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연고대생에 대한 의문점 들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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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빵구 작성일13-05-25 08:31 조회3,27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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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518때 연고대생 600명이 참가했다는 이야기는 광주 외부에서 카더라 했던 것이 아니라, 518 주도측에서 유포를 했고, 당시 시위참가자 다수, 취재진, 그리고 수사기록과 계엄일지 등에 기재된 사실만 근거로 이야기를 하는 내용입니다.
<본문> 518 암호명 연고대생 600명에 대한 진실왜곡
518에 북괴군참전이 사실이냐 아니냐란 논란이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괘도에 오르고자 하는 요즘은 518 단체들은 인터넷이 없던 당시 상황에 맞추어 그때 그때 발표했던 암호명 연고대생 600명에 대한 진실왜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전 동아일보에 보도 된 300명 선무 공작원은 신군부가 선전전을 하기 위해서 수도권에서 고속버스 편으로 광주로 향했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이런 날조된 발표를 보면서, 금강산 사태, 개성공단 사태의 억지주장과 날조를 하는 북괴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국방부에서는 300명 선무공작원들이 수도권에서 고속버스편으로 광주로 향했다고 했으나, 그 동안 518 단체들의 주장을 분석해 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518 단체들의 암호명 연고대생 600명에 대한 발표에는, 이들은 목포쪽에서 광주쪽으로 이동을 했다고 지속적으로 발표를 했고, 그 이동로에서 수많은 시신들이 발견이 되었다고 했었고, 그 시신들은 모두 두둔이 훼손이 되거나, 얼굴을 짓이겨 신원을 알아볼수가 없었다고 했었고, 그 수기 중 상당수는 518의 꽃 전옥주 여사의 글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보거나 알게 된 사람들을 입막음을 위해서 죽였고, 이들을 공수부대가 죽인 것으로 뒤집어 씌웠던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군부 선전요원 300명이 수도권에서 출발해서 광주를 통과해 바닷가인 목포로 먼저 갔고, 그 다음에 어떻게 다시 광주로 이동을 했다는 것인지 말이 되지도 않는 발표를 해서 물타기를 하고 있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암호명 연고대생 600명이 집단 행동을 한것은 5월21일 이지만, 그 이전에는 조별행동을 했었음이 온갖 기록물과 진술서 그리고 발표문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럼 신군부 선전요원 300명이 수도권에서 광주로 내려왔다고 치고, 나머지 300명은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을 했고, 무엇을 했는지도 밝혀야 합니다.
<결어>
518 암호명 연고대생 600명은 518단체에서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자신들이 필요해서 그때 그때 발표를 했던 진실입니다.
그 진실이 사람이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서 없애버리겠지만, 수많은 발표문과 기록을 어쩌지 못하니, 마치 일본 정치인들 처럼 되도 않는 주장을 되풀이 하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암호명 연고대생 600명은 518 진실 규명의 핵심입니다.
댓글목록
빵구님의 댓글
빵구 작성일
집단 행동을 하기 이전에는 모두 조별행동을 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화려한 조작에서 극적인 장면으로 연출한 리어카에 태극기를 두른 2구의 시신 회람사건 입니다.
이 사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