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의 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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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VERGREEN 작성일13-04-19 16:46 조회3,4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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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는 말은 한반도에서는 김일성으로부터 구전되어 남한의 좌익들이 대를 이어 받아 영광스럽게 쓰고 있다고 한다. 절대로 우익인사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그런 이치에 맞지 않는 좌경스러운 단어를 자랑처럼 쓰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진보라는 말을 좌익이 보편적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어느 때 부터인가 진보라는 단어에 심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한반도가 시끄러우니 이 진보란 좌익들의 소행이 더욱 괘씸하여 그 진보에 대하여 열거하자니 너무나 길어 아주 짧게 요약해 본다.
17세기 이후의 서유럽에서는 사회를 인간의 힘으로 변혁하고 지배하여 역사를 진보시키려는 사상이 대두하여 정치적으로는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봉건세력이나 구제도에 대항하는 근대적 계몽주의 이데올로기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독일에서는 칸트가 세계 시민체제의 실현을 인류의 진보라고 생각하는 한편 헤겔은 인류사에서의 자유로운 의식의 침투 속에 진보의 리얼리티를 찾았다고 하니 나는 개인적으로 그럭저럭 칸트를 합리적으로 본다.
1840년대 이후 마르크스의 혁명 이론은 유럽 사회에 있어서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어 진보는 억압된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에 의해 쟁취하는 목표로 받아들이게 된다. 19세기 유럽 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온 공산주의 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변화가 일어났다. 즉 혁명만이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혁명주의자와는 달리 자유주의 체제하에서도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사회주의적 이념을 실현할 수 있다는 비 혁명주의자들이 출현한 것이다. 이들의 노선을 수정주의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가 딱 이 꼴이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러 영국을 위시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호전과 자유민주주의 제도에 선거 제도의 도입과 사회복지정책의 확대 및 노동조합의 활성화로 인한 폐단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혁명의 불가피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20세기에 들어 사회주의 체제에서 정치 경제에 많은 파국이 일어나면서 진보사상에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한편으론 인권과 자유와 민주주의 실현 기준을 진보의 사고로 고집하는 견해도 여전히 유력하게 남아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조아사회를 타파하고 무산자사회 건설을 목표했으나 다시 보편적인 시민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회귀이며 시민사회란 민주주의의 근간인 것이다. 21세기에 있어서 보수와 급진주의 혹은 혁명의 논쟁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공산주의의 실패로 인해 공산혁명 이론은 그 실효성을 상실했으며 지구상은 지금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이론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의 붕괴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사회주의가 몰락했다. 세계인들은 인간사를 비합리적 이상향의 춘몽으로 세상을 어지럽힌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못할 일은 주체 못 할 인구의 포화상태로 찌들어 있는 패쇄적 사회주의 체제하의 중국이 경제만큼은 과감하게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등소평이란 위대한 지도자에 의해 인민의 머릿 수로 전 세계의 달러를 긁어모으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현상을 우리는 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인도와는 다른 인프라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을 보고 우리가 얻은 교훈은 사회주의를 한다고 해서 경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슬퍼할 일은 북한은 모든 권력이 특정인과 그 집안에 집중되는 전제정치와 개인의 모든 자유를 통제하고 모든 것을 국가에 바쳐야하는 전체주의 정치를 하는 지도자를 만나 급기야 죽어서도 태양신으로 숭배해야하는 종교적 노예 왕조국이 되어있다는 현실이다. 중국과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하늘과 땅같이 다른 지도자를 만났다는 것이 북한의 인민으로서는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인지라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전 인민이 노예가 되어 지옥으로 몰락한 거지 왕국 인민들은 오늘도 그 몹쓸 존엄을 향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사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현실이 같은 인간으로서 기가 막힌다. 개성공단을 폐쇄해도 항거 한 번 못하고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이 사라져야하니 어찌 같은 민족이면서 이렇게 극과 극의 처지로 살아야 하는지 진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지구상에서 북괴와 같은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의 정치학자들로서는 희귀한 사례로서 두고두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연구대상감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진보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도 안하면서 북괴의 김씨정권은 어떠한 테러를 일으켜도 이유 있는 항변이라 대변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이유 있는 응징이라 감싼다. 우방국 미국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배은망덕한 이 무리들은 민주당을 구심점으로 하여 노동자의 행패는 이유를 불문하고 희망(?)버스까지 타고 다니며 옹호 지원한다. 묻지마 대북지원은 민족적 책임인양 주장하는 진보 패거리들은 언젠가는 남북 전 주민이 태양절을 민족의 명절로 지내며 우주에 둘도 없는 존엄에게 남북이 함께 머리 숙여 참배하는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북조선 공산당의 퍼포먼스처럼 민노당도 일제히 오른손으로 당원증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반드시 당무를 시작 전에 존엄의 옥음을 경청하면서 그 위엄에 머리 숙여 묵념을 하기에 몇 년 전에 패널깡패 진중권도 탈당했다고 한다. 이런 민노당으로 인해 종북이란 단어가 생겼다고도 한다. 이 얼마나 반역의 무리들인가? 이처럼 국내에는 반드시 국가의 보안법으로 철저히 응징해야 할 사건들이 넘쳐 나건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대한민국정권은 또 얼마나 직무를 유기하는 반역패당들인가? 우리 한민족 자체가 희귀성 인자를 가진 종(種)으로 연구대상감이라고 본다.
나라의 독버섯인 진보들은 북조선 인민과 남조선 우익국민들은 짐승과 버러지 정도로 얕잡아 보면서 태양신 ‘존엄’이 추구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주체사상과 북정권 위정자들의 ‘우리민족끼리’는 진보의 바이블속에 있는 한 구절인양 받들어 모시며 ‘쓸모 있는 바보’ 노릇을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진보를 유럽의 진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더러 그들의 출발점이 뜬구름 잡는 순수한 진보 성향을 몇 개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다 손 치더라도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환경에서는 알게 모르게 종북의 그림자라도 밟고 서있게 된다는 것은 싫어도 필연이 된다고 본다.
에라이 이 지지리도 못난 인간들아! 접시물에 빠져 뒈질 놈들아! 그 나이 처먹을 동안 자유대한민국에서 공부하고 뛰어 놀고 여행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아 살아오면서 진지하게 사색에 잠겨 나는 어떻게 살아 갈 것이며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는가를 걱정해 보지도 않았느냐? 국가를 위해서 어떤 봉사를 할 것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조국이 어디인가는 찾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무리 외통수 단세포 같은 두뇌라도 방향감각은 있을 것 아닌가 말이다. 너희들이 취득한 그 잘난 학위들은 무엇을 연구했더냐? 너희 부모들이 허리가 휘어지게 일하면서 도시락 싸주고 대출내고 소 팔아 땅 팔아 공부시켜 놓으니 드높고 푸른 하늘 아래 희망이 가득한 이 땅에서 기껏 하는 짓들이 북조선 존엄의 종노릇이나 하고 있더란 말이냐? 행복은 섬기는데서보다 보살피는데서 더 느낀다. 가족이나 잘 보살피면서 대한민국국민의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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