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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김영삼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장 現국가정보원원장(1993년2월-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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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야113 작성일13-06-03 00:42 조회2,623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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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전기획부장/現국가정보원장


문민 정부
22대 김덕(金悳) 1993년 2월 26일 ~ 1994년 12월 23일
경북 구미 서울대 통일부총리&제15대 국회의원
23대 권영해(權寧海) 1994년 12월 24일 ~ 1998년 3월 4일
경북 경주 육군사관 국방부 차관&국방부 장관&한국야구위원회 총재

국민의 정부
24대 이종찬(李鍾贊) 1998년 3월 4일 ~ 1999년 1월 22일

중국 상하이 육군사관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정무 제1장관&제11·12·13·14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사무총장
25대 이종찬(李鍾贊) 1999년 1월 22일 ~ 1999년 5월 25일
26대 천용택(千容宅) 1999년 5월 26일 ~ 1999년 12월 23일
전남 완도 육군사관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국방부 장관&제15·16대 국회의원
27대 임동원(林東源) 1999년 12월 24일 ~ 2001년 3월 26일
평북 위원 육군사관&서울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통일부 차관&통일부 장관&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주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28대 신건(辛建) 2001년 3월 27일~ 2003년 4월 24일
전북 전주 서울대 대검찰청 부장검사&서울지방검찰청 차장검사&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국가정보원 제2차장&법무부 차관&제18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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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정부 29대 고영구(高泳耉) 2003년 4월 25일 ~ 2005년 7월 11일 강원 정선 건국대 제11대 국회의원&한국인권단체협의회 대표
30대 김승규(金昇圭) 2005년 7월 11일 ~ 2006년 11월 23일 전남 광양 서울대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대검찰청 차장검사&법무부 차관&법무부 장관
31대 김만복(金萬福) 2006년 11월 23일 ~ 2008년 2월 29일 경남 부산
(현 경남과 분리)
서울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국가정보원 제1차장
이명박 정부 32대 김성호(金成浩) 2008년 3월 26일 ~ 2009년 2월 12일 경남 남해 고려대 춘천·청주·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법무부 장관
33대 원세훈(元世勳) 2009년 2월 12일 ~ 2013년 3월 21일 경북 영주 서울대 서울특별시청 행정제1부시장&행정안전부 장관
박근혜 정부 34대 남재준(南在俊) 2013년 3월 22일 ~ 서울 육군사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군참모총장


댓글목록

전야113님의 댓글

전야113 작성일

5.18 진실 파묻기로
 암거래한 국정원과 조갑제!!
 
2013년 4월 22일, 채널A에 전 월간조선 기자 김용삼이 출연하여 황장엽과 김덕홍이 확인해준 기막힌 내용을 전했다. 황장엽과 김덕홍의 폭로는 5.18의 실체를 알고 있는 국민들에는 5.18에 대한 확인사살의 총소리로 들렸지만, 5.18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국민들에는 그야말로 하늘이 두 쪽 나는 듯한 폭뢰의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김용삼은 월간조선 인터뷰에 응했고, 그 인터뷰 기사는 지난 5월호에 실렸다. 이 두 개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다. 아래 증언내용은 하나하나가 음미를 요할 만큼 중요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월간조선의 전 기자 김용삼의 핵폭탄 증언 

1. 나(김용삼 기자)는 1996년 모 회장과 함께 황장엽과 김덕홍을 공작차원에서 접근하다 실력이 모자라 국정원에 넘겼다. 

2. 1998년 6월 나는 당시 월간조선 7월호 게재를 위해 황장엽과 김덕홍을 인터뷰 했고, 그들은 안기부 보호-감시 하에 있어서 인터뷰 장소 장막 뒤에서 인터뷰 대화내용을 다 듣고 있었다. 

3. 이 때 나는 황장엽이 1996년 11월, 김덕홍을 통해 수첩에 부랴부랴 급하게 써보낸 작은 쪽지 메모 내용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참으로 귀중하고도 막중한 메모였다. 광주사태는 북한이 저질러놓고 남한정부에 뒤집어씌운 일대 대남공작사건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직원들이 장막 뒤에서 감시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김덕홍은 작심하고 털어놨다. 당시 광주사건 공작을 주도한 대남부서 고위간부 즉 상류계급에 속했던 김덕홍의 친구들이었던 대남공작 고위간부들이 사건종료 직후 무더기로 훈장 받고 술 파티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4. 인터뷰가 끝난 후 국정원은 “광주 부분은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니 기사화되면 정말 큰일 난다”하면서 강력하게 보도자제 협조요청을 해오는 바람에 기사작성 과정에서 빠졌다.
 
