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18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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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3-05-17 23:32 조회4,1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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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분 지났을까. 밖이 또 소란스러워졌다. 다시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에 지나갔던 시위대열이 다시 돌아오는 중이었다. 나는 무등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가보기로 했다. 마침 우리 집에는 김병준(방위병)이라는 내 또래가 살고 있어서 함께 갔다.
우리가 무등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아직도 흩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고 8톤 트럭이 불타고 있었다. 경남 차량이었다. 나는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저 차에 왜 불이 붙었습니까?"
"경상도 차기 때문이오."
"그럼 운전사는요?"
"도망가버렸소."
나는 트럭이 타고 있는 것만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오후쯤이었다.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공수부대원을 장갑차로 깔아 죽였다는 사람이 잡혀 들어왔다. 그는 이금영(확실한 기억은 아님)으로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지휘관이 권총을 빼들고 악을 썼다.
"너도 죽어야 해. 이 자리에서 사살시켜 버리겠다."
우리는 긴장이 되어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다행히 상사 한 명이 그 지휘관을 말렸다. 그 지휘관은 더 흥분했지만 권총을 집어넣고 워커발로 차고 개머리판으로 그 사람을 내리쳤다. 그 후로도 들어오는 공수들마다 그를 잡고 다그쳤다.
"너! 우리 동료 죽였지? 결혼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죽여?"
한마디로 그 사람은 공수들의 분풀이감이었다.
트럭 한번 얻어탄 죄로/황강주
5월 20일, 우연히 무등경기장 쪽으로 갔더니 택시들이 굉장히 많이 운집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일단 승용차(학생처장 전용차)를 전남대 병원으로 가져가 숨겨놓았다. 오가면서 보니 광주고속터미널 앞쪽에 경상도 트럭이 불에 타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많은 시위군중이 운집해 있었다. 그때 시위군중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양 각색인 것 같았다. 그중 젊은이들이 모두 학생은 아니고 복장이나 두발상태로 보아 갱생원 아이들이나 공장 노동자들 같았다. 내가 알기로는 당시 신우아파트 쪽에 무등갱생원이 있었는데 5·18 이후 없어졌다고 한다.
그 이유가 5·18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특히 20일 오후에는 공장 노동자나 갱생원 아이들 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또한 택시회사 운전기사들도 많이 나와 있었다. 시위군중을 따라 전남대병원 쪽까지 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광주항쟁은 과거로부터 계속된 지역적인 발전의 불균등, 인물 등용에 있어서의 차별, 그리고 과거 문화적인 측면으로 인한 적대감으로 인하여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경상도 차량이 피해를 보았고 우리 동네에서는 경상도 사람 한 명이 주민들에 의해 몰매를 맞았던 사실도 있었다. 광주항쟁은 결코 정부 전복을 위한 이적행위가 아니라 지역감정의 축적과 또한 유신정권 때부터 계속되어 온 독재정권, 특히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에 의해서 다른 지역보다 먼저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계엄군의 가증스러운 만행/오병길
김대중 씨가 17일날 잡혀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적극적으로 합세하던 시민들의 기세가 20일을 기점으로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에 이르렀다. 20일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신안동 크라운제과 앞에서 경상도 번호를 달고 들어오던 화물차와 승용차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망가뜨려버리기도 했는데, 그때 당시 공수대들이 모두 경상도 출신이라는 말이 나와서 사람들이 분노했다. 나도 함께 차를 부수고 불지르는 데 박수를 보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경적 울리며 민주주의를 운전하다/정영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대열은 줄어지지 않고 투석전과 최루탄의 싸움은 과열되었다. 광남로 쪽에서 12톤 정도 되어 보이는 화물트럭이 공용터미널 앞으로 왔다. 차 넘버에는 '경남'이라고 씌어 있었다. 시민, 학생들은 이 트럭을 세웠다. 차에는 돌(석재)이 가득 실어져 있었고 차는 모두 3대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지금 기억으로는 화물 트럭 3대를 모두 불태운 것 같다. 나는 밤늦게까지 공용터미널 부근에서 공수들과 맞서 싸우다 집으로 돌아왔다...
도망갈 데는 없고/김시도
젊은 청년 2명이 군복 입은 사람의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어왔다. 자세히 보니 군인으로 보이는 그 사람은 총에 목이 관통되었고 이미 죽어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밥이 넘어가지 알았다. 나는 광주공원에서 빠져나와 시민회관을 지나 걸어갔다. 농촌진흥원 부를 상무대 쪽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그곳을 시민들 10여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중에는 외국 기자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시민군들은 외국 기자 한 명을 붙잡고 카메라를 빼앗았다. 시민군들은 외국 기자의 카메라에 자신들이 찍히면 잡혀가기 때문이라고 윽박 질렀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나는 시민군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만류하여 외국 기자의 카메라를 건네주고 돌려보냈다...
