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무장봉기의 사전준비와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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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반도 작성일13-05-26 00:11 조회3,116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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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 당시 1980년 5월 21일 시민군으로 위장하고 전남 38개 무기고 무기 탈취를 총지휘하였던 북한군 안창식 대위의 내연의 처였던 한 탈북여성은 전라도에 지하조직이 있었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여기서 놀랄만한 것은 목포를 중심으로 광주폭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5개월 여 동안 목포,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숨은 지하조직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침투 조 인원들이 직접 목격한 일이지만 그들의 조직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같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전 함경남도고등중학교 교원 2009, 72쪽).
그 지하조직들 중 전라도 여러 무기고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조직이 <전남민청협>이었으며, <전남민청협>의 위장명칭이 <현대문화연구소>였다. 위장명칭 <현대문화연구소>는 합법적으로 사무실 공간을 사용하기 위한 명칭이었으며, 실제 지하활동을 위해서는 <전남민청협>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녀는 남파공작원들이<전남민청협>의 협조를 얻어 무기고 위치를 사전 파악하고 있었던 사실을 이렇게 기록한다:
미리 침투해있던 7명의 인원들과 합류한 안창식을 비롯한 11명의 인원들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 1980년 2월말을 넘기면서 폭동이 전개되면 임의의 시기에 무기탈취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전라도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무기고들에 대한 사전파악과 요해사업이 성과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전 함경남도고등중학교 교원 2009, 69-70).
1980년 3~4월에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무기고들의 위치를 사전에 확보해 놓은 조직이 있었다. 더욱이, 한 탈북자에 따르면 파악된 무기고 위치가 군사작전지도에 표시된 무기 배치도가 작성되었으며, 시민군으로 위장한 자들은 그 무기고 배치도에 근거하여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였다.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이 사전에 정찰해 두었던 전라도 지역의 무기고 배치도에 근거해서 그들의 지휘를 받아가면서 시민군이라고 위장한 자들이 조직적으로 먼저 병기고를 습격하여 무장폭동을 일으켰고…” (전 문천제력소 노동자 2009, 272). 탈북자들의 이런 증언은 광주사태를 총기획한 윤한봉이 증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전남민청협>이 군사작전지도용으로 쓰이던 만 오천분지 일 지도를 구해 무기고들의 위치를 표시한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인자, 요즘은 지도가 아주 세밀한 지도까지도 나오는데 당시에는 만 오천분지 일 지도를 가지려면 신분이 확실한 사람 외에는 그걸 못 사게 되어 있었어. 살 때. 단파 라디오 사는 것하고 비슷해가지고. 그 지도를 인제 박화강씨, 그때 광주매일인가 있었는데 지금 한겨례 지국장 하다가 그만 뒀는데. 그 화강이 형한테 부탁을 해가지고 내가 만오천분지일 광주 지역 지도를 구해가지고...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총, 다이너마이트 이런 무기들이 필요하지 않냐. 그러니까 예비군 무기고가 어디가 있고 이, 다이너마이트는 어디에 있구나 이런 것들 좀 파악하고 도청을 어떻게 점거하기 위해서 도청 주변의 도로를 어떻게 어디 쪽으로 몰려들고 포위를 해야 하고 등등 고런 작전도 세우고 좀 그래야겠는데. 그래서 이제 지도를 구한 거예요. 지도를 구해가지고 이를테면 지원동, 지금은 소태동 쪽인데 거기 나가다보면 거기 채석장이 있었어요. 다이너마이트 창고도 있고. 현장 답사도 하고. 양림동 파출소 뒤에 있는 무기고부터. 이런 것들을 확인하고 다니면서 …… (윤한봉 2006, 윤한봉 구술녹취문 3차 1-4 http://trollwall.egloos.com/4237830).
이렇듯 무기배치도에 관하여 탈북자들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증언을 하는 윤한봉이 바로 1989년 8월 문규현 신부를 시켜 임수경을 방북을 도와 평양축전에 참석시킨 장본인이었다 (한겨레 2008년 6월 27일자).
조갑제 기자가 광주사태는 반공 민주화운동이었다고 주장할 때 그의 그런 주장의 유일한 구호는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한봉은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자기가 만들어낸 위장구호였다는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왜그냐면 인제 내가 쩐남대 선언문을 썼는데 거기에 어떤 대목이 나오냐면은 그때만 해도 인제 가능하면 들어가서 빨갱으로 안 몰리기 위해서 일부로 북을 좀 까는 내용들이 한줄씩 들어가고 그랬다고, 518직전에도 뭐 이 전남대 시위때도, 북괴는 오판말라 이런 피켓도 들고 그랬는데, 근데 그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북괴의 어쩌고 저쩌고 이런 대목들이 들어간다고 (윤한봉2006, 윤한봉 구술녹취문 1차 2-7 http://trollwall.egloos.com/4236007).