          국정원과 조갑제는 북한개입설 차단해야 하는 입장에서 한 배를 탔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제의 이 기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땅 속에 묻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당시 월간조선의 편집장(데스크)은 조갑제였고, 김용삼 기자는 조갑제의 허락 없이는 기사를 올리지 못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는 언론을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상식이다. 

김용삼 기자는 북한군 개입에 대한 황장엽-김덕홍의 기막힌 특종기사를 내보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면 김용삼은 일약 초특급 특종의 영웅이 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그 기사를 싣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기사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언론의 지휘계통상 당연히 김용삼 기자는 그 기사를 조갑제 편집장(데스크)에 제출했을 것이다. 

이런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다면 그 기사는 편집장인 조갑제와 국정원 사이의 합의에 의해 소멸된 것이다. 조갑제는 막중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빨갱이 김대중의 국정원과 암거래를 한 것이 된다. 이는 안보와 역사에 대한 반역행위로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사안이다.

                  여기까지를 보면 우리는 세 가지 결론을 유추하게 된다. 

1. 조갑제와 국정원은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을 다 같이 알고 있었다.

2. 김용삼의 증언에 의하면, 기사의 삭제는 조갑제와 국정원 사이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조갑제는 막중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언을 놓고 빨갱이 정권과 암거래를 한 장본인이 아닐 수 없다.

3. 이로써 조갑제와 국정원은 끝까지 북한의 개입설을 저지해야 할 입장에 있으며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한 배를 타고 있다.

4. 조갑제는 이에 대해 답해야 할 것이며 모든 국민은 조갑제에 해명을 강요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조갑제는 논리와 사실과 상식의 한계를 넘나들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북한개입설을 마구잡이식으로 차단하려 몸부림을 쳤다. 이 자체가 매우 수상하게 여겨졌으며 이를 구경하는 국민들은 조갑제를 위장한 사람이라고 추측하는 글들을 내기에 이르렀다. 역시 상식인들의 추축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사실로 드러난 것 같다. 

김대중 정부의 붉은 국정원과 암거래한 조갑제, 이제는 커밍아웃하여 죄를 빌어야 할 줄로 믿는다. 더 이상 숨을 곳 없다. 
 
2013.6.2. 지만원


조갑제의 답변:

아래

용서할 수 없는 지만원氏의 게으름내가 월간조선 편집장이던 시절 국정원과 암거래, 광주사태 관련 기사를 묵살하였다고 연일 비방하는데 나는 그때 편집장이 아니었다!趙甲濟   

나나 김용삼 씨한테
전화 한 통만 걸면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문제의 기사가 실린 1998년 7월호 월간조선을 도서관에서 구하여
맨 뒤페이지 조직표를 읽어보면 알 수 있었다.
남을 비판하려면 명예훼손이 되지 않도록 면밀히 사실을 확인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사실확인은 게을리하고 비방은 단정적으로, 감정적으로, 자극적으로 했다.

 나는 1991년 3월호부터
月刊朝鮮(월간조선·조선일보 출판국 소속) 편집장으로 근무하다가
1996년 9월호를 만든 뒤, 미국 하버드 대학의 니만 펠로우 과정 硏修(연수)를 위하여 渡美(도미)하였다. 하버드에서 10개월간 공부한 뒤
1997년 여름에 귀국, 조선일보 출판국 편집위원으로 일하다가,
1998년 8월호부터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복귀하였다.

최근 지만원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시스템 클럽’에
연일 나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는데, 그 핵심적 내용이 虛僞(허위)에 근거한 악의적 단정이다.
전화 한 통이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멋대로 단정(조작)해놓고, 내가 부하 기자가 써온 광주사태 관련 황장엽 증언을 국정원과 짜고 묵살하였으리라는 추리를 하더니 갑자기 단정적으로 변하여 이런 선동적 주장을 한다.

여안님의 댓글

여안 작성일

황장엽과김덕홍의 증언? 김덕홍만의 증언이겠죠.
최근글 5.18-김무성-조갑제에얽힌 수수께기도 읽었지만 황장엽이걸려 몇자적습니다.

