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박사님의 “전두환의 정보 기관들” 을 읽으면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빵구 작성일14-09-20 09:27 조회1,821회 댓글6건관련링크
본문
지만원 박사님께서 오늘 올리신 “전두환이 이끌었던 정보기관들은 깡통
분석관들로 가득” 이란 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감추어 왔던 생각을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가정보기관은 그 나라에서 취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습득하거나 그것도 마땅치 않으면 연행해 조사를 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시절 보안사는 연행해서 조사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잡아다 고문을 해서라도 정보를
획득할 수가 있던 시절입니다.
본 회원이 그 동안 조사를 해 온 결과를 보면, 너무나 이상한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계엄사나 특별수사본부가 아닌 일선 말단 파출소나 경찰서의 업무일지 일부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숨막히는 순간 순간을 적나라하게 기재를 했는데, 그 위급한
순간에 먼 미래를 바라보고 조작을 할 내용들이 아니었습니다.
지만원 박사님이 자택에서 피신했을 때 수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 내로 몰려와서 행패를 부리고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주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했던 시절에, 전라도 사람들이 인터넷에 앞다투어 올렸던 수많은 글들을
모두 모아놓고 봤을 때는 이미 국가 정보 수집 기능은 없었거나, 아예 포기 했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입을 다물거나 3 중에 하나 였습니다.
그런 글 중에 바로 광주 일대 국가기관의 업무일지들에 자세한 당시 상황이 올라왔던 적이 있었고, 가장 대표적인 내용이 바로 이들 연고대생 600명 에 대한 언급이었고, 이들은 공수부대가 철수를 하고 시민군에 의해 광주가 통치되는 모습으로 보여지게 되자 “월남참전구국동지회”란 것을 결성해 인근 아파트를 몇 채를 접수해 기거를
하면서 여자들을 데려다가 밥을 짓게 하고, 심지어 섹스를 하기도 했다가 갑자기 모두 다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광주사람들로서 시위에 참가했다가 소요가 진정되면서 붙들려 가서 취조를 받았을 때 이들 연고대생을 만났었다는
조서도 꽤 되었었는데, 국가정보기관에서 이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모두 통제된 광주에 어떻게 연고대생이 들어가 데모와 시위를 같이 할 수가 있었겠나는 정보기관이 아닌 그 당시
시위에 동원되었던 신문팔이 구두딱이 정도만 되어도 다 아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특히 당시 계엄사령부에서 20만 광주시민들을 흥분시켰던 “리어카 시신” 사건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확신을 합니다.
도청 현장에 있었던 공수부대 지휘관은 상황을 몰라서 꼼짝 못하고 그 시신을 물증으로 디미는 공산군들에게 그냥
아무 소리를 못했다는 진술로 미루어 봤을 때, 현장에서는 몰랐어도 지휘부는 정보기능을 갖고 있었고, 감청 등을 통해서 다 파악을 했다고 보는데, 이런 것이 의문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100번 양보를 해서, 그
당시는 몰랐다고 해도, 전두환 노태우 12년 집권 동안 몰랐을
리가 없는 것이, 518 수습 이후 대학가에는 조작된 비디오로 수많은 대학생들을 의식화 했고 해마다 518이 되면 소요를 시도했는데 정보기관에서 이런 중대한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의식화를 당한 사람들이 바로 지금 반국가 행동을 하고 있는 486,386
세대의 주축들인데 말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이런 중요한 사실을 눈감고 지나 갔다면, 자신들의
정권 쟁취와 호의호식만을 위해서 진실을 가리고 있다거나 무능 했다거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 회원은 다른 것은 몰라도 오직 “518 연고대생 600명”에 대한 조사만 했기에 국가정보기관의 기능이 이 부분에 대하여
눈감고 있다고 확신을 했기에 글 올리는 것을 중단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바라 본다면, 518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섰다면, 현재 좌익이 발붙일 수가 없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보 되었다는 확신을 합니다.
이것이 안되어서 지금 사법,입법,군,경찰,정보,언론 등 도처에
좌익이 준동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지 만원 박사님의 연구가 가치가 있고, 518 재조명을
꼭 해야 하는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연고대생 600명”이 모두 귀환을 했다고 주장을 하고 계시지만, 전부 다는 아니고 상당수는 전라도 일대에서 암약하던 고정간첩들에 의하여 지금도 그대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지는데, 518 수습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518에 대한 추가적
작전 즉, 518 정신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이어지는 사회혼란이 동일한 숫법으로 반복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가고 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전라도 진도 앞 바다에 수많은 섬에는 지금도 숨겨져 있는 노예들이 수없이 많은데, 고첩들과 같이 있으면서 고첩이 된 연고대생 600명 일부 세력들은
결정적 시기에 결정적 지역에서 결정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확신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대남혁명 전략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증거들에 의하면, 연고대생
600명은 바로 그곳에서 광주로 왔다고 했기에 그들이 돌아 간곳 도 바로 그곳이고 그곳에서 북으로 귀환했다고 보는 것 입니다.
남아있는 이 세력이 발본 색원 될 때까지 518 광주사태는 끝나지
않은 것 입니다. 확신 합니다.
댓글목록
홍팍퇴치님의 댓글
홍팍퇴치 작성일
“12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전남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는 38개 무기고가 털려 2개 연대를 무장시킬 수 있는 5,208정의 총과 다이너마이트 수류탄 등이 피탈됐다”
요 상황을 보고서 총기를 들고 일어난 폭동이라고 씨부려주시는 엔두 전두환 장군님은 저능아란 말임?
엔두 전두환 장군님과 김정일 장군님께서 노나먹기 자작극 냄새가 나는디?
감독-김정일 주연-전두환 조연-다이쥬 제작지원-노태우 씨벌쉐리들 합작품 냄새가 진동하는구마 ㅋ
碧波郞님의 댓글
碧波郞 작성일
일·베체 표현은 가급적 삼가해 주십쇼.
정확하게! 전두환 장군! 이렇게 표현해 주십쇼.
신생님의 댓글
신생 작성일
공수부대원들의 수기도 있구요
계엄군이 체포했을 폭도들의 소지품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 소지품에 신분증까지 있었다 하는데
그 신분증을 면밀히 조사했다면
외지인들에 관한 내용을 몰랐을리 없었게지요.
진압에 참여했던 계엄군 대다수가 수기를 썼다고 했는데
공수부대원분들의 증언이 줄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초보자님의 댓글
초보자 작성일
동감입니다.
제대로된 증언들이 쏟아져나와야할 겁니다.
초보자님의 댓글
초보자 작성일
전남대의 자유노트문건이 확보되었고,
이를 작성한 인물이 흩어지거나 체포까지되었는데도
그 내용과 비슷하게 사건이 진행되었죠.
무기, TNT등,
윤한봉도 도피한 상태고.
기획을 한 사람과 이를 실행한 사람들간의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이 연결고리를 찾는 조사가 과연 이루어졌었느냐.
도사님의 댓글
도사 작성일
20사단이 공격받기전에 전교사 무기고가 피탈된 사건이 밝혀져야 합니다.
전교사 무기고피탈사건이 기록에 있는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