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5.18폭동을 사전에 알고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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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생 작성일14-09-10 17:30 조회1,821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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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츠페터는 19일 서울에 입국하여
20일 전라도로 갔다는데
5.18관련 영상물은 18일 부터 존재합니다.
TBC 미공개 영상을 보면
국내 기자들중 최초로
19일 부터 나흘간 5.18을 촬영하였으나 방영치 못하다가
최근 공개하였다는데
흑백영상물입니다.
북괴가 공개한 5.18영상물중 18일자 내용은
모두가 컬러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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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미국의 주가 된 알래스카와 하와이는 1965년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실시했다. 아시아
최초로 컬러방송을 실시한 일본에서는, NHK, 도쿄 방송, 요미우리 TV에서 1960년 9월 10일부터
NTSC 체계의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실시했다.(NTSC-J라 불린다.) 필리핀은 1966년 아시아에서
NTSC 기준에 있는 컬러 텔레비전을 방송하여 일본에 이어서 컬러방송을 하는 두 번째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1977년부터 이미 칼라 텔레비전을 제조하여 수출하고 있었으며, 방송국들
도 이미 1974년부터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의 반대로[1] 방송하지 못하였지만, 제5공화국 3S정책 일환으로 시작하게 된다. 1980년 12월 1
일에 KBS 1TV에서 (단,KBS 2TV 와 MBC는 1980년 12월 22일부터) 대한민국 최초로 컬러 텔레비
전 방송을 시작하였으며, 완전한 컬러 텔레비전 방송은 1981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C%BB%AC%EB%9F%AC_%ED%85%94%EB%A0%88%EB%B9%84%EC%A0%84
우리나라는 컬러 방송을 할능력은 있었지만 80년 당시 컬러 방송을 하지않았고
카메라를 운용하지 않은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서울 방송국에만 컬러방송을 할수있는 장비가 있었다 합니다.
또 컬러방송을 할수있는 카메라 장비를 다루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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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컬러영상으로 촬영된 화면은 국내기자가 촬영한것이 아니란겁니다.
5월 18일부터 전남대와 거리 시위장면을 촬영한 기자
5월 18일 오후4시 금남로 계엄군을 촬영한 2명 등은
20일 전라도로 입성한 힌츠페터보다 적어도 2일 앞서 전라도에 입성해있었던 겁니다.
국내 방송사중 유일하게 TBC만이 5.18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19일부터 촬영을 할수 있었던 겁니다.
그럼 이 의문의 기자들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입수하고선
5월 18일 이전에 컬러카메라를 가지고
전라도에 미리가 있었던 걸까요?
위영상 5분 부터 6분까지
5월 18일자 영상입니다.
5월 18일 4시 부터 5월 19일까지 영상입니다.
5월 20일 영상입니다.
5월 21일 영상입니다.
TBC 가 국내방송사들중 유일하게 19일부터 나흘간 5.18을 촬영했다는 영상입니다.
위르겐 힌츠페터
(Jürgen Hinzpeter 1937년7월 6일 ~)는 독일의 기자, 언론인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현장을 영상에 담아 언론통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보도될 수 없었던 광주의 참상을 외국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일명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린다.
독일 제1공영방송의 일본특파원으로 지내는 동안 그는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박정희 정권하의 여러 공안사건들에 대한 기록과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가택연금 중인 김영삼과의 인터뷰 등을 녹음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 중이던 5월 19일에는 한국에 잠입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취재하여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도쿄로 날아가 편집화면을 독일로 전송한 그는 다시 광주로 돌아와 23일 계엄군이 일시 퇴각한 상태에서 시민자치하의 광주의 모습을 추가로 담았다. 힌츠페터가 보낸 필름은 독일 제1공영방송을 통해 여러 외국에 즉시 보도됐으며, 그 해 9월에는 《기로에 선 한국》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송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언론 통제하의 5공화국시절의 국내에서는 비밀리에 알려져 상영됐다. 오늘날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자료는 대부분 그가 수집한 것이다. 5공 말기인 1986년 11월에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위 취재 도중 사복경찰에게 구타당하여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었다. 1995년 기자직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독일 북부의 라체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C%84%EB%A5%B4%EA%B2%90_%ED%9E%8C%EC%B8%A0%ED%8E%98%ED%84%B0
5.18폭동의 하이라이트 영상물들은 힌츠페터가 촬영한게 아닙니다.
전국 대학가를 놔두고 왜 이들은 전라도로 내려가 있었을까요?
5월 18일부터 5월 21일까지 컬러영상을 촬영한 기자는
왜 단한번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요?
힌츠페터는
5.18관련 영상물을 협조받으면서 그들이 누구인가 밝힌적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생각엔 북특수부대 600명
연고대생 600명
이 외에 이들의 활약상을 촬영하기 위한
촬영부대가 미리 투입어있었던게 아닌가 합니다.
댓글목록
토함산님의 댓글
토함산 작성일
여기서 연고대생이란 실제 연세대,고대생이 아니라 북한특수부대원을 저 넘들이 암호식으로
연고대생 600명이라고 불렀다고 압니다만...
신생님의 댓글
신생 작성일네 같은 의미로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