황장엽은 거물입니다.
그에게 속아주자면,배신자의낙인 동지 일가친척 처자식의 몰살을 감수하며 고귀한 신념(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모름)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조국 북한을등진 자입니다.그런 위대하신분이 5년마다 바뀌는 망명국 대통령 이해관계에 그고귀한 신념을 버리고 위협에 비굴하며 남은생을 침묵으로일관합니까?무엇을위해?목숨을위해?목숨이 아까워 뜻을굽힐량이면  북에서 자존심쬐끔숙이고 호의호식하며 살지 처자권속 몰살시키려(이것도위장http://engjjang.egloos.com/m/10592889)남한에
넘어 와서 한가롭게 생을마감합니까?
황장엽은 김대중당선을 위한 특명을받고 위장망명한 김정일의 마지막카드였읍니다.
황장엽은 조국과수령과인민을위해 노구의몸으로 화약통을안고 적지에 뛰어든 북조선의 영웅입니다.
그는 5.18북조선 영웅들과 함께 대한민국 국립묘지에 묻혀있읍니다.

전야113님의 댓글

전야113 작성일

조갑제 반론에 답한다 

저는 최근 몇 차례에 걸쳐 1998년 6월에 조갑제가 월간조선의 편집장이었다는 글을 게시하였다. 그리고 황장엽과 김덕홍이 ‘광주에의 북한개입’ 사실을 증언한 김용삼의 기사를 국정원과 함께 땅에 묻은 사람들이 국정원과 조갑제라는 추론을 내린 바 있다. 

조갑제는 이런 글들을 읽고 2013.6.3.에 “용서할 수 없는 지만원氏의 게으름”이라는 제하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1991년 3월호부터 月刊朝鮮(월간조선·조선일보 출판국 소속) 편집장으로 근무하다가 1996년 9월호를 만든 뒤, 미국 하버드 대학의 니만 펠로우 과정 硏修(연수)를 위하여 渡美(도미)하였다. 하버드에서 10개월간 공부한 뒤 1997년 여름에 귀국, 조선일보 출판국 편집위원으로 일하다가, 1998년 8월호부터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복귀하였다.” 

1998년 6월에는 월간조선 편집장이 ‘서희걸’이라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조갑제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그리고 귀국하여 조선일보에서 근무하던 약 2년 동안 조갑제의 빈자리를 서희걸이라는 사람이 임시로 메워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1998년 7월호를 발간할 당시의 편집장이 조갑제라 하였는데 조갑제 해명에 의하면 그 다음 달인 8월호부터 조갑제가 편집장을 했다고 해명한다. 아슬아슬한 차이다. 이런 해명을 근거로 하여 조갑제는 필자가 확인도 해보지 않고 명예훼손적인 글을 썼다고 주장한다. 

만일 조갑제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국정원과 역사적 사실을 묻어버리기로 약속한 사람은 서희걸이거나 김용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조갑제에 대해 사과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필자는 언제나 필자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버티지않고 즉시 사과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필자에게는 할 말이 있다. 조갑제는 필자를 공격하기 이전에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갑제닷컴의 최상단에는 “기자 조갑제”라는 자작 이력서가 있다. 

1971년 부산 국제신보 수습기자
1981년 월간 마당 편집장-취재부장
1983년 朝鮮日報 月刊朝鮮 기자
1991년~2000년 12월 31일 月刊朝鮮 편집장(출판국)
2001년 1월 3일 月刊朝鮮의 독립법인化에 따라 편집장 겸 대표이사
2005년 4월1일 조갑제닷컴 대표


위 붉은 글씨의 이력서는 조갑제가 스스로 작성한 것이다, 자기가 작성해 놓은 이력서를 이제 와서 부정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리고 중요한 의혹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1. 월간조선은 15년동안 조갑제가 명목상 그리고 사실상 월간조선을 지배했다. 

조갑제는 월간조선을 1991년부터 10년 동안 편집장으로 다스려왔고, 그 후 5년 동안 월간조선의 사장을 했다. 조선일보가 김대중으로부터 탄압을 받던 시기에, 누군가가 유독 월간조선을 조선일보와 분리시켜 조갑제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엄청난 특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간조선은 조갑제의 왕국이었다. 조갑제는 1997년 여름에 하버드에서 돌아와 그의 자리를 임시로 지켜주었던 대타 ‘서희걸’이 2년의 임기를 채우는 동안 임시로 “조선일보 출판국 편집위원”이라는 자리에서 대타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중요한 것은 당시 조갑제는 월간조선의 주인이었고, 국정원이 역사사실을 은닉시키는 그 시점에 조선일보사에서 임시 자리를 하나 맡아 서희걸이 임기를 채우고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당시 서희걸은 바지였고 조갑제가 사실상의 주도권을 행사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조갑제는 그 자신이 자기가 줄곧 10년 동안 월간조선의 편집장이었다고 당당하게 자랑해온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서희걸이라는 조갑제의 빈 공간을 임시 메우기 위해 등용됐던 존재는 그냥 바지였던 것이다. 

