책임을 묻게 되면 전관예우도 점차 사라질 겁니다.”
판사들은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린다고 한다. 할당된 사건을 빨리 처리해야 하니 ‘판결문 제조기’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작성된 판결문도 일반인에게 암호와 같은 법률용어로 가득 차 있다.
박 변호사는 “한국 법원의 문제는 분쟁이 너무 많다는 것과 함께 빨리 처리할 사건은 종결하지 않고, 천천히 해도 될 사건은 빨리 처리하려는 조급함이 문제”라고 했다.
“어차피 재판이란 판사가 아무리 잘해도 절반의 사람에게 원성을 살 가능성이 크지 않나요? 오래된 병을 치유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단칼에 수술하다 보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어요. 분쟁도 사회적 질병이기에 회복시간이 필요해요. 판사는 당사자가 분노할 때 경청해주고, 당사자끼리 시간을 갖고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또 판단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이게 뭐가 고압적인 말투냐’고 하겠지만, 사건 당사자는 평범한 말 한마디에 절망합니다. 판사는 더 신중하게 용어 선택을 해야 해요. 끊임없이 직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언행에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책임한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어요.
한국 법원이 모든 사건과 분쟁을 법정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해결방식은 미흡합니다. 분쟁해결 방식도 조정이나 화해, 사적 영역에서 해결하게끔 명백한 법률적 기준을 마련할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양쪽 당사자가 먼저 충분히 숙고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야 사법 불신이 사라집니다.”
댓글목록
멸공공수님의 댓글
멸공공수 작성일박원순친구 엄상익이 이야기 해서 신빙성이 떨어짐,,
일석님의 댓글
일석 작성일
일제의 잔재인 사법고시 제도를 페기해야 한다고 본다. 사법고시 하나만 패스하면 그것으로 일생을 벌어 먹고 사는데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은 없다. 가령 공학이나 이학 혹은 문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일생을 벌어먹고 살기는 불가능하다. 특히 첨단 공학분야에서는 그렇다. 계속 공부하고 연구해서 실력을 유지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런데 사법고시 합격자는 그것만으로 떵떵거리며 살아왔다. 그러니 교만해지고 특권의식만 높아지고 세상 물정도 모르게 된다. 계속 공부를 안해도 전관예우로 일생 먹을 것을 2,3년만에 벌어들인다. 그래서 법관, 변호사들 중에 의외로 무식한 녀석들이 많다.
이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인성이 권력지향적인 사람들이다. 법대에 지망할 때부터 사회정의를 펴는데 자신의 인생을 걸겠다는 사명의식에서 출발한 사람은극소수이고 촐세지향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사람들은 고시 패스 하자마자 자신듫을 "영감"이라고 부르며 특권의식을 고취시킨다. 법관이나 검사들의 직급을 낮추어야 한다. 이들의 직급은 하는 일의 중차대성에 비해 너무 높다.
碧波郞님의 댓글
碧波郞 작성일사법시험 제도는 오는 2017년을 끝으로 없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