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연고대생에 대한 의문점 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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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빵구 작성일13-05-20 08:31 조회3,426회 댓글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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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님의 댓글
초보자 작성일
김영택기자는 22일경 도청 앞에서 있었던 시민궐기대회에서 이들를 소개하는 걸 목격했죠.
그렇다면 이 행사를 주관하였던 조직이 있었을겁니다.
이 조직의 사람들이 유공자로 인정되 국가의 돈을 받아먹는다면, 당시 벌어졌던 500명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할겁니다.
빵구님의 댓글
빵구 작성일
김영택 기자는 그 전날 도청앞 시위군중들 속에서 이들이 복면을 하고 공수부대에게 카빈총을 발사를 하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누군가의 지시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가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겁니다.
빵구님의 댓글
빵구 작성일
법으로 항상 훈련과 교육을 반복하는 교육사단인 20사단 연대병력의 광주진입을 600명의 인원으로 순식간에 저지를 하고 장비를 약탈을 할수 있는게 연고대생들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도 새벽에 저질러진 일이니까 그 이전에 행군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작전을 짜고, 정보를 취합하고, 그리고 지휘자의 지휘를 일사분란하게 따라야만 될까 말까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연대병력을 비무장 대대병력으로 격파를 하고, 사단장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빵구님!!!
그당시에 게엄이 일어난 지역에 들어가는 일은,
제가 아는 한,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었지요.
그런데 어느 미친 대학생이 그곳엘 간답디까????
결국,
땅쇠들이
북쪽애들의 장난질에 놀아난 게 아니라면,
답이 없지요
초보자님의 댓글
초보자 작성일
심심도사님, 당시 21일오후 전남지역으로의 시위확산 차단을 위해 노력하기 전까지는,
광주의 외곽 전남지역에서는 얼마든 차량으로도 광주진입이 가능했읍니다.
그 많은 무기들이 트럭을 이용해 광주로 들어갔거든요. 즉 21일 오후 이전 까지는 노선버스만 운행중단이있었지, 시위대가 빼앗은 차량들이 광주이외의 지역에서 시위대를 광주로 수송합니다.
그게 차단이 된것이 21일 오후부터죠.
빵구님의 댓글
빵구 작성일
맞습니다. 암호명 연고대생 600명이 가장 활약을 많이 한 시기가 바로 21일 이전이라고 기록을 분석해 보면 나옵니다.
바로 이들 연고대생들이 차량을 이용해서 무기를 시내로 나른 겁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유언비어을 살포하고 군중을 선동을 해서 시위를 확대하는 역활을 하고, 살인과 방화에 앞장을 선겁니다.
이들은 광주시민들이 아님에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는 이들은 고첩들의 안내와 호송에 전적으로 의존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들이 광주시민이었다면, 이들은 추후에 시민군이 되었어야 하고, 각종 보상금과 연설 그리고 이권사업등에 얼굴을 내밀어야 맞습니다. 그냥 돌맹이 하나만 던지려고 들고만 있어도 시민군이었다고 우기는 판에 이들의 영웅적 활약은 그냥 덮어둘수가 없는 행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