조갑제닷컴의 회원 ‘쇼닉봉’ 역시 아래 글의 말미에, 행정적 서류상으로는 서희걸이 편집장이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조갑제의 영향력이 있을 수 있었다“는 의견을 냈다. 

http://www.chogabje.com/toron/toron22/view.asp?id=111729&cpage=1&no=97507


2. 조갑제가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조갑제는 최근 “이명박 시대의 국정원 고위간부가 북한군의 광주개입은 허위라 말해주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며칠 전 李明博 정부의 국가정보원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하였던 한 인사는 “북한군이 광주사태에 개입하였다는 주장을 검증한 적이 있는데, 북한군이 온 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우리는 김용삼 기자의 증언을 믿고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을 믿는다. 그리고 12년 동안의 문헌들을 통한 연구를 한 결과 황장엽-김덕홍의 증언과 일치하는 결론을 냈다. 미국의 김대령 박사도 그의 다큐멘터리 역사책 4권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이명박 시대의 국정원 인사는 무슨 근거로 이와 같은 주장을 했는지 우리는 조갑제를 통해 그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갑제는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 1980년 5월 23일 광주에 들어갔을 때 북한군처럼 생긴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하여 북한군 개입설을, 비유적으로 표현 하지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부정하며, 광주 패들과 빨갱이 패들은 조갑제를 앞에 내세워 5.18을 변호한다. 5월 23일은 사실상 북한특수군의 임무가 끝나고 산으로 피신하여 북의 철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날이었다. 그날 조갑제가 본 것은 그냥 껍데기였지 본질이 아니었다. 

역사에 관한 엄중한 사실에 대한 것이니 만큼 조갑제는 국정원의 그 인사가 누구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2013.6.3. 지만원

전야113님의 댓글

전야113 댓글의 댓글 작성일

조갑제기자에
대한 글 바로 잡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지금 5.18이 민주화인가, 5,18에 북한이 개입했는가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저와 조기자는 판단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두 사람이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논리선상에서만 겨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역사규명”이라는 본래의 핵심을 벗어난 일로 다투는 것은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사 은닉” 문제 역시 사실발견이 먼저이고, 누가 했느냐에 대한 규명은 후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기자 자작의 공식 이력서 부분 “1991~2000년 12월31일 月刊朝鮮 편집장(출판국)”만 살펴보고 당시의 편집장이 조기자였다고 판단했지만, 조기자가 이것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구체적으로 해명하였기에 그 해명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고자 합니다. 

조기자가 지적한 대로 저는 며칠 전 어느 지인에게 김용삼 전 월간조선 기자의 전화번호를 알아 달라 부탁했지만 오늘에야 구하게 되어 전화를 통했습니다. 전화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저는 1998년 6월 월간조선 7월호에 싣기 위해 황장엽-김덕홍을 인터뷰 했고, 기사를 작성하여 당시 편집장인 서희건씨에게 제출했습니다. 그 후의 발간된 기사를 보니 ‘광주에의 북한 개입’ 기사 부분만 삭제돼 있었습니다. 기사에 대한 편집은 윗선인 편집장이 알아서 하는 것이기에 저는 평 기자로 그 부분의 기사가 삭제된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2. “서희건씨는 2002년 초에 지병으로 사망했습니다.”(당시 58세) 

이에 더해 조기자는 1998년 7월호까지는 서희건씨가 맡아서 편집했고, 자기는 그 다음 호인 8월호부터 편집을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렇게 해명한 이상 일단 제가 쓴 글들의 내용 중 조기자가 해명한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 잡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점 바로 잡아 주시고, 번거로우시더라도 다른 사이트에 옮기신 글에 대해서도 손질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장엽과 조갑제의 관계에 관해서도 저는 조기자가 황장엽이 저술한 책들 중에서 조기자가 앞머리 글을 쓰면서 황장엽씨를 선생으로 부르기로 했다며 극찬을 하는 내용의 글들을 읽었고, 황장엽씨에 대한 글들을 많이 썼으며, 두 사람은 매우 가까이 지낸 것으로 회자돼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제가 조기자가 황장엽씨를 관리하고 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읽는 사람들에 따라 ‘부적절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분 역시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조갑제 기자가 다시 편집장으로 들어오기 ‘한 달 전’의 ‘서희건’씨는 바지일 것이고 사실상 조갑제가 편집권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취지의 제 표현은 제 판단일 뿐입니다. 조기자가 이 판단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 해명하니 이 부분도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해명이 된 이상 해명한 부분은 바로 잡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제가 쓴 게시물은 오늘 밤 내로 바로 잡을 것입니다. 지금은 재판에 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역사규명’이라는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 페어플레이에 임해주기를 조기자에 정중히 제안합니다. 