날이 어두워져 나는 동신전문대에서 나와 계림등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총을 들고 있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빨리 총을 갖다주고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집을 나와 농장다리 부근에서 지나가는 차를 세워 총을 건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할머니는 상처부위를 치료해 주시며 일러주셨다.
"데모를 하는 사람은 순전히 깡패들밖에 없단다. 학생들 은 모두 빠져나갔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이제껏 데모를 한 사람들 대부분이 대학생들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남평 무기고를 털다/최인영
우리가 맨 먼저 간 곳은 중앙고속터미널이었다. 터미널홈에 차 몇 대가 세워져 있었지만 키를 모두 뽑아가버린 상태였다. 사람들이 터미널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나왔다. "시위차량이 부족하니 그레이하운드를 좀 내주시오." "차를 줄 수 없소." 그 말을 들은 1백여 명의 흥분한 사람들이 세워놓은 차에 달라붙어 밀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중앙고속 건물 안으로 들어가 회사기물과 기타 시설물들을 모두 부숴버렸다...
즉시 우리는 정비공장으로 몰려갔다.과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나와 두말하지 않고 차를 골고 가라고 했다. 우리는 차를 가지러 갔지만 누군가가 "광주고속도 광주의 재산이니까 끌고 가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그냥 나왔다...
광주천변에 차들이 굴러떨어져 있었다. 버려진 차는 기름이 떨어진 차였을 것이다. 주유소 주인들이 대부분 시위대 차량에게 기름을 조금씩밖에 넣어주지 않았다. 다른 시위대 차량이 와서 기름을 달라고 하는데 없다고 하면 격해진 시위대가 주유소 기름들을 막무가내로 부숴버릴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기름을 분재해 주었기 때문에 금방금방 기름이 떨어졌고, 그럴 때마다 차를 팽개치고 다른 차를 타곤 했다. 그리고 18, 19일은 많은 차량들을 불태웠는데 차체가 깨끗이 타버린 잔해들이 나뒹굴었다...
무장투쟁 - 민중의 정당방위(윤석진)
다음날(22일) 나가보니 지원동다리 앞에 군용 지프차가 한 대 서 있었다. 퇴각하던 공수가 시민군의 총격을 받아 한 명이 죽었다는데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차 앞유리에 구멍이 뚫려 있고 피가 흥건했다. 또 지원동에서 배추장사를 하던 사람이 트럭에 치여 죽었다고 했다. 보람아파트 앞에 가보니 도로에 피가 낭자한 사고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은 계엄군이 아닌 시민군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돈을 벌려고 장사하는 것이 얄미워 일부러 치었다고 했다...
나의 오월/최남식
밀고밀리는 공방전 속에서도 한쪽에서는 광주백화점 증축 현장에서 드럼통을 가져와 불을 붙여 군경들에게 굴려보냈다. 드럼통은 관광호텔 앞으로 굴러가더니 굉장한 폭음을 내면서 폭발했다. 폭음과 함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 등 싸움이 치열해졌다. 나는 감격해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수부대가 온다는 시민들의 말을 듣고 보니 공수들이 전경을 앞세우고 시위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때마침 그곳에는 CBS 취재차 포니2가 있어서 젊은 청년들은 다가오는 전경과 공수를 향해 차에 불을 붙여 밀어버렸다. 그러자 공수들은 건수라도 잡았다는 듯 민첩한 동작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동구청 쪽에서 제일은행 골목으로 도망을 갔다...
그런데 갑자기 가톨릭센터 부근의 시민들이 "와아!" 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가톨릭센터로 몰려가는 것이었다. 가톨릭센터 옥상에 공수가 몇 명밖에 없으니 죽여버리자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후 점심 먹으러 간 공수들이 다시 나타나 시민들을 포위하고 거리를 좁혀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공포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어디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그곳에 일제히 총구를 대고 갈겨대곤 했다. 탄알이 2박스였던 것이 1박스로 벌써 줄어버렸다. 개소리만 나도 바로 인기척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그 사람이 누군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두려움에 무조건 쏘아대기도 했다...
밥은 잘하니 걱정하지 마시오/구성주
우리는 남광주주유소 쪽으로 대열을 돌렸다. 여전히 나는 선두에 선 채 용덕이 형을 부축하였다. 주유소에는 사장은 없고 부인과 종업원 1명이 있었다.
