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추진한 개성공업지구와 나진-선봉, 신의주, 황금평 등 특구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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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발해의꿈 작성일13-05-06 13:14 조회4,1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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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추진한 개성공업지구와 나진-선봉, 신의주, 황금평 등 특구 비교
재단법인 국제농업개발원 연구소장
농경영학ㆍ경제학 박사 李 秉 華
(2013. 5. 6.)
지난 4월 25일 러시아 연해주 농업경제특구 시찰단을 4박5일동안 안내하고 동해항에 입항하니 전직 안보당국자로부터 “당신 이름이
월간조선 5월호에 황장엽 사건과 관련하여 기획특집으로 게재되었으니 이와 관련된 사실을 지금은 공개해도
무관할 것”이라는 부탁을 받고 ‘특구비교’라는 제목을 빌어 글을 쓴다.
1. 나진-선봉 자유무역 지대
1990년 9월 30일
한ㆍ소
국교수립에 이어 소련 붕괴후 모든 협약이 러시아로 자동승계(1991.12.27)가 있었다. 이때 졸도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김일성은 이것에 버금가는 특별조치로 북한과 중국ㆍ러시아 등 3국이 마주하는 국경지대에 자유무역지대(나진-훈춘-자루비노를 삼각 거점으로 자유무역지대를 만드는 볼쇼이-블라디보스톡 프로젝트의 축소판)를 건설하자고 중ㆍ러에 제의하면서, 나진-선봉 자유무역 지대를 단독으로 결정하고 한ㆍ러 수교 다음 날인
1991년 12월 28일
대내외적으로 선포했다.
자유무역지대 구역을 선포하기까지는 이것의 실행계획과 중ㆍ러 양국의 협조와 업무 추진 배후에는 조선-로시야 교육협정에 따라 연해주 우수리농업아카데미에 교환교수로 와있던 김덕수 교수(‘김일성주체사상과학원’ 부원장이며,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김덕홍의 동생), 김종수 교수, 문상주
지도위원(보위부 감독관) 등이 있었고, 나선 지유무역지대 총책임자는 김달현이 맡았다. 이와 관련하여 훗날
의문사한 김용순과 함께 김달현은 한국을 여러차례 방문했고, 북측 인사중 가장 확실하게 시장경제 원리를
아는 사람이었다.
이 시기 UNDP 관계관 뿐만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러시아 핫산에서 기차를
타고 선봉에 있는 승리정유공장과 나진시를 시찰했다. 당시 나진-선봉을
둘러본 한국측 인사들과 중국 연변조선족 영도들 및 연해주 고려인 기업가들은 금방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빠졌고, 김달현(정무현 부총리)은
유창한 러시아어와 중국어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김일성 사망후부터 1998년 3월
자유무역지대에서 자유라는 용어가 빠지고 몇 단계 아래인 나선무역지대로 바뀔 때까지 이 지역 출신들의 한국행 탈북행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1996년초 김덕수 교수는 김덕홍의 지시를 받았다면서 북한 노동자들을 연해주 한국인 농장에 취업하는 조건으로
돈대신 쌀을 달라고 했고, 러시아의 협조로 MOU를 작성했다.
이 해 10월 1일 연해주 주재
한국의 백색요원 최덕근 부총영사가 북한 보위부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듬해 황장엽과 김덕홍이 필리핀을
거쳐 한국에 입국할 때까지 이 공작 중심인물인 이연길 회장(前
켈로부대 지대장)은 안기부에 앞서 정보사 남산대 요원으로부터 공작자금을 지원받고 있었다. 얼마후 월간조선 김용삼 기자가 이연길 회장을 통하여 황장엽 일행과 내통을 할 때는 남산대 요원들은 황장엽 건을
안기부에 넘기고 또다른 북한 고위급 관리의 망명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지금도 명분상 북한을 대표하는 김OO 위원장이 1996년 4월 중동지역을 방문하고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며 귀국할 때를 D-day로 삼았는데, 이것이 국내 정치인 고정간첩들의 역공작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김OO은 지금도 북한에서 건재하고 있다.
오늘 현재 나선무역지대는 중국의 출동해(出東海)
거점항구가
되었고, 러시아도 나진항 3부두를 점령하여 중국과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필자의 판단은 나선무역지대의 주도권은 중국이 거머쥔 것 같다. 즉, 칼자루는 중국이, 러시아는 칼집을,
북한은 칼날을 쥐고 있는 형상이라서 특별한 대안이 없는한 김정은의 입김은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시간 ‘나선무역지대’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한 곳도 없으나 홍콩에 등록한 한국 및 해외동포기업 3곳이 무역업을 하고 있다.
2.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
김일성의 처 김정숙의 남동생인 김용순(金容淳)이 2000년 8월 22일
북경에서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과 개성공단 특구 및 육로관광 사업에 합의서를 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내용은 모든 국민들이 익히 아는 내용이고, 북측은 칼자루를 쥐고 우리측은 칼날을 쥐고 있는
형상이라서 사안이 있을 때마다 피해를 보아왔었다.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김정일이 절대로 괄시하지 못할 극동러시아 마피아 조직이
부산의 모기업과 손잡고 중고자동차 조립공장과 주택건설용 샌드위치 판넬공장을 개성공단에 건설하고 싶어했다. 이
소식을 접한 김정일은 심복을 시켜 공단입주를 강력히 말렸다. 그 이유는 당신들 때문에 공단을 손아귀에
넣지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개성공단 덕분에 개성주민들의 마음을 믿었지만 이것 이상으로 우리측이 북한에 당한 것은 금전적 피해뿐일까? 머지않아 우리 국민들이 미쳐 모르는 상상을 초월한 피해 내용이 곧 밝혀질 것이다.
3.
신의주 특별행정지구
개성공업지구 개통에 이어 시작된 신의주 특구는 북한최고인민회의(2002. 9. 12.)에서
결정되었고, 당시 무역상이었던 김용술(金龍術)은
외국기업 70~80%를 유치하겠다고 큰소리 쳤다.
또한 대외경제추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장성택의 심복이었다. 심양의
허란촌(和蘭村)長이며, 어우야(歐亞)그룹의
회장인 양빈(楊斌)을
김정일은 신의주특별행정구 특임장관으로 임명했다.
김정일을 만난 양빈은 신의주 행정특구를 중국과 한국인에게 비자면제지역으로 정하고 홍콩과 마카오처럼 카지노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또한 북한 미녀들의 국제적 공연장으로 격상시키겠다고 했다. 이러한
발언 내용을 도청을 통해 들은 중국의 지도부는 곧바로 양빈을 구속시켜 신의주 특별행정구역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4.
황금평 북ㆍ중 공동개발지구
2012년 8월 14일 북측의 장성택과 중국의 천더밍(陳德銘)
상무부장이
합의서명했다. 이곳은 일찌기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께서 아랫섬인 비단섬을 포함하여 지하에 석유가 대량
매장된 사실을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알려준 곳이다.
얼마후면 황금평과 비단섬이 포함된 평안북도 신도군 전체가 중국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유는 개성공단개발협정법과는 달리 황금평협정법은 북한에 모조리 불리한 중국의 일방적 주도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안이 불리하기만하다. 즉, 중국은 황금평 개발에는
갈고 또 간 시퍼런 칼날을 쥐고 있어 움직이면 김정은은 철저히 피를 보는 현상이다.
이제 우리는 상기 4곳의 투자법령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상식을 벗어나고 국제법을 외면하고 만든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작성된 개성공단투자법령이 결국은 털실타래를 가지고
놀던 고양이가 자기 발이 묶인 꼴이 된 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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