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누가 죽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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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팝나무 작성일13-07-28 11:51 조회3,109회 댓글1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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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의문사
–마산 3.15의거와 김주열군의 죽음
당일 행방불명 되어 4월 11일에야
눈에 최루탄이 박혀서 바다에
떠오른
마산상고 입학 예정인 김주열군의
죽음은
당시 또래의 학생들에게도
이상했다
다른 방법 다 두고서 자유당
경찰이
스스로 살해자의 누명을
뒤집어쓰려고
멀리 남원에서 유학 올려는
학생의 눈에다
하필 최루탄을 박아둔 채로
수장했단 말인가!
사실이 그러하다면
반세기가 되도록 관계기관의
수사에서
그처럼 어설픈 경찰의 살해
단서나
관련 경관들로부터 정보누설이라도
있었던가?
한편, 그동안 검거된 간첩과 좌익들은
3.15부정선거 규탄 마산의거
역시
남한의 적화를 위한 내란의
도화선으로
자기들이 조종했다고 자랑하곤
했는데…
*김주열 열사는 1944.10.7일
남원 금지면에서 3남2녀의 차남으로 태어나
1959년 7월 남원농업고 1학년을
중퇴하고 이듬해 1960년 봄에 국비 특수
학교인 교통고등학교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마산상고에 응시해서
합격함.
당시 그는 합격의 확인과 입학준비를 위해 마산의 이모할머니 댁에 머물고
있었는데(입학식은 4월 초), 3.15의거
당일 행방불명되어 27일만인 4월 11
일에야 마산중앙부두 인근 바다에서 눈에 최류탄이 박힌 시신으로 발견됨.
댓글목록
비탈로즈님의 댓글
비탈로즈 작성일시체팔이에는 이렇듯 확보된 인명들에 가증스러운 위해를 가한 것에 이어 더욱더 적화에 적절히 이용할 수 있도록 가공 및 선전선동 해주는 유언비어들과 좌빨 언론들 그리고 좌빨 기자들의 협조가 필수적으로 추가됩니다. 공히 모략짓입니다.
비탈로즈님의 댓글
비탈로즈 작성일
4.19의 도화선 故 김주열군 뉴스 캡쳐
http://blog.naver.com/wjddmldnjsfl/100126388572
사람들에게 분노 공포심을 주입시키기 위해. 보다 규격이 큰 외제 최루탄을 사용해서 김주열의 눈과 그 주위에 강제적을 박아넣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얼굴과 해골을 극심하게 손상시키면서까지요. 당시 마산에선 큰 시위도 일어나지 않아서 최루탄을 쏠 일도 없었던 것 같고, 쏜다 한들 저렇게 최루탄이 눈에 박힐 일과 확률은 제로지요.
세브란스 병원을 믿으라고요?
http://blog.naver.com/wjddmldnjsfl/100151785347
미선 효순양도 기갑이라 바퀴나 궤도 부근 시계 확보가 곤란하고 좁은 길을 훈련시 통과해야만 미군들의 약점을 월드컵에 혼이 빠져 있는 시기에 가공해 내어 모략한 사건입니다.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그것도 두 명이나 장갑차의 궤도에 깔려 완벽히 깔려죽게 한 것은 보통의 상황이 절대 아닙니다. 빨갱이들은 관련 사진을 여과없이 인터넷에 노출시켰었지요.
평시에도 유치원 차량 등에 키가 작은 어린이들이 피해를 입는데 사각지대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관련 운전자들은 가해자가 되기 쉽지요. 하물며 좁은 길에서 사각은 많고 그런 건을 전혀 대비하지 않는 훈련 중인 미군이라면 100% 당하는 것이지요. 저는 딴데서 이미 생명을 앗은 후 사건 현장에서는 완벽하게 깔리게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시체 상태로 봐서 증거는 절대 안남지요. 설사 모략을 밝혀낸다고 해도 이미 그러기도 전에 선전선동으로 목적을 이뤄내지요. 댓글 세 개로 부정선거로 획책한 후 지금도 서울광장에 쪽수를 불리고 있는 빨갱이들 그 파렴치함에 치가 떨리다 못해 이젠 어이가 없습니다.
성난물방울님의 댓글
성난물방울 작성일얼마 전......신동아에 인터넷에서 경제석학으로 불리던 미네르바의 대담기사가 나왔었습니다.......감옥에 수감되어 있을때......젊은이들이 몇 번씩 찾아 와.....영웅으로 만들어 줄테니 자살하라고 했다는 군요...김지하 시인도 감옥에서 계속 자살 종용하던 좌빨들에게 빡쳐서 돌아섰다고 합니다......노무현도 그 세력들에게 압박받아 자살을 택하지 않았나 의심됩니다......다음 차례는 또 문재인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사람의 목숨도 수단으로 여기는 빨갱이들.......국정원의 국내사찰이 더 강화되어야 할텐데.....국정원을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무력화 시키려는 저 좌빨들로 부터 국정원을 지켜야 하는데.....걱정입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1960.4.19 데모! 이는 빨갱이들의 선동질에 놀아난 혼란임! 경남 바닷가 마산 고교생 '김 주열'군이 눈에 시위 진압용 최류 gas가 장진된 銃榴彈(총류탄)이 눈에 꼽혀져 죽었다는 사진이 보되된 건 유명함! ,,. 군부에 갔다온 분들도 사실은 '총류탄'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음! 왜냐? 이 총류탄은 M-1 소총 銃口끝에 별도로 'M-7 발사기'라는 '총류탄 발사용 부수 기재'가 있어서 대검처럼 고착/분리하게 되었는데, 병과가 '보병'들인 주특기만 후반기 교육을 받는 전북 금마 제27연대에서 받는 까닭에서임! ,,. 특히 '小銃手(소총수) 100' 주특기들!