"기름 좀 주시오."
"없어요."
"비상탱크 것을 좀 주시오."
"비상탱크도 없어요."
그 여자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일행 중 한 사람이 각목으로 유리창을 박살내 버렸다. 그때서야 놀란 그 여자는 비상탱크에 있는 기름을 주었다...
나는 트럭을 세우고 조성구와 함께 트럭에 옮겨탔다. 기사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앞자리에 앉아 우리는 화순으로 향했다. 너릿재를 지나 검문소가 보였다. 나는 화순 가까운데 살고 있어서 화순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었다.
"야 성구야, 너 내려가서 저 초소 전화기 선이랑 무전기 전부 치워버리고 와라이."
"알았소, 형."
차를 세우고 내가 성구에게 말하자, 성구가 뒤에 탄 사람들과 함께 검문소로 향했다. 그들이 몽둥이로 검문소 유리창을 깨자, 2명의 순경들은 산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검문소 안의 모든 선을 잘라버리고 성구가 돌아오자 우리는 계속 화순으로 들어갔다...
배고픈다리는 중요 요지/허춘섭
석가탄신일(21일) 증심사로 불공을 드리러 갔던 사람들이 발이 묶여 있다가 23일 오전에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전 11시쯤 20미터 전방에서 시민들 틈에 사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있었다. 대원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소대장님, 저기 수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봤소. 모른 척하고 있으시오."
우리는 담배를 피면서 허술한 척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앞을 태연히 통과하려 했다. 나는 그가 우리 앞을 지나려는 찰나 그를 나꿔채고 발로 차 쓰러 뜨렸다. 그의 옷이 벗겨져 군번이 나왔다. 하사였다. 그러는 사이 뒤에 따라오던 사복을 입은 군인이 계곡 쪽으로 몸을 엎드려 황급히 도망가고 있었다. 우리와 70-80미터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쫓아가 잡을 수는 없었다. 나는 M2 자동소총을 갈겨대며 그를 향해 공중사격을 했다. 그러자 그 군인은 도망가지 못하고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몇 명의 대원들이 그를 잡아왔다. 군인들은 오금이 저려 벌벌 떨었다. 그 역시 사복을 벗겨보니 군번이 나왔고 속옷은 군용 포대 팬티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민간인을 가장하여 염탐하러 온 공수부대였다.
"너희 아지트가 어디냐?"
"지원동으로 모두 넘어갔고 우리 둘만 남았습니다."
"그럼 너희 장비는 어디에 있느냐?"
"태봉마을 철탑 밑에 있습니다."
대원들이 그곳으로 가서 그들의 장비를 모두 가지고 왔다. 베낭, 신발, 낙하하면서 쓸 수 있는 기관단총, 낙하산, 건빵 등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포승줄로 묶었다. 주위에 모여 있던 시민들과 다른 대원들 80-90퍼센트가 그들을 죽여버리자고 했다. 총을 겨누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 자들도 같은 군인이지만 우리 동포니 죽이지는 말자"고 설득했다. 그때 마침 도청에서 순찰대원 2명이 지프차를 타고 왔다. 나는 순찰대원에게 장비와 함께 군인 둘을 넘겼다...
광주공원 총기교육/문장우
학생들은 마이크를 준비하기 위하여 금남로에서 모금운동을 했다. 학생들이 트 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시민들은 그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으므로 앰프 를 구하여 알리자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모아진 돈이 45만 원이나 됐다. 모금한 돈으로 학생들이 앰프를 구해 왔으나 마구잡이로 날아오는 최루탄에 맞아 금방 절단나고 말았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또다시 앰프를 구하기 위해 금남로에서 학 운동 사무소로 갔다. 그곳에서는 앰프를 내주지 않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
"내가 모두 책임질 테니까 앰프를 떼내라."
학생들이 달려들어 앰프를 떼내는 동안 호주머니를 터니까 7만 원 정도 되었다 . 나는 그 돈을 동사무소에 주었다. 남학생들은 스피커를 들고 명숙이는 옆에서 보조해 주고 나는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시작했다...
계엄군의 폭력은 날로 더해 갔고 언론은 광주에서 불순분자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허위보도를 했다. 우리는 20일 저녁 공정보도를 요구하기 위해 MBC 방송 국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건물 안에 있던 계엄군들이 즉시 셔터문을 내려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가두방송을 하다가 다시 MBC 방송국 쪽으로 갔는데 그때는 이미 MBC가 불에 타고 있었다. 또 MBC 방송국 옆의 금성전자제품 대리점 앞에서 뭔가를 불에 태우고 있었다...