2013.6.4. 지만원

전야113님의 댓글

전야113 작성일

“북한개입역사” 은닉한
국정원과 월간조선 기자들 청문회 서야 


1996년 11월 10일, 김용삼 기자는 중국에서 황장엽과 김덕홍을 만나기로 했지만 황장엽이 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김덕홍만 만났다. 황장엽은 급하게 수첩을 찢어 딱 한 가지 메모를 써서 김덕홍에 주면서 이 메모를 김용삼 기자에게 주라 했다.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었으면 다시는 못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급하게 수첩을 찢어 메모를 썼을까? 

그 메모지에는 “광주학생문제도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의 공명주의자들이 책임전가한 일이다”라는 표현이 있었고, 아마도 이 메모지는 지금도 김용삼 기자가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황정엽과 김덕홍은 1997년 2월 12일 귀순했다. 그리고 귀순 16개월만인 1998년 6월, 김용삼은 그의 공작 스토리를 월간조선 7월호에 싣기 위해 황장엽과 김덕홍을 만나자 했다. 만나는 목적은 오직 하나 “광주학생문제”가 5.18을 의미하는 것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김덕홍의 폭탄발언이 나왔다. 

“여기 남한에 와서 꼭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 되겠다. 조선노동당 대남 부서가 있는데 그 부서에 소속되어 있던 상당수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후에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 내 친구들이 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광주민주화운동 후에 훈장을 탔다고 축하 술을 마시면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광주학생문제’라는 말은 5.18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심 권력부에 있던 두 사람은 “5.18은 북한이 저질렀고, 그 결과 광주개입을 주동한 고위간부들이 무더기로 훈장을 받아 주모자들이 모두 훈장을 받아 축하연을 벌였다”는 기막힌 역사적 진실을 김용삼 기자에 털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황장엽이 마치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남겨야 한다는 유언자의 심정으로 수첩을 찢어 광주의 진실을 전했을까?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그리고 귀하게 확보한 ‘역사적 진실’을 역적 김대중이 임명한 이종찬과 월간조선 기자들이 공모공동하여 땅에 묻기로 합의했다.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를 한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1998년 6월이었다. 그들이 묻기로 하면 영원히 묻힐 줄 알았겠지만 이는 이번 월간조선 5월호를 통해 김용삼 기자의 작심한 폭로로 사회일각에 알려지게 되었다. 

김용삼 기자는 이번 월간조선 5월호에서 “광주 부분은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니 기사화 되면 정말 큰일 난다면서 국정원이 강력하게 보도자제 협조요청을 해오는 바람에 기사작정 과정에서 빠졌다“고 증언했다. 이 기사가 나갔더라면 당시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김영삼과 김대중이 날아가고 전두환이 동정을 받았을 것이며 노무현도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확실한 사실로 드러난 것은 국정원의 은닉음모다. 당시의 국정원장은 이종찬이었다. 이종찬은 김대중의 심복이다. 그 다음의 범인은 누구인가? 사실상 황장엽과 월간조선을 다 관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조갑제인가? 아니면 조갑제가 1996년 9월부터 1997년 여름까지 미국 하버드대에 연수(?)를 간 동안에 대타(사실상의 바지)로 들어앉았던 서희건인가? 아니면 김용삼 기자인가? 

누가 진범이었는지를 우리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 김용삼 기자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기사에 대한 애착을 느끼며 지난 16년 동안 참았다가 5.18 진실 규명 운동이 한창일 때 비로소 이를 세상에 알렸다. 서희건이라는 사람은 족적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 무명인(N0body)이다. 

반면, 조갑제는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인사가 귀띔 해주었다는 공신력 없는 말을 내세워 가며,  북괴를 극렬히 비호하고 ‘역사의 진실“을 파묻으려 수상한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좌익들의 공격진용에 가담하여 전위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2013.6.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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