이 증언 1-2에서 윤한봉은 자기를 비롯한 광주운동권은 통혁당의 청소년 조직 광랑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1960년 후반에 통혁당의 공산주의 혁명 전략은 무장봉기였으며, 청소년 시절 그 이데올로기 영향을 광주운동권이 광주사태라고 불리는 무장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하였다.
윤한봉이 지어낸 위장구호 ‘김일성은 오판 말라’가 실제로 광주사태 때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윤한봉의 동지 윤상원의 영어 통역이었던 인요한이 그 구호에 낚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교사 자녀로서 어렸을 때 광주의 친구들과 함께 자랐던 인요한은 광주사태 때 아직 대학 진학을 못한 청소년이었으며 그래서 분별력이 모자라 쉽게 낚였다. 지난 5월 16일에 인요한이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아침에 반공구호를 외치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이 진실이었는가? 도청 접수 후 윤상원은 미국인들을 인질로 납치하려 했다. 그런데 그의 동지들이 그의 반미 발톱을 그렇게 너무 서둘러 드러내면 광주시민들의 협조를 얻기 어렵다고 말리며 설득하여 반미 구호를 갑자기 반공 구호로 바꾼 것이었다. 반공 구호는 위장구호요, 본래 목적은 반미였기에 지금도 각종 5.18 행사에서 반미 구호들이 외쳐진다. 유네스코에 5.18 기록물들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한번 읽어보라. 그 어디에도 반공 이념의 흔적은 없고 오로지 반미 이념으로 가득 찬 성명서들뿐이다.
인요한은 아직 청소년이어서 분별력이 부족했기에 낚였던 것이겠지만 당시 윤한봉 동년배였던 조갑제 기자도 그 위장구호에 낚이셨는가? 위장 구호가 반공 구호라는 논리라면 그 위장 구호를 만들어 낸 윤한봉은 반공 투사라는 논리가 된다. 청소년 시절 통혁당 이념의 영향을 받아 광주운동권이 된 자가 반공 투사였는가? 미국 망명시 북한 당국과 공동으로 평양축전을 추진하던 윤한봉이 불법으로 임수경 양을 방북시켰던 것이 반공 행위였는가? 오늘의 임수경은 윤한봉이 문규현 신부를 시켜 그녀의 방북을 도와 평양축전에 참석시켰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그 누가 그녀를 가리켜 반공투사라고 말하는가? 윤한봉 본인도 자신의 입장은 반공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오히려 그는 반공 이념과 투쟁하던 자였다.
그렇다면 윤한봉이 반공이념과 투쟁할 목적으로 전략상 지어낸 위장구호가 진실된 반공구호일 수 있었겠는가? 만약 광주사태는 반공 민주화운동이었다는 조갑제 기자의 주장의 근거가 단지 윤한봉이 종종 쓰던 위장수법의 하나로써 지어낸 구호뿐이라면 실제로는 광주사태가 반공 민주화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2013년 5월 20일 역사학도 ('역사로서의 518'의 저자이신 애국지사 김대령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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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글에서 인용된 참고문헌들 윤한봉의 구술녹취문은 괄호에 링크가 있고 그 외의 문헌은 “역사로서의 5.18” 제4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황석영의 책 『광주5월 민중항쟁의 기록』 및 지난 5월 15일 종편 시사프로그램에서 이주성 박사가 한 증언과 일치하는 증언, 즉 광주사태 때 5월 21일 무장시민군이 서울을 향하여 진격하고 있었다는 뉴스를 북한에서 들었다는 납북 여배우 최은희의 증언 동영상 보기
http://cafe.daum.net/issue21/3IBb/737
경제풍월 5월호 인터뷰기사
http://www.econotalking.kr/xe/index.php?document_srl=88724&mid=interview_2010
"조갑제 기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
http://cafe.daum.net/issue21/3IBb/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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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보고 주목한 것은 광주에 침투했었다는 안창식 대위의 내연의 처라고 밝힌 탈북여성의 증언이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그녀의 증언내용의 신빙성을 나름대로 따져볼 수 있는 검증키워드를 나는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증언내용은 서울 소재 대학가 운동권 지하조직과 연관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증언을 통하여 학창시절 운동권에 대하여 늘상 품었던 의문을 풀 수 있는 확고한 단서를 찾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제서야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증언은 그만큼 신빙성이 큰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북자의 증언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숨겨진 이면을 밝히는데 얼마나 긴요한 것인가를 몸소 깨닫고 나는 전율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때로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보다 더 정확하고 분명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댓글목록
하늘계단님의 댓글
하늘계단 작성일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도 분명한데 아무런 조사도 안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합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기보다 광주의 대통령, 전라도의 대통령, 518수호의 대통령인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518에 대해 다시 재수사를 지시하고 지만원 박사님의 20년 연구업적을 온 세상에 드러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조갑제님도 국민영웅이시지만 518에 대해서만은 지만원박사님이 가장 앞서십니다. 518에 대해서는 조갑제님은 지만원 박사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내 잘났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라가 사느냐 죽느냐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보수우익 높으신 지도자님들은 제발 결집하여 저 간악한 종북괴뢰 빨갱이 세력을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 대한민국님께서 나라를 위해 애써주심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고 유익한 글 올려주셔서 또한 감사를 올립니다. 저는 당분간 조갑제 회원가입은 안하고 여기에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제가 조갑제 닷컴에 올렸던 책을 다시 시스템 클럽에 올릴려고 합니다. 조갑제 닷컴의 회원가입은 안 했지만 매일 조갑제 닷컴의 글은 많이 읽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시는 애국님들에게 신세만 지고 산다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애국글을 많이 올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한반도님의 댓글
한반도 작성일
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객관적 표현용어로서 광주사태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내에서 있었던 사건이고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들간의 갈등과 대결이라는 점에서는 사실에 입각해 균형있는 시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흔히 말하는 양비론적 시각과 절충론적 시각을 버무려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국민통합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장봉기, 대규모 폭동의 양태를 지녔고 휴전선 이북에 강대한 반란세력을 두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 수호와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분명한 관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이북의 반란세력과 연계된 정황증거나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어영부영 모호한 인식과 평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병들게하고 좀먹는 것입니다.
