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츠페터의 세계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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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생 작성일13-05-31 02:46 조회3,6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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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의도대로 흘러간 세계여론
1980년 북한이 대남적화를 위해 필요했던건 미군 철수였습니다.
만약 5.18폭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우리 계엄군의 한계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미군이 철수를 하지 않으면 북괴군은 남침을 쉽게 할수 없었을겁니다.
따라서 미군이 철수할 명분을 줘야 하는데
그역할을 힌츠페터한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가 자처했을지도 모릅니다.
월맹은 베트남을 적화통일하기 위하여 월남의 우방국들 그중에서도 미군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언론을 통하여 반전여론을 형성시키는데 성공하였고 그 주인공은
미군 폭격에 화상을 입고 울부짖는 소녀였습니다.
북괴는 1980년 대한민국에 혼란을 부추기고 베트남적화통일의 교훈을 실천하기 위하여
월맹소녀역은 광주시민을 네이팜탄역은 계엄군으로 설정하고 대한민국 군인의 잔인성을
주제로 전세계와 미국 국민들에 생생한 영상으로 보여주어 미군은 자국민을 살육하는
독재국가로부터 철수하라는 여론을 형성 하고자 외신기자들이 필요했을겁니다.
북특수공작원 600명이 광주에 침투하여
군차량을 탈취하고 44개 무기고를 탈취하는것보다
힌츠페터의 역할이 몇백배는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힌츠페터는 단 2일동안 전세계가 경악할 영상물을 챙겨 광주를 21일 떠나야 했던겁니다.
광주시민들 처럼 장발을 하고 청바지를 입어야 했던 북특수공작원 이라면
미군철수를 위해 언론플레이를 해야할 핵심주역들은 외국인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언제 어디서든 의심도 덜받고 촬영과 영상자료 전송을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KBS 가 방영한 푸른눈의 목격자에 나오는 외신기자들의 멘트는
북괴공작이 성공했다는걸 의미합니다.
<cbs 뉴스="" 정부는="" 왜곡..군부과잉진압="" 숨기려=""></cbs>
<cbs 뉴스="" 정부는="" 왜곡..군부과잉진압="" 숨기려=""></cbs>
미국 CBS 뉴스 - 정부는 광주사태의 원인을 공산주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왜곡함으로써 시위가 계엄령 반대와 군부의 과잉진압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숨기려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cbs 뉴스 브루스 더닝이었습니다. -
<abc 뉴스="" 전두환장군은="" 혁명의회....광주사태와="" 더불어="" 군사독재의=""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습니다=""></abc>
<abc 뉴스="" 전두환장군은="" 혁명의회....광주사태와="" 더불어="" 군사독재의=""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습니다="">미국 ABC 뉴스 - 전두환 장군과 소수의 선택된 장군들이 민간 정부를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혁명의회를 구성해서 군사독재를 감행하려 하고 있다는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사태와 더불어 군사독재의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abc>
푸른눈의 목격자 풀버젼 http://purmeice.tistory.com/175
감독: 김정일
주역: 힌츠페터
조감독:조총련,고정간첩
무대세트: 북특수부대 600 명,외신기자
한국인들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힌츠페터의 광주영상은 그날 다시 유로비젼을 통해
유럽전역에 방송이 되었고 매시간 뉴스로 나갔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미국에서도 그 필름은 그대로 방송되었다.
힌츠페터의 광주영상은 한국을 제외한 세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동영상속 의문점~
위사진에서 볼수있듯이 힌츠페터와 동행한 독일인 한명외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자 3명이 등장합니다.
영상에서는 힌츠페터가 운전기사만을 언급하고 다른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일체 화면속에 등장하지를 않습니다.
운전기사가 통역까지 맡았다면 나머지 두사람은 왜 동행했을까요?
좌측이 힌츠페터 녹음기사 해닝 입니다.
여기서 의문은 두명의 국제자문위원회 젊은이 2명을 만났다고 했는데
사진 촬영자를 합하여 3명이 더있습니다.
사진은 운전기사가 찍었다면 국제자문위원회 2명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의 신분은 왜 밝히지 않았을까요?
또한가지 이상한점은 5.18을 선전하는 쪽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중 하나가 외신기자와 외국인들입니다.
외국인들의 증언에 대하여 발굴하고 알리는데 주력하는 그쪽사람들 자료중
국제자문위원회 2명에 대한 증언이나 기록을 볼수가 없습니다.
만일 국제 자문위원회 소속이라는 2명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게 아니라면 왜 이들의 증언은 없는걸까요?
힌츠페터 일행은 20일 광주입성했는데 그 이전 영상을 이들로부터 인계받는 장면이 아닐까요?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그들에게 지난 며칠동안 무엇을 겪었는지 물었다. 그들도 기꺼이 승낙했고 그리고 그 사진에있는 지붕위에서 우리와 인터뷰를 했다. 그 때 그들이 목격하였고 다행히 우리가 보지 못한 그 끔찍한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군인들이 폭력을 쓰고 학대하면서 시위대를 진압했다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잔혹함이 처음 며칠동안 일어났던 것이다.]
베트남 종군기자로 활동했었던 힌츠페터는 80년 한국에서의 기억을 베트남전쟁보다 더 참혹하다했다는데
그 참혹함이 폭력 학대하면서 시위진압한거라니 참으로 해괴합니다.
이자의 영상물에는 광주시민과 인터뷰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운전기사와 통역역할을 함께한자가 분명 같이 있었을텐데 소감이라던지 이유라던지 전혀 인터뷰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북괴에 TV생중계를 어떻게 했나.
1.외신기자를 이용한 위성지구국 자료 송출
북간첩으로 활동하는 외신기자가
뉴스 자료 전송을 위해 위성지구국을 이용하여 제3국을 경유하거나 직접받는 방식
2.소련의 위성을 임대 최첨단 기술로 직접 영상을 받음
위성 뉴스전송시스템 (SNG:Satelite News Gathering)
----이 송출방식이 언제 개발되었는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단 최신 방식이긴 한데
최첨단 기술이 군대에서 20~30년 정도 앞서 사용된다는걸 보면
가능성이 없다 할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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