주로 변두리 지역이나 으슥한 골목, 건물 등에 시신이 많았다. 웬일인지 시신 들마다 눈들이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총은 총대로 쏘아 죽이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항쟁기간 동안 옮긴 시체만 해도 30여 구 되었는데 옷차림으로 보아 양아치들이 가장 많았다. 그때 나는 광주 지리를 잘 몰라서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학동, 화순방면으로 가는 길, 효천 등지에 시체가 많았던 것 같다...
근디 20일 날인가 상원이형이 내가 녹두서점에 점심인가를 먹을라고 와 가지고 쉬고 있었던가 그랬는디 상원이형이 용용하게 옵디다. 뭐하고 오냐, 철모하고 단검을 하나 들고 오드라고. 단검을, 내가 어 뭔 일이요. 내가 한 놈 죽여불고 왔다, 어떻게 어떻게 했소? 그러니까 소위 영웅이제...
근데 한 번은 쫙 몰고 갔다가 쳐서 도망가니까 계속 쫓아오고 한 놈이 끝까지 쫓아오더라 이거여, 다른 놈들은 다 후퇴하고 있는디. 근디 그 놈 보니까 비틀비틀하니 술 취한 놈처럼 그러더라 이거여. 그러자 상원이형이 딱 돌아서서 군중들한테 시민들한테 저놈 죽여 불자 했다는 것이여, 근디 도망가던 군중들도 돌아서서 보니까 혼자 쫓아오고 있거든, 와 하니 쫓아갔다는 것이여. 그러니까 그놈이 놀래서 하천으로 뛰어 내려분 거여. 하천으로 도망가다가 근데 시민들이 하천으로 뛰어내려가 가지고 그놈을 밟아분 거여. 그때 상원이형이 와서 거기서 큰 돌팍을 들어가지고 대그빡을 찍어부렀다는 것이여, 상원이형 말로는. 그래서 그 기념으로 철모를 가져오고 단검을 뺏어왔다는 것이여, 글고 자기 말로는 깨구락지 됐다는 거여. 죽어버렸다는 거여. 그래서 아따 형님 참 대단하요...
5월 27일, 나는 역사의 새벽을 보았다 - 김효석
-그래서 거, 둘러 싸여브렀어요, 근게 이양반 얼굴이 흑해져버리고 근디 거기에서 쇠스랑을 봤어요, 쇠스랑을, 쫌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를 해질 수가 없어요 왜냐허믄 올 수가 없어 군중을 헤치고, 그랑께 한쪽에서는 죽여블자하고 어쩌고 그래요, 요라고 본께 고광덕이 가가 5.18필름에도 거기 들어있습니다. 가가 나중에 보안부대 잽혀가가꼬 합수대 잽혀가꼬 죽게 되어븐놈 정신병자 내가 빼왔어요. 그 뒤로 보니까 우리 친구 고광석이가 있드마요. 멀리서 말이 안 나와블죠. 아이 광석아 광석아 한께, 거그서는 죽이지 말라고 한쪽에서는 쇠스랑으로 찍어블자고 허고 근께 순간 아닙니까? 총 필요 없어요. 실탄도 없고 수류탄도 필요 없어, 그 그는 인원한테 못해봐 그라믄 여기서 강경파가 있고 온건파가 있었어요. 인자 쇠스랑 허지마라 허지마라 또 우리 친구가 못 넘어와요. 그때 나한테 글드만요 야 이새끼야 하나 강경파가 글드만요. 야 이새끼야 집구석이 어디냐고 꼭 글드만요 집구석이 어디냐고 그래서 전남 영광이라 했죠. 주민들록 내놔봐 딱 글드마요 장교들은 주민등록을 갖고 있어요. 병사들은 부대에서 다 회수해 버립니다. 지금은 어쩐가 모르겠는데요. 주민등록을 딱 내본께 주소가 여그지 않습니까. 본적도 여그고 그래가꼬 거그서 지금도 기억나 오메 우리 우리팀이라고 글든마요, 뭐라고 하든마 우리동네라고.
근디 차 빵구난거 빨리 때와라. 이 근께 우리 운전병이 빵구난거 고치는데 3분도 안걸리든마 우리 정수하씨는 요렇게 딱 있고.
지옥 갔다온거지 지옥. 비키라고 길을 비키라고 우리동네 애긴게. 저한테 애기라고 해블든마 비키라고...
빨갱이 폭도인 줄로만 알고 - 김00(당시 20사단 수색중대장)
출처 : 5.18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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