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닷컴, 이제는 유병현 장군까지 들먹이며 구차한 반론을 제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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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석 작성일13-06-21 19:53 조회4,4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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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전에는 조성호 기자가 주군을 위해 쓰레기 같은 글을 쓰더니 이제는 조갑제 닷컴의 다른 기자 이지영이가 나섰다. 조성호 기자는 그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 자신의 글을 슬그머니 내렸는데 이번에는 이지영 기자가 주군을 위해서 자신 한몸을 희생할 차례가 된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유병현 장군까지 끌어드리기 까지 했지만 논리는 여전히 빈약함을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본래 억지를 쓰게 되면 논리를 세우기가 어렵다.
이지영의 주장인 즉 유병현 장군이 당시 “철통같은 방어를 하고 있어 600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이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탈북자들의 주장은 거짓말이다”고 주장했다고 하면서 5.18의 북괴 개입설을 부정하고 있다. 그의 주군 조갑제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들을 때 마다 탈북 귀순 병사의 노크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그 지역의 군사령관은 “철통 같은 방어”를 하지 않고 “밥통 같은 방어를 했었나? 그래서 이 밥통을 본 북괴의 일반 병사가 탈북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병영 내부반의 문을 두드릴 때 까지 아무도 몰랐었다는 사실을 철통같은 방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에 하나 북괴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광주 침투에 성공하였다면 유병현 장군도 당연히 몰랐을 것 아닌가? 이것을 “그 가능성이 작다”고 말한다면 몰라도 불가능하다고 단정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는것 아닐까? 더구나 정황적인 증거가 너무 많지 않은가? 합참의장 혹은 참모총장이라 하더라도 밑 사람들이 보고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또한 당시 5.18당시 나주에 있었던 나주 사람 김동문 기자는 당시 광주 일원, 내지는 전라도 지역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당시 전라도의 해안선은 물론 지역 전체가 “폭동”으로 총체적 치안부재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갑제 기자도 별 어려움없이 광주에 ‘잠입’하여 취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5월 18일 아침 김동문 기자가 들었던 첫 소식은 “광주에서 폭동이 났다”는 것이었다. 전라도 사람들 자신들 조차도 처음에는 이를 폭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폭동’이 언제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했는지 알고 있다.
5.18에 있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5.18에 대한 성격규명일 것이다. 이 문제는 조갑제 기자나 지만원 박사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가 들에게 위임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해야 한다. 많은 “사실”, 영어로 말하면 “팩트”들이 5.18의 폭동적 양상을 증거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참작한다면 “북괴 개입 설’은 오히려 5.18 세력들에게 면제부를 주는 셈이다. 그들을 “폭동 주체”가 아닌 “북괴의 농간에 속아 넘어간 희생자”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조갑제 기자는 역사가가 아니다. 조갑제 기자는 임의적으로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단정적인 주장을 접어야 한다. 조갑제 기자에게는 그런 능력이나 권리가 없다. 다만 “나의 의견으로는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본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필자의 의견을 말한다면, 필자는 “5.18은 폭동”이라고 본다. 그 근거는 5.18은 폭동의 모든 요소와 양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를 들었고, “시민군”이 총을 쏘았고, 교도소, 무기고, 방송국등을 습격하고 방화 했으며, 시청에 폭팔물을 장치하였고…
거위처럼 꿱꿱거리고, 거위처럼 뒤뚱거리며 걸으니 거위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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