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대통령 대변인의 조기귀국 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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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강 작성일13-05-12 10:56 조회4,5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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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근 육군대장은 “군번 1번의 외길 인생”에서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를 논한 바 있으나 금번 대통령 대변인의 성추행(?) 관련 임무 수행중 조기귀국 사건은 발생되고 있는 잡음으로 보아 6.25 전쟁의 10대 불가사의를 능가하는 사건으로 느껴집니다.
1. 일선부대의 남침징후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
2. 6.25발발 2주전에 단행된 각급 주요 지휘관의 대규모 인사이동
3. 6월 13-20일간에 단행된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
4. 6월 11일부터 발령되어있던 비상 경계령이 6월 24일 0시에 해제.
5. 비상경계령 해제와 함께 전 장병의 1/2에게 휴가 외출외박을 허용
6. 6월 24일 저녁에 개최된 육군 장교 클럽에서의 고급장교 댄스 파티
7. 서울 북방으로의 축차적 병력투입으로 불필요한 희생 발생초래
8. 6월 25-27일간의 국군후퇴를 반격, 북진 중으로 허위 보도한 중앙방송
9. 한강교의 조기 폭파단행
10. 한강교를 폭파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 사형집행
이 10대 불가사의를 예방하지 못했던 과오로 우리 국군은 완전한 기습을 당해야했고 국민들은 엄청난 비극을 격어야 했는데 금번의 이 불가사의도 배경을 밝혀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에 어떤 비극이 발생할지 알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4.3위원으로 활동했던 필자는 4.3사건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1997년 5월 26일, 노동신문의 특집보도를 통해 6.25발발 직전까지의 대남공작의 실체와 규모를 공식인정하고 찬양(“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 노 두 전직 대통령은 어찌하여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그가 공식인정한 대남공작의 중단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지도 않고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조건도 없이 북송을 해주고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발언을 할 수 있었는지를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현역시절, 주미대사관의 국방무관으로 두 분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맞은 경험이 있습니다만, 대사관 직원만으로는 방문단 주요 인사에 대한 (통역)지원이 불가하기 때문에 교민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수고한 분들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간단한 선물을 하거나 시간을 내어 맥주 한두잔을 나누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다고 생각됩니다. 그 바쁜 시간에 이루어진 대통령 대변인의 호의를 악의로 받아드린 발상과 그 후의 처리과정이 이해가 안 되고 불가사의할 뿐입니다.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아 6.25남침전쟁과 월남 전선에서 다져진 혈맹의 우의를 굳건히 하고 이제는 “글로벌 파트너”로 발전하는 계기의 조성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불순의도가 없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고 보면서 북한의 대남공작에 보다 큰 경계의 눈을 뜨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3년 전에 인터넷에 올렸던 “대한민국의 위기시작은 1997년 5월 26일” 이라는 글을 다시 아래에 붙입니다.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1&uid=2228&page=1&key=&keyfield=
2013. 5.12.11:00
예) 육소장 한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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