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들의 날조선동과 적반하장식 덮어씌우기수법!!

 

운동권이  민간인 감금폭행하고  경찰프락치라고 선동!!

 

1984년 9월17~27일 사이에 林信鉉(임신현)·孫瀅九(손형구)·鄭龍範(정용범)·全基東(전기동) 등 4명의 젊은이들이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에게 감금된 채 ‘프락치’라는 자백을 강요받으며 폭행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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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 1984년 10월5일자 보도


이 폭행 사건으로 25명이 넘는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柳時敏(유시민, 경제학과 3년)을 비롯, 尹昊重(윤호중·철학과 4년), 白泰雄(백태웅·공법학과 4년), 李政祐(이정우·공법학과 4년), 吳在瑛(오재영·인류학과 4년), 趙元鳳(조원봉·국사학과 4년) 등 모두 6명이 폭행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징역 10월에서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은 재수생이거나 고시 준비생으로 서울대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학생회 간부들에게 체포되어 교내 곳곳에 감금된 채 폭행당했다. 폭행을 행사한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은 검찰 진술에서 “프락치라는 자백을 강요받으면, 이를 이용해 기관에 항의하거나 학생 데모에 한층 더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유시민은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자 이에 불복 항소했고, 2심에서 1년 형이 확정되어 복역했다. 그동안 폭행 사건이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라고 언론에 보도되곤 했지만, 실제로는 ‘프락치 사건’이 아니라 ‘민간인 감금·폭행·고문사건’이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요약

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아젠다가 마땅치 않을 경우 대중투쟁의 동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날조선동을 하게된다.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빨갱이들은 날조선동에 대해 죄책감이 거의 없다.

운동권 내부에서도 운동권 선배라는 자들의 반인권성에 치를 떨었지만 쉬쉬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광주사태에서 악성유언비어와 날조선동, 시체팔이의 대중적 효과를 맛본 운동권이 사용하는 주요전술로 정착했다. 

경향신문 이 당시엔 제대로된 신문이었盧?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