80년 5월 광주사태에 대한 총체적 진실규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광주의 오월정신을 들먹이며 계승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종북성향을 보이고 있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북괴가 5.18묘역을 참배하고 5월정신을 들먹이는 등 예사롭지 않은 부분도 거슬리는 부분입니다.
놀라운 것은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고 주장하는 5.18단체들이 이에 대하여 민주화운동 정체성훼손의 관점에서 어떤 제지 움직임도 없고 오히려 강한 연대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광주사태의 정체성은 사후적으로도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정체성, 정통성의 관점에서 가차없이 다루어야할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숭고한 광주시민이 있었다면 그분들의 넋을 위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계단님의 댓글
하늘계단 작성일
한반도 대한국님께서 시간도 없으실건데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518광주사태는 반드시 진실규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넘기다간 대한민국만 더욱 분열과 갈등이 초래될 뿐입니다.
역사는 변합니다. 과거에 몰랐던 사실을 지금에 밝혀진다면 그 밝혀진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새롭게 써야 마땅합니다.
지금 518광주사태에 가장 핵심적인 증언들이 바로 탈북자님들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분들이 왜 우리보다 더 열심히 광주사태의 진실을 밝혀지길 원하겠습니까?
바로 대한민국으로 자유통일하기를 원하고 또 북에 있는 가족들도 탈북자님들처럼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대로 계속 광주사태의 진실을 덮어버린다면 대한민국 자유통일에 커다란 걸림돌로 국민분열만 생긴다고 보기에 탈북한 자신도 살고 북에 있는 가족도 살게 하기 위해 최대한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애쓰신다고 봅니다.
광주사태는 무기고 탈취사건이 없었으면 벌써 30년전에 끝난 사건이고 다 잊혀지고 영원히 광주시민들에게는 그냥 데모 좀 했는 사건이고 부마사태보다 훨씬 역사적으로 가치롭지 못한 그냥 일개 소란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왜냐면 부마사태로 말미암아 김재규가 민심을 곡해하여 박대통령을 시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기고를 44군데나 4시간만에 동시에 털고 총 5000자루 이상을 탈취하여 그것을 많은 데모 시민에게 무장하도록 한 때문에 심지어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총을 쥐게 한 것으로 이는 절대로 민간인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이며 민간인 단독으로 살인하라고 그짓 했을 수도 없고 할수도 없고 생각도 못할 사건인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조갑제님은 광주사태의 진실을 아실 것인데 자꾸 아니라고 하시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맞다 아니다 사이트 글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사랑하시는 조갑제님으로서는 정말 지만원 박사님과 토론을 하시고 결론을 확정지으셔서 모든 조갑제님, 지만원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바른 길이 무엇이었는지 가르쳐 줘야 하리라 봅니다.
지금 518주동세력들이 더더욱 기고만장 날뛰는 것은 바로 조갑제님 때문이라 보며 조갑제님은 그들이 더이상 날뛰지 못하고 고개 팍 숙이고 기도 못 펴도록 어서 빨리 지만원 박사님과 토론를 하시고 결론도 분명히 내리시고 그래서 우익은 518사건을 어떻게 결론 내렸다는 것을 우리나라 모든 사람에게 정의내려 주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444네요. 4가 하나면 죽고 4가 둘이면 죽다가 살고, 4가 셋이면 죽다 살다 다시 죽는 느낌이 들어 마치 악마의 숫자 666이 생각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