고로, 같은 '보병'이라도 '소총수 100' 이 아니면 '기관총,로켙트포,무반동총,박격포' 주특기들은 잘 모를 수 있죠. ,,. 또 총류탄을, 'M-7 발사기 부수기재'를 M-1 소총 총구 끝 에 장착하여 총류탄 후미의 구멍에 꼽아 사격하려면 M-1 소총 멜빵 끈을 풀어 늘리고, 몸통을 30도, 45도, 60도로 총신을 조절, 곡사 탄도 비행을 유지토록하는 까닭에 수평 비행은 불가하며, 총류탄이 박격포탄처럼 제법 둔탁하니, 비행 속도가 느려 보일 정도인데, 당시 고교생이므로 '김 주열'은 날쌘 신체이겠거늘, 눈에 정통으로 명중되어졌다? 고? ?? ??? 예라이 썅! 말도 되지 않음! 도대체 경찰들은 뭘 하나? ,,. 전면 재 수사해야만 한다!
더우기 '김 주열' 학생은 전북 남원에서 경남 마산까지 친척집에 유학 와서 눈치밥 먹는 처지겠거늘,,. 고맙읍니다. 이거 분명히 밝혀서 경찰들의 명예를 회복해야하리라! ////
자유당 중기의 유명한 노래 "하늘의 황금 마차(자유당 중기, 1956년, '송 민도'님 노래)"를 원통하게 빨갱이 간첩들에게 유괴되어져 참혹히 쥑임을 당하고도 모자라 정반대로 선전당하는 이 경악할 현실에 더 더욱 통탄할 '김 주열'군의 원혼에게 드립니다!
http://cafe.daum.net/lasea7/WNny/1249?docid=3381609055&q=%BC%DB%B9%CE%B5%B5%20%C7%CF%B4%C3%C0%C7%20%C8%B2%B1%DD%20%B8%B6%C2%F7&re=1
이팝나무님의 댓글
이팝나무 작성일
성난물방울 님
아직도 노무현의 자살을 믿습니까...
성난물방울님의 댓글
성난물방울 작성일
앗...그렇군요.
저 무지막지한 것들에 의한 살인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장준하의 죽음이 박통에 의한 것이라고 계속 주장, 의심 하는 세력들..
천안함 폭침이 좌초에 의한 것이라고 우기는 것들과 같은 사람이 될까봐....
그냥 조용히 공부 해 보겠습니다.....
일께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팝나무님....
이팝나무님의 댓글
이팝나무 작성일
성난물방울님
지나친 겸손이십니다.
그들은 어떤 모욕을 당해도 스스로 뉘우치거나 자살하지 않습니다.
현산님의 댓글
현산 작성일
요 위 inf247661 님 의견이 사실이라면 이건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이 가능하겠습니다.
박근혜정부가 안정되면 이런 일은 차근차근 진상규명을 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만한 사명감 가진 부하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공무원 정치인 출신들이 그만한 사명감과 용기 있는 자가 있을 지가 의문입니다만,..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현산】님! 그리고 한가지 추가합니다만; 보병 분대장 '하사'들도 잘 압니다! 당시 제1야전군 하사관{부사관}학교는 보병 분대장을 아주 정예로 임관시키고, 전북 익산의 제2군하사관{부사관}학교는 보병이 아닌 기타 제병과들을 기초 교육만 시코서 해당 병과부사관학교로 전속시키는 기능을 수행했는데요; 제1야전군부사관학교에서는 소총분대장 및 공용화기분대장.반장{기관총, 로켙트포, 무반동총, 박격포}드에 구애없이 바로 이 '총류탄'을 교육했읍니다.
당시로는 대전차화기가 부족한 시태이므로 이 총류탄은 중요한 교육 과정이므로 '보병분대장'들은 잘 압니다. ,,. 경찰들 가온 데에서도 이를 잘 모르는 까닭은 당시 경찰을 전남 상무대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학을 위탁받아 집체 교육하여 왔었으므로, '폭동 진압용 총류탄 사용법'을 모르는 경찰들이 많았기에 깊게 따질 분위기도 되지 않.못한 이유도 한 몫을 하였다고 봅니다. 이런 집체교육은 아마 197-년대까지 이룽러진 것으로 압니다, 제가 알기론요. ,,. 재총총.
현산님의 댓글
현산 작성일
저는 김주열 눈에 최루탄이 박혔다는 사실만으로도 항시 의문이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치 않은 일이란 생각에서. 그런데 님의 설명을 들어니 당시 최루탄 발사는 오늘날 하고도 또 다르군요. 그렇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근래 5.18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란 확신이 듭니다.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던 김지태 수하의 부산일보가 김주열시신을 대대적으로 보도 선동하는 바람에 진상조사할 겨를도 없이 데모가 격화되었다는 데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을 해야 겠습니다. 분명 간첩의 짓입니다. 혹시 후일을 생각해서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 하나의 진상보고서로 여기 시스템클럽에 